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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멘 Sep 24. 2024

갑을병정 중 정이 된다는 것

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갑을병정 중 정이 된다는 것


단축 근무 후 내 근무시간은 오전 9시 30분~오후 4시 30분이다.

나는 칼퇴가 아니라 '정퇴(정시퇴근)'을 하는데, 법적으로 단축근무 노동자에게 연장근무를 시킬 수 없게 돼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퇴근하지만 어린이집으로 출근하러 가기 때문에 1분1초가 아깝다. 

만약, 퇴근 시간 이후 회의가 잡히면 나는 가능한 시간이라면 어린이집에 미리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고 회의에 참석할 것이고 만약 내가 핸들링 가능한 시간이 아니면 그냥 말한다. "참석 못합니다."

내가 오전 9시 회의에 참석하려면, 남편이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근무형태를 사전에 회사에 보고하는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러니 미리 예고만 된다면 정해진 출근시간 전 일정에 참여 할 수는 있다. 


회식? 그냥 패스다.

회식과 아이를 저울에 올려놓으면 그냥 바로 답이 나오므로.

(물론 나는 가끔 회식을 정말 하고 싶다)


이란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정신적 피로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해야하는 것. 

"제가 단축근무 중인데, 제가 이일을 그 시간에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냐면……."

나는 내 월급을 삭감한 선택에 따른 정당한 근무 중이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부당한  느낌을 받는다. 이때 필요한건 정신무장이다. "이렇게 위대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나한테 누가 뭐라 그래?" 하는 정신무장이 필요하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남들과 다른 선택에 따른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받지만, 타인의 눈치만 볼 필요는 없다. 

눈치도 여유 있는 자들의 사치라고 생각하자. 무엇보다 그 어떤 누구도 내 삶의 1분 1초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조부모 도움 없는 워킹맘으로서 써볼 수 있는 방법을 거의 다 써본 사람으로서 소회(?)를 밝히자면,'내 입맛에 맞는 선택은 애초에 없다' 는 점이다. 

(다행히도 입맛에 맞는 선택지가 추후에 생겨난다.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아무튼 이점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수용해야 육아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처럼 선택장애가 없던 사람도 육아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면 선택장애가 생긴다. 회사와 육아의 모든 옵션의 합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가끔 이모님과 아이가 함께 있는 집의 cctv를 휴대폰으로 보면서, 이모님 구하는 사이트에 들락날락 거리면서,고용보험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접속하면서, 회사상사와 동료 눈치,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이 눈치를 보면서. 


내가 왜 갑자기 갑을병정 중 '정'이 됐지?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실상 아쉬운 포지션은 나니까, 맞다. 그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으로 살아온 약 1년의 시간동안 나는 꽤나 단단해졌다.

그리고 지금 내 선택에 나름 만족한다. 비록 유한하더라도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병행 가능한 선택지가 있음에 감사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육아도,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관련 회사 규정이나 정부 법률에 대해서도 꽤나 빠삭하게 알게 됐다. 또 이렇게 글도 쓴다.  


비록 복직 후 1년의 시간동안 나 잘난 맛에 살았던 '갑'에서 여기저기 눈치 보는 '정'으로 신분은 하락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바를 포기했는가?

아니다. 결국은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갑'인 셈이다.


결국은 다 지나간다.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기면 내가 넘긴 고비가 내가 비빌 언덕이 돼 있을 거다.

좌절의 순간마다 머리 아프게 고민한 선택장애의 내가,

웬만한 좌절엔 내공이 생긴 회복탄력성 고수가 돼있을 거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육아하는 직장인들, 포기하지 말기를.

그 어떤 선택지에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내가 남들 눈에 을이든 병이든 정이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결국 '갑'이다.

 


TIPS_워킹맘 희소식 뉴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연구(캐슬린 맥긴 교수)소식이 있다. 

“ 일하는 엄마들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로 29개국 10만 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워킹맘의 딸이 전업주부의 딸보다 취업 가능성이 1.2배 높고, 직장에서 관리자로 승진할 확률이 약 1.3배 높다고 한다. 

또한  2012년 미국 설문조사 기준, 워킹맘의 딸이 전업주부의 딸보다 연평균 1,880달러를 더 벌었다고 한다. 이건 딸의 경우고, 아들은 조금 달랐다. 

워킹맘의 아들은 전업주부의 아들보다 일하는 여성과 결혼하는 경향성이 있고,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성평등적인 태도를 가졌다. 또한 매주 가족돌봄에 50분을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워킹맘들의 딸, 아들 모두 전업주부 엄마의 자녀들보다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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