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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Aug 20. 2016

그곳의 수평선은 곡선이었네

괌(Guam), 뜨겁고 찬란했던 여름휴가 이야기 1부

  오전 10시, 제법 이른 시각 우리를 태운 보잉 777기는 괌이라는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기수를 틀었다. 그리고 5시간이 넘는 제법 긴 시간을 지나 대한민국보다 1시간을 빠르게 사는 괌에 도착했다. 기후는 우리나라의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공항 앞에 줄지어 서있는 야자수들이 괌의 사계가 얼마나 한결같이 뜨거운 지를 가늠케 했다.


괌 공항 앞 풍경, 유난히 파란 하늘과 야자수가 인상적이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 공항은 그 여행지의 첫인상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대개 공항은 도심 속이 아닌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그 나라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내가 유럽여행을 하면서 방문했던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 바르셀로나의 엘프라트 공항 등 여러 공항들은 표지판에 쓰인 문자만 다를 뿐 주변 풍경은 대동소이한 탓에 내가 방문한 곳이 파리인지 인천인지 분간이 잘 안될 정도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괌의 공항은 꽤 좋은 인상을 줬는데 공항 앞의 야자수는 물론이고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가면 저 멀리 시원한 바다까지 보여서 내가 괌에 왔다는 사실을 공항에서부터 실컷 만끽할 수 있었다.



P.I.C(Pacific Islands Club) 리조트 로비



  여행을 다녀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종의 상(像)이 남기 마련인데 나는 P.I.C 리조트에 처음 들어섰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창문도 없이 넓게 트인 프레임 사이로 리조트의 수영장과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담긴 모습은 마치 영화 <위대한 게츠비>의 대저택을 연상시켰다. 호텔이나 리조트의 로비도 공항과 마찬가지로 첫인상을 좌우하는 요소인데, 돌이켜보면 괌의 첫 단추는 여러모로 시원스럽게 잘 채워졌던 것 같다.



P.I.C 리조트 전경, 각종 식당부터 수영장과 공연장 그리고 운동시설까지 갖췄다.



  첫날엔 따로 정해둔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리조트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리조트의 규모가 워낙에 큰 편이어서 부대시설의 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외우는데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리조트가 제집처럼 익숙해졌을 즈음 우리는 비로소 경직된 여장을 완전히 풀고 괌에 오롯이 몸을 담갔다.


 

괌 맥주, 페일에일의 달콤씁쓰래한 맛을 기대했으나 향이 진해서 과일주스처럼 느껴졌다. 



  괌에서 맞이하는 첫날밤, 망고와 사과로 만든 맥주 그리고 온갖 과일을 말려서 만든 안주까지. 괌의 향취를 만끽하며 여행의 분위기를 즐겼다. 맥주의 맛은 기대한 것보다 못했지만 그럼 뭐 어쩌랴? 여행지에선 기대했던 익숙함보다 기대하지 못했던 낯섦이 더 고마운 법이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다음 날 아침, 선선한 바람과 파도 소리에 눈을 떠보니 눈 앞에 지상낙원이 펼쳐져 있었다. 괌의 해변에는 얕은 수심의 산호초 구역이 있어서 하나같이 에메랄드빛 색을 띠는데 우리나라에선 쉬이 보기 힘든 경관이어서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차모르족 연인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사랑의 절벽에도 역시나 많은 연인들이 자물쇠를 채워뒀다.


사랑의 절벽 전망대 위에서 촬영한 사진



  오전 일정은 시티 투어를 하는 것이었는데 첫 방문지는 사랑의 절벽이었다. 괌 차모로 족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인데,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이런 비슷비슷한 스토리텔링을 들으며 느끼는 점은 세상의 많은 공간에서 많은 이야기가 매일 쉼 없이 탄생하고 소멸하는데 그런 것들이 파도의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공간과 제대로 결부되었을 때 상상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절벽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특히 괌의 해변은 앞서 말했듯 수심이 얕은 산호초 구역이 있어서 바다의 색깔이 애매랄드 빛을 띤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보다 더 신기한 건 파도가 해변까지 닿지 않고 산호초 구역에서 먼저 잘게 부서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호초 구역으로 들어오는 2차 파도는 일방향이 아닌 다양한 방향으로 물살을 일으켜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재미를 부가한다.

 




"수평선을 잘 보시면 약간 휘어져 보이는데요. 이곳이 적도 부근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괌 주지사 관저였다. 사실 건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머나먼 대륙까지 보일 듯 시원하게 뻗은 수평선이었는데 가이드의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정말 수평선이 곡선으로 보였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무를 정도의 둥근 모양, 적도 부근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설명은 그 불가해한 수평선을 해명하기에 적잖이 궁색해 보였다.


나는 일순간 형용할 수 없이 밀려오는 감동을 경험했다. 늘 직선 같았던 나의 지구가 사실 둥근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형이하학의 영역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왜 그토록 딱딱함과 마주하며 살아왔던가. 괌의 수평선은 그렇게 내게 삶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일깨워줬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피시아이였다. 이름 그대로 물고기의 눈이 되어서 수중을 볼 수 있는 곳인데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가면 잠수함처럼 생긴 건물이 있고 그 안에 마련된 창을 통해 수족관처럼 산호초와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굳이 따로 멋을 내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곳. 천혜의 자연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나온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티 투어의 마지막 장소는 스페인 광장에 있는 아가나 대성당이었다. 괌은 과거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에 받았던 영향이 괌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아가나 대성당도 그중 하나인데 이 성당은 북마리아 제도의 모든 성당을 총괄하는 가톨릭의 본산이라고 한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배도 받았던 괌은 피지배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너무나 태연히 천혜의 자연을 뽐내고 있었다. 곡선의 지구를 따라 유유히 세월을 축적해온 괌에선 과거와 미래 모두 온전히 현재의 것이 되어 찬란히 빛을 발할 뿐이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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