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
가을 들어 처음으로 장갑을 끼고 뛰었다. 나가기 전에는 땀이 차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까 약식으로 가볍게 뛰고 걷다가 들어왔다. 따뜻한 물로 느긋하게 샤워를 했다.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보일러 올린 방에 누워있으면 극락.
이 기분을 지속하고 싶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다. 한 다섯 번쯤은 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대학에 입학한 무렵은 1960년대 후반. 나는 공중전화가 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등장하는 그 시절이 좋다. 1980년대의 버블이 주는 과한 말초적 흥분이 없다.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걸친 일본은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변화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날로그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나는 느낀다.
스마트폰을 저 멀리 치워두고 포근한 방에 엎드려 책을 읽는 기쁨은 크다. 이 기쁨은 입동 이후에라야 제대로 감각할 수 있다. 창 밖에는 춥고 건조한 바람이 들이치지만, 내 곁에는 <노르웨이의 숲>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생강차가 있다.
<노르웨이의 숲>의 인물들은 라디오 채널을 돌리기 위해 스위치를 꺾는다. '탁'하고 들려오는 작은 클릭음. 전파 노이즈 사이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그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끝없이 밀려오는 쇼츠 영상도 없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바로 연락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고민하고, 더 오래 걷고, 더 오래 기다린다.
챗GPT가 낯설지 않은 우리는 그 시절보다 얼마나 더 행복해졌나. 운동한 후에 몽글몽글한 온기 속에서 책을 읽는 동안 몸의 리듬이 차분해졌다. 낡았어도 편안한 잠옷 바지, 은은한 향이 나는 메밀베개, 폭신하고 보드라운 이불.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