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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오두막은 숲까지 포함이다

핀란드 여행일지

by 로마 김작가


산타 익스프레스 야간열차를 타고 로바니에미에 내리자 한기가 몰려왔다.

기차역에서 20분가량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산타마을이었다. 산타마을 한가운데 흰 선이 그어져 있었다. 북극점이었다. 로마에서 헬싱키, 헬싱키에서 야간기차 그리고 버스를 타고 이 멀리에 두 아이를 데리로 오면서 여기에 북극점이 있는 줄도 산타마을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산타 익스프레스
산타 마을 도착
북극점

그저 여름의 핀란드의 라플란드 지역이 그렇게 좋다는 말 한마디에 하나도 알아보지 않고 여기까지 오다니 말이다. 가져온 옷도 어처구니없이 얇아서 핀란드로 우리를 초대한 정애 씨의 시어머니께서 짜주신 스웨터 안으로 가져온 옷이란 옷은 다 껴 입었다. 산타 마을에서 산타를 만나고 나오니 오이바 아저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일주일 동안 오이바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머물 계획이다.

그는 정애 씨의 친구다.


"너와 정애는 어떻게 친구가 되었어?"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되었어."


세상엔 다양한 우정을 맺는 방식이 존재한다.

우리를 위한 연어 요리를 위해 손질 중인 오이바 아저씨 / 그의 친구 미키 킴이 만들어준 도자기 마그넷

우리의 첫 오두막이름은 아눌라, anula.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오두막 앞 호수에서 물을 길어 사우나 화덕에 넣으면 장작이 타닥타닥 불을 지피며 물을 데웠다. 화덕위 돌이 달궈지자 순식간에 50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 사우나를 마치면 화덕에 데워진 뜨거운 물과 차디찬 호수물을 섞어 샤워를 ㄴ했다. 화장실은 오두막 밖에 있는 재래식이었다. 볼일을 보고 통에 담긴 톱밥을 뿌리자 놀랍게도 지린내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오두막 ANULA
오두막 안 화덕
재래식 화장실
사우나

오두막 안에도 화덕이 있었다. 불을 붙이기 위해서 자작나무의 마른 껍질이 필요했다. 자작나무 기둥에 붕대를 감은 듯 흰 껍질이 붙어 있었다. 타닥타닥 장장불이 타오르자 오두막 안이 따듯해졌다. 장작 위에 소시지와 옥수수를 구워 먹었다. 정애 씨가 오이바 아저씨는 소시지에 칼집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소시지가 훨씬 더 깊은 육즙을 간직할 수 있다고. 단 하나의 칼집을 내지 않아도 소시지가 구워지면 투둑투둑 껍질이 터졌고 소시지 안의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장작의 불씨는 화려가게 불타올랐다.

올리브 색으로 칠해진 오래된 주방 찬장에는 빈티지 그릇과 잔들로 차곡차곡 채워져 있었다.

오두막의 작은 빈티지 주방
빈티지 펜틱

모두 핀란드의 펜틱 도자기 제품이었다.

펜틱 도자기는 아누 펜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오두막 이름은 아눌라.

그녀가 살던 집을 오이바 아저씨가 구입해 여기 오두막으로 가져다 놓았다.

1971년 체육 선생이던 남편을 따라 아누 펜틱이 여기 포시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포시오에는 호수가 3000개 인구수는 3000명이다.

아눌라 오두막과 비행기에서 내려다 번 포시오

이 외진 춥고 작은 마을에서 정착하는 동안 아누는 홀로 도자기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문적으로 도자기를 배운 적이 없었다. 당시 이 지역 대부분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났고 어럽게 찾은 단 한 명의 직원과 함께 일했다. 마을 마켓 광장에서 도자기를 팔던 그녀는 점점 그녀의 도자기가 인기를 얻자 핀란드 최대 규모의 헬싱키의 스토크만 Stockmann 백화점에 매장을 열고자 한다.


그녀가 내세운 제품은 촛대였다. 촛대는 잘못 구운 빵 덩어리 같기도 하고 엉켜 붙은 종유석 같기도 한 꽤나 기괴하고 요상하게 생긴 거침없는 형태였다. 당시 스토크만 백화점의 촛대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심지어 핀란드 도자기 공예를 대표하는 최대 브랜드 아라비아 Arabia 옆에 진열하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렇게 못생긴 촛대를 사지 않을 거라는 반응이 컸죠.

제가 스토크만에 요구한 것은
무조건 아라비아 식기 옆에
물건을 진열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제품이 노출만 된다면 충분히 구매력이 있는 상품이라고 믿었다.

펜틱의 초기 촛대 / 현재 판매되는 촛대

전략은 제대로 통했다. 몇 주 후, 스토크만은 펜틱에서 제작 가능한 모든 제품을 구매했다. 놀랍게도 이 성과들은 실제 회사가 설립되기 이전에 이뤄진 일이며 이후 그녀는 포시오에 공장을 세우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녀를 도왔다. 펜틱의 공장은 여전히 포시오에 있고, 현재 아라비아 마저 공장을 태국으로 옮기며 메이드 인 핀란드 제품은 펜틱이 유일하다. 펜틱은 지구 가장 북쪽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다. 펜틱 박물관에서 정애 씨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공장을 만들 때, 아누가 도자기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공장에서 생산하는 인더스트리얼 프로덕션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아라비아 공장에서 디자이너를 파견해 주었다고 해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펜틱의 초기 디자인이에요. 그녀의 디자인보다 모던하죠. 제가 그 파견되었던 디자이너 분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분이 펜틱으로 파견될 때 그랬대요."


저 북쪽에 좀 미친 여자가 있는데
좀 도와줘라.
이상한 거 만드는데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우나를 마치고 오두막에 돌아와 빈티지 펜틱 잔에 진한 커피를 마셨다. 6월에도 이렇게 시린 바람이 부는데 가슴속엔 얼마나 강한 불씨가 있어야 도자기를 빚어 구워낼 수 있을까?

펜틱 박물관의 빈티지 펜틱 도자들

1980년대 핀란드 정부가 포시오에 도예 관련 스타트업을 육성했며 펜틱은 더욱 성장한다. 그즈음 전임 아트 디렉터는 스웨덴에서 활동하던 박석우 도예가를 디자이너로 추천한다. 비가 내리던 날, 박석우 선생님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2013년 정애 씨는 포시오 한 달 살기 중에 포시오에서 박석우 선생님을 통해 국제 도자기 심포지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심포지엄 도큐먼트 자원봉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그녀는 심포지엄을 기록했다. 이 도자기 심포지엄의 주최자가 펜틱의 창업자 아누 펜틱이다. 당시 아누 펜틱이 모두를 그녀의 오두막으로 초대했는데 오두막이 엄청났다고 정애 씨는 전했다. 박석우 선생님은 펜틱을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했음에도 스웨덴을 찾아오며 설득한 펜틱 측에서 큰 전시와 3년만 일하는 조건을 제시함으로 결국 수락했다고 하셨다. 이후 포시오에 머물며 이곳이 좋아져 이후 아트 디렉터 직을 내려놓고도 핀란드에 정착하셨다.


선생님의 도자기는 정교하고 섬세했다. 도자기의 작은 구멍들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지만 물은 고요하게 담겨 있었다. 너무나도 얇고 가는 도자기에서 상상치도 못한 청명한 소리가 났다. 소리만으로도 이 도자기가 얼마나 강인하지 느껴졌다. 보이차를 따러주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높은 온도가 아니야.

대량 생산을 위해서
공장에서 높은 온도로 빨리 그릇을 구워내지.
하지만 그렇게 구워진 그릇은 쉽게 깨어져.

중요한 것은 총열량이야.
오래 길게
온도를 올리며 도자기가 구워져야
단단해지지.


박석우 선생님과 작업실
작업들 / 보이차를 담아주신 잔

날카롭고 예민한 장인을 상상했는데 선생님은 무척 털털하셨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들에게 흙을 주셨는데 중간중간 무심한 듯 그릇을 만져주셨다. 정애 씨는 선생님의 공기감을 초월한 이의 편안함이라 표현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는 동안 선생님의 차를 타고 높은 언덕으로 향했다. 그곳에 오두막이 있었다. 오로라가 강렬하게 보인다는 세상의 북쪽 어딘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오두막이 있었다. 오두막에 [한사람]이라고 쓰여있었다. 선생님의 아들 한스와 딸 사라의 이름에 뮤지엄의 M을 붙였다고 하셨다.


접착제, 시멘트 하나 없이 지어진 한사람이었다. 그 오두막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빈곤한 표현력으로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도 있었다. 그 색이 아누 펜틱의 오두막에 있던 올리브 색이 한 사람의 주방에도 있었다. 세상에, 주방 타일조차 선생님의 도예 작품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의 주방
@hansaram_house

아누의 오두막을 떠나던 날, 핀란드 공항의 파업으로 우린 포시오에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다. 우리의 마지막 오두막은 더 깊은 숲 속에 위치한 리아바라였다. 차도 들어갈 수 없이 깊고 깊은 숲 속 오이바 아저씨의 붉은 오두막은 작은 호수와 맞닿아 있었다. 사우나를 하다 몸이 너무나 뜨거워지자 우린 호수에 뛰어들었다. 호숫가 어귀에 장작을 피워 남은 야채와 소시지와 옥수수를 모두 구웠다. 오두막은 작아서 어른 둘과 아이 다섯이 자기 위해선 바닥에 침낭을 깔아야만 했다. 자정이 되어도 해가 밝았다. 호수로 노을이 지는 듯하더니 호수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이내 다시 떠올랐다.


한국의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여기는 백야예요.

아빠는 백야는 영화 제목으로만 들었다고 했다.


리아바라 오두막
백야
영원히 그리워할 시간


핀란드 집 정원에는 어김없이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아이들의 오두막이었다.

오두막 안의 작은 주방에는 마치 진짜 집처럼 작은 사이의 찻잔과 그릇이 있었다.

오두막 앞에는 작은 사이즈의 눈 치우는 삽이 있었다.

이 안에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짓게 될 오두막을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려나가겠지.


아누 펜틱의 오두막은 아누 펜틱을 닮았고,

박석우 선생님의 오두막은 선생님을 닮았고

오이바 아저씨의 오두막은 오이바 아저씨를 닮았다.


포시오에서 헬싱키로 돌아와 우린 곧장 또 기차를 탔다. 정애씨의 시부모님의 오두막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 하루 중 해가 가장 긴 날, 핀란드 사람들은 각자의 오두막에서 머문다고 했다. 시부모님의 오두막은 핀란드의 가장 큰 호수의 섬 안에 있었다. 시아버지, 티모가 직접 디자인하고 섬으로 자재를 공수해지었다고 했다.


그의 오두막은 우직하고 꼼꼼한 거구의 그를 꼭 닮아있었다.

티모의 오두막
실내와 야외 주방
오두막에서의 시간

머물던 어느 하루는 비가 내렸다.

우린 사우나를 했고 비가 떨어지는 호수로 뛰어들었다.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깨어나 세상의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자 차디찬 물속이 사우나보다도 따듯하게 느껴졌다.

사우나를 하고 호수로 뛰어 들었다.

핀란드의 오두막은 숲까지 포함이라고 했다. 오두막끼리 보여서는 안 되는 오롯이 나만을 고독하고 고요한 공간이라고 했다. 정애 씨는 오두막으로 초대하는 일은 흔치 않다고 했다. 오두막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나체로 사우나를 하고 거리낌 없이 나를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했다.


수면 위에 팔과 다리를 뻗어 나를 별로 만들어 활짝 펼쳐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물결에 흔들리며 생각했다.

생은 나를 그대로 마주할, 전기도 수도도 없어도 충만한, 나의 오두막을 짓는 여정 같다고.


날것의 나로서 오두막에서 보내는 쌓여가는 생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긴 시간 차츰차츰 온도를 올리며 총열량을 채워 쉬이 깨어지지 않는 나를 닮은 도자기를 굽는 과정 같다고.


핀란드의 오두막이 이탈리아의 여름방학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이기 위해
나를 나로 빚어가기 위해

타인의 오두막이 보이지 않는
숲 속의 나의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외롭고 고요한 백야가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심심하고 찬란한 여름방학이

매년 우리에게 돌아와야 한다.


호수에서 나오자 이젠 물 밖도 춥지 않았다.

공기에 닿자 내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내 속에서 나를 닮은 도자기를 구울 불씨가 서서히 온도를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