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워킹맘 에세이
퇴근의 태도(칼퇴와 정퇴 사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vs.소중한 나의 일터니까
출근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무엇일까.
나는 중간 즈음에 있는 듯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는 건 맞지만, 이때 생각 없이 출근한다는 건 습관화 되어 그냥 한다는 거지 억지로 끌려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내가 연금복권에 당첨돼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온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나는 나의 사회적 자아를 위해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서의 나름의 프라이드를 갖고 출근한다.
지금의 내 상황을 100%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99% 정도는 내가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뿐 아닌 많은 일하는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태도'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반면, 퇴근의 태도는 어떨까.
스스로 퇴근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나는 입사 이래 가급적, 그러니까 야근을 꼭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시퇴근을 지향해왔다.
나는 거의 '정시 퇴근하는 인간'이다.
아니, 얼마 전까진 '칼퇴하는 인간'이었다. 최근엔 조금 더 배운 노동자로서 정시퇴근이 바른 용어임을 배우고, 사용한다. 내가 이 정퇴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아이를 낳기 전의 내 마음에서 기인됐는데, 정시퇴근이 우리 회사의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해서다.
연봉, 자아성취, 워라밸 정도가 근로환경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회사는 연봉, 자아성취는 크게 얻을 수 없고 워라밸은 노력하면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지방공기업이고, 초봉은 두 눈을 의심할 만큼 낮았다.
내가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받는 월급이 내가 과외 3건만 해도 될 만큼의 액수였다. 그마저도 신입 때는 직급이 낮은 만큼 시간외 근무를 월 45시간씩 해야 회사에서 받는 돈을 '월급'이라 포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외 근무 45시간을 했고, 그 시간만으로도 야근은 충분했다. 그러다 점차 이 시간외 근무의 '가치'가 퇴색되기 시작했고, 실제로 시간외수당을 받는 시간 자체도 줄어들었다.
우리 회사가 매일 야근을 할 만큼 일이 많다거나(물론 그런 때도 있지만) 매일 야근을 한만큼 성과가 오르고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면 나는 다른 루트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맡은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걸 택했고, 역량 덕분인지 운 덕분인지 정시퇴근을 지향하는 사회생활 속에서 승진이나 평가에서 부정적 피드백을 받지 않았다.
물론 윗분들의 입장에서 거의 매일 정시퇴근 하는 직원이 마냥 예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일, 인지상정이므로. 그리고 회사는 인지상정이 생각보다 중요한 공간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 인지상정으로 손해 보는 유무형의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내왔다.
그리고 내가 입사15년이 된 후 느낀 건, 퇴근시간보다 중요한건 퇴근시간까지의 태도라는 거다. 처음부터 야근할 작정의 태도를 갖고 있으면 당연히 야근은 습관이 된다. 물론 여전히 야근이 근무평가나 평판의 기준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존재한다. 어떤 믿음을 갖고 사는지는 선택의 문제다.(나는 거북목과 척추협착증 등을 강화시키는 이 믿음을 추천하진 않는다)
두 번째로 내가 정시퇴근을 1초의 고민도 없이 하게 된 건,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면서부터다. 정규근무인 일8시간도 하기 힘든 상황이므로 단축근무를 신청하는 건데 정시퇴근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건 내 머릿속의 논리고,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6시도 아닌 4시에 칼같이 퇴근하는 나의 뒷모습이 마냥 고와보이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단축근무 기간 동안 “일이 적어서 칼퇴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건너 듣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 앞으로는 제 앞에서 말하라고 꼬~옥 전해주세요" 라고 응했다.
그리고 우리 팀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팀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자 온갖 뒷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팀이 일한 거에 비해 평가를 후하게 받았네"
"직원들이 칼퇴 하는 거 같은데 널널한 거 아닌가" 등등
'칼퇴'는 '칼같이 퇴근함'을 의미하고, '정퇴'는 '정시에 퇴근함'을 의미한다.
‘칼같이’ 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라는 묘사가 들어가 있는 주관적 단어이지만 ‘정시에’는 말 그대로 정시라는 객관적 정보만을 갖고 있는 단어다.
왜 상위 직급의 사람보다 하위 직급의 사람이 칼퇴보다 정퇴라는 말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8시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게 당연한 탄력근무를 하는데도, 6시 퇴근하는 팀장과 다른 팀원들 눈치를 매일 본다는 회사동료에게 한 말이 있다.
"눈치도 사치야. 1분이든 5분이든, 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도 되는 자의 사치"
좀 매정하게 말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하는 일 없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흘려보낼 시간적 여유가 있고,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게 내 마음에 편하다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고, 있다 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은 없다.
누구나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니까.
하지만 누구나 출근하므로, 출근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봄이 좋듯이 누구나 퇴근하므로, 퇴근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최근 매일 야근이 습관이 된 거 같다는 후배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그녀의 말대로, 야근은 무의식적인 습관이 맞다)
"일어나고, 눈뜨면 출근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냥 가는 거죠 회사로.
근데 왜 퇴근은 안 그래요? 퇴근할 시간이 되고, 컴퓨터 끄면 퇴근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냥 가는 거예요. 집으로”
"내일 뵙겠습니다." 또렷이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길 바란다.
오늘도, 모두의 정시퇴근을 기원한다.
우리는 내일 또 출근할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