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화의 힘
강의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일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성과를 만들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곤 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나에게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어떤 특이할 만한 점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 노트의 일부를 발표자료에 포함했었고, 그 노트가, 즉 기록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꼭 커서도 그림을 잘 그리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를 보며 느꼈다. 어릴 때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도움을 준 것, 완벽한 그림이 아니어도 좋아서 자꾸 그릴 마음이 생기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며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두 아이 육아를 하며 그림 그리는 것은 완전히 손을 놓았다가 본격적으로 새로 시작해본 것은 '여행 드로잉'을 접하면서부터다. '여행 글쓰기' 수업에서 드로잉 작가님의 수업을 받고 함께 그려보았던 경험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스케치북을 사서 펜으로 쓱쓱 그리던 경험은 그 계절마다 느낄 수 있는 바람과 소리,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아이들과 야외 어디를 가도,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어디든 앉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엄마 옆에서 엄마가 열중하는 모습, 놀다가 와보면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도 점이라도 하나 찍어보겠다며 달려들곤 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매일 쓰는 다이어리에도 그림을 불러오는 역할을 했다. 내 다이어리에는 시간이나 일의 양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해 둔 부분이 많았다. 주로 길게 연결되는 시간은 선이나 막대처럼 선형으로 이루어진 표현을 했고, 일의 양은 동그라미 혹은 네모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나누어보곤 했다. 그런데 나만의 기록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한둘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조금 더 체계화된 모습으로 내 경험을 나누고 싶어 져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비주얼 씽킹 관련 도서를 읽으며 기초부터 응용까지 내가 하고 있는 기록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해보기 시작했다.
10년 전 디자인 대학원 다닐 때 비주얼 씽킹인 줄도 모르고 시작했던 그 기록과 생각법이 이제야 그 이름이 뭔지 알았다면, 이제는 비주얼 씽킹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도대체 무슨 개념인지 잘 설명하는 것이 나의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비주얼 씽킹 관련 도서를 탐독하면서 시중에 나온 모든 비주얼 씽킹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한 권을 전부 따라 그렸다. 후에는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이어서 따라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닮고 싶은 그림을 내 손에 완전히 익히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
글을 잘 쓰려면 필사를 하면서 글의 구조와 글의 흐름, 작가의 시선과 사색을 그대로 연상하면서 나에게 그 과정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만들듯이, 그림을 모사하는 것은 작가의 그림 그리는 방식을 익히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 혹은 사물의 적정 비율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사하던 그림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드디어 내가 그리고 싶은 것, 마음속에만 있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지 않으면 그림 실력은 다시 별 볼 일 없는 제자리 수준이 되곤 한다. 그렇게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항상 나로 하여금 연습을 필요로 하는 '그림'이란 존재는 그래서 내게 매우 특별하다.
그렇게 비주얼 씽킹 강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노력했었고, 그즈음 비주얼 씽킹 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내어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매주 작업에 열중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다양한 부분에 비주얼 씽킹을 활용해나갈 수 있을지 찾아보는 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기록하는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깨달음은 보다 다양한 분야에 확장해서 비주얼 씽킹을 활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