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빽 없는 워킹맘이 된다는 것
나는 살면서 나한테 빽(back)이 없는 걸 아쉬워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계획한대로, 나만 잘하면 됐다. 그렇게 잘 살아왔다(라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정확히는 아이를 낳고 복직 하고보니 나한테 빽이 없다는 게 솔직히 좀 서러웠다.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원래도 없었지만, 막상 내가 앞도 뒤도 없는 워킹맘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육아와 일을 홀로 병행한다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가 택한 이 길을 완주할 수 있는 최선의 판을 짜는 수밖에.
아무튼 나는 복직 후 빽 없는 워킹맘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1년 6개월의 육아휴직이 종료되기 전, 첫 번째 준비사항은 등하원 도우미 선생님을 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아이와 같은 반에 워킹맘 선배가 있었고, 그분을 통해 정부지원 도우미를 알게 됐다. 실제로 그 도우미 선생님이 아이를 등하원 해주는 걸 보고 꽤 괜찮은 느낌을 받았다. 정부지원 도우미는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지원금의 한도가 정해지고, 지자체에 등록된 도우미 선생님과 계약이 체결된다.
내경우엔 일단 금전적 지원은 못 받더라도 정부에서 관리하는 풀(pool)의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더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신청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
10월에 서비스를 신청하여 11월에 정부지원도우미가 연결됐다. 바로 앞 아파트단지에 사시는 도우미 선생님과 11월 한 달의 적응기를 거치고 아이는 12월부터 등원 2시간, 하원시간 2시간을 도우미 선생님과 보냈다.
내 출근시간은 8시, 퇴근시간은 5시.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서 나는 7시10분에 집에서 나가고, 5시50분쯤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사전에 집안에 3개의 CCTV를 달았고, 도우미선생님의 사전 동의도 받았다.
도우미 선생님은 간식 챙겨주기, 옷 입혀주기, 등원/하원 시켜주기, 오고가는 길 산책이나 집에서 놀기 정도를 도와주셨다. 친할머니가 아니기에,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
선생님이 도착하면 엄마가 간다는 걸 아는 아기는, 선생님이 오면 울어댔다.
아니 선생님이 도착했다는 현관 센서만 떠도 "가~가~!"를 외쳤다.
"엄마 금방 와~알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집에 와서 또 선생님하고 놀고 있으면 엄마 금방 올게!”
나는 아이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하고 손을 흔든다. 이땐 가급적 미련 없이 밝게 아이와 인사를 해야 한다. 아이가 울어도 엄마는 울면 안 된다. 엄마가 주저하는 게 보이면 아이는 더 대차게 울어댄다. 물론 그렇다고 몰래 가면 더더욱 안 된다.
아무튼 그렇게 후다닥 내 몸을 집밖으로 내보낸다. 일어나서 내가 세수를 했던가? 할 때도,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집에서 무사히 나온 게 어디냐며 달리는 차들 속에 나도 합류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각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별 탈 없이 어린이집을 갈수 있음에 안도하고 하루의 시작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쯤부터 아이는 '엄마엄마'를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집에 오면, 아이는 바로 도우미선생님에게 '안녕 안녕' 손을 흔들었다.
사실 나도 엄마인지라 마음도 아팠고, 종종 도우미선생님께 하고 싶지만 속으로 삼킨 말도 많았다. 그래도 빽 없는 워킹맘은 최대한 선생님의 안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나의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나의 복직 3개월은 몸도 마음도 빡빡했다. 아이는 6시쯤 일어나는데, 그때부터 눈곱도 못 떼고 아이를 먹이고 등원준비를 해놓고 나는 세수도 못한 채 우는 아이와 안녕하며 몸을 집밖으로 밀어냈다. 그마저도 지각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엑셀을 밟았고, 무사히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가장 큰 위로가 됐다.
퇴근길도 마찬가지. 출근보다 막히는 퇴근길에는 실시간 앱으로 CCTV영상을 확인해가며, 애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 울지는 않는지, 오후간식을 제대로 먹는지, 저녁은 또 뭘 먹이지 오만생각을 하며 또 엑셀을 밟았다. 퇴근해서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려 도우미선생님께 무한 감사를 드리며 어서어서 퇴근하시라 수고의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그때부터 엄마 껌딱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이의 스케줄상, 6시엔 저녁을 준비해 먹여야 하는데 한시도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아이를 안고 저녁준비를 하고, 어떻게든 저녁을 먹여서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까지 미션에 박차를 가한다.
아이는 8시 반쯤 취침.
'아, 드디어 하루가 끝났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가끔 아이를 따라 그대로 자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오늘 눈을 이대로 감으면 내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훨씬 더 촉박하게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래서 전날 밤 꼭 어린이집 알림장을 확인해서 준비물을 챙겼는지 재차 확인하고 내일 아이가 입을 옷, 갖고 갈 약, 먹을 음식들을 준비해둔다.
그래도 아이가 무탈 할 때는 이런 일상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유지가 된다. 일상이 무너질 때가 진짜 문제다.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이 방학이거나 하면 연차를 썼다.
엄마가 회사를 나가기 시작하면, 아이가 기가 막히게 알고 아프다더니 아기는 내가 복직한 달부터, 한 달에 한번은 꼭 열이 났다. 열이 나면(38도 이상)아이는 무조건 하원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출근했다 30분도 못 채우고 퇴근한 적도 있고. 심지어 출근하는 길에 어린이집 전화를 받고 그대로 유턴하여 어린이집으로 되돌아 간 적도 있다.
그 길속에 어찌 눈물콧물 쏟지 않았겠는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사는가. 마냥 억울하고 짜증나고 서러웠다.
애꿎은 핸들만 손이 하얘지도록 움켜잡았다.
그렇게 아기가 아플 때 일하는 엄마의 멘탈은 블랙홀로 빠져든다.
근데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엄마라는 직업은 관둘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전업주부로 살 수 있는 자신도 없으니까.
우리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니고, 아이와 나 모두 행복하게 매일 살아가려고 이다지도 노력하며 사는 것이다.
일하는 엄마들의 죄책감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고질병은 보통 아이가 아플 때 발동되는데, 얼른 탈출해야 한다. 아이가 아프지 않을 때를 위해 내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아프든 아프지 않든 그 모든 때를 위해 내가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TIPS_도우미 선생님(이모님) 구하기
면접만 20번, 총 4명의 이모님을 구해본 경험치에 근거해 주관적인 팁을 정리해봤다.
01. 최대한 많은 통로를 이용하라
도우미선생님을 구하는 통로 : 정부지원도우미사이트(어플), 맘시터(어플), 맘카페(아파트 맘톡방, 지역 커뮤니티 daum, naver 카페 등)
*정부지원도우미 : 아이 돌봄 서비스(https://www.idolbom.go.kr)
나는 오전2시간, 오후2시간 ‘시간제 돌봄 서비스’를 선택했는데 서비스엔‘기본형’과 ‘종합형’이 있다. 아이를 돌보는 범위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데, 항간에 듣기로는 보통 ‘기본형’을 많이 선호한다고 한다. 물론 가격도 다르다.
나는 시간제, 기본형을 선택했었고 ‘비고’란에 ‘간식도 엄마가 모두 준비해둠. 단지 내 어린이집은 도보 5분 이내’ 와 같이 최대한 도우미선생님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내용을 많이 기입했다.
신청기간과 통보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사전에 일정을 꼭 확인하고, 미리미리 신청 해둬야한다.
신청해도 연락이 안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연락이 너무 안 온다 싶으면 해당지역의 담당자(보통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일 경우가 많다)에게 연락해보는 것도 괜찮다.
그러면 담당자가 그 시간대가 아닌 다른 시간대는 어떤지 등을 확인해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보다 오전이나 오후 한쪽으로 시간을 모는 경우를 도우미선생님들이 더 선호할 수도 있다)
*맘시터(https://www.mom-sitter.com/)
두 번째 도우미 선생님을 이사이트를 통해 구했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성공적이었다. 다만 맘시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유료’서비스를 가입해야 한다. 몇 개월 간 온오프라인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기회비용으로 생각하자. 보통 5만원 이내의 가격으로 시작할 수 있다.
맘시터에 부모회원으로 가입하고 나면, 내가 구하는 공고를 올릴 수 있고 구직을 하는 분들의 정보도 열람할 수 있다. 내가 올린 공고를 보고 채팅 등을 상대방이 걸어올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터님의 정보를 보고 대화를 먼저 제안할 수도 있다.
*맘카페/맘톡방(https://cafe.naver.com/byungs94)
나는 수원에 살고 있으므로 수원맘 카페를 통해 세 번째 도우미 선생님을 구했었는데, 우선 같은 지역 내 살고 있는 분과 연락될 가능성이 높다. 도우미선생님은 아이의 등하원뿐 아닌 나의 출퇴근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무조건 단거리 거주자를 추천한다.
이모님 구직 게시물을 작성하면, 댓글이나 쪽지로 연락이 온다. 이분들과 사전에 정보를 확인하고, 면접일정을 잡으면 된다.
*주거지 커뮤니티방(맘톡방 등)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요새는 여러 가지 커뮤니티가 생성된다.
나의 경우 내가 사는 아파트 내 맘톡방이 개설됐고, 엄마들 사이에 생각보다 엄청난 정보가 오고가기 때문에 ‘도우미선생님’관련 정보도 가끔 올라왔다.
특히 마지막 도우미 선생님은, 맘톡방에서 이사 가게 돼 기존에 함께 한 이모님을 추천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와 구하게 됐다.
신원이 확실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02. 면접은 실전처럼
아이가 없을 때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가급적 아이가 있을 때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아이를 좋아하는 분들은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와 눈 마주치고 아이의 장난감을 궁금해 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다 아주 짧게나마 놀아주시기도 한다.
잊지마라. 내가 도우미 선생님을 고용하지만, 실제로 도우미선생님과 지낼 건 엄마가 아닌 아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가장 편하고 좋은 도우미선생님을 구해야 한다. 이때 몇 가지 엄마가 정해둔 일과와 꼭 지켜주셨으면 할 것을 미리 정리하자.나의 경우는 아래와 같은 to do list와 not to do list가 있었다.
03.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장기근속 가능자’를 구하는 게 최고다.
아이와 도우미선생님이 적응하는데 최소 일주일 이상 필요하며, 잘 지내다가도 엄마와 헤어질 때 울고불고 떼쓰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도우미선생님이 그만두시면 또 엄마는 구인부터 면접까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도 재적응 할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니, ‘장기근속’이 가능한 분인지(예를 들어 다른 직업을 찾는 중 징검다리로 도우미 일을 하시는 건지, 곧 태어날 본인의 손주를 봐줄 계획이 있으신지 등)를 꼭 재차 확인하자. 그래도 안 되는 건 하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