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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불가능, 가까이에서 보면 가능

20년을 로마에서 살면서 팝업을 여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습니다.

by 로마 김작가

지난 8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제1회 세계 어린이날을 기념해 제작되고 우리 가족이 주연과 주연으로 참여했던 이탈리아 단편 영화 [모두의 집 : LA CASA DI TUTTI] 의 상영회를 직접 기획하였고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로마가족만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이 기획을 가능하게 해 준 친구 중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팝업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미니팝츠의 김바다 대표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k 뷰티 팝업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로마에서 팝업을 여는 것을 추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k 뷰티 팝업이라면 밀라노를 떠올립니다. 밀라노는 로마에 비해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임에도 훨씬 더 개방적입니다. 하지만 로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저는 k 뷰티에 대한 로마 사람들의 갈증이 강해진 것에 비해 이 로마에는 이를 접할 기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요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공급은 전무한 상황이니 로마는 지금이 팝업을 열기에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로마에서 팝업을 열기로 마음먹었고, 그 결정에는 로마 가족이 로마에 있어 의지할 수 있다는 이유가 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의 상영회를 진행하는 동안 사소한 일부터 크고 어려운 일까지 도맡아 해결하고 처리해 준 그녀를 위해 하나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가족이 모두 하나라도 일손을 보탰습니다. 팝업 준비 일정부터 행사 기간 내내 팝업 장소에 출근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팝업 행사 4일 전, 늦은 밤 로마에 그녀와 미니팝츠 팀원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이 공수해온 캐리어만 15개, 로마에 보낸 박스만 40개가 넘었습니다. 비틀즈가 로마에서 초연을 했던 바티칸 근처에 위치한 로마 아드리아노 극장 한 귀퉁이의 비어있는 공간을 렌트해 일주일 동안 팝업을 열었습니다.


행사 이틀 전 이케아에서 가구와 집기를 구입해 밤새 가구를 조립하고 행사장을 꾸몄습니다. 방치되던 극장의 한 귀퉁이에서 뭔가를 한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극장 관계자들은 며칠 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현장에 놀랐는지 매일 행사장을 방문해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오픈 당일, 며칠 만에 완성된 행사장을 바라보는데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20년을 로마에서 살면서 어느 장소를 빌려 팝업 행사를 연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 장소는 예전 가이드를 하던 시절 수백 번도 지났던 곳이지만 저 빈 공간이 무엇으로 채워질지 궁금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떤 무언가를 상상하고 실현시키는 일이 어렵게 생각하면 참으로 어렵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너무나 맑고 깨끗하게 실감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불가능
가까이에서 보면 가능



‘우리가 겁먹지 않는 한, 큰 꿈은 없다.’


어디선가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바로 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가능한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외부의 누군가를 통해 삶의 각도가 순식간에 넓혀졌습니다.


오픈 첫날이었던 수요일에는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k 뷰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방문하더니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는 행사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그야말로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의 가장 큰 신문사 중 하나인 메싸제로( Messaggero)에서 인터뷰 요청과 로마의 가장 큰 방송 채널인 라이(RAI)의 저널리스트가 직접 방문해 스킨케어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방문하는 고객은 물론 기자와 저널리스트에게서도 로마에서 팝업을 열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받았습니다.


행사를 함께하며 가장 놀라운 발견은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대부분이 기초화장품 사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어서 제품을 설명하며 직접 순서대로 제품들을 발라주며 안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서비스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펼쳐졌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친절하고 낭만적인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지만, 상대적으로 상점에서 시연을 해준다거나 이렇게 꼼꼼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받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크림을 발라줬을 뿐인데도 어쩜, 이토록 다정하다니 너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거푸 전했습니다. k 팝을 좋아해 엄마와 함께 방문한 소녀의 입술에 몇 가지 색의 틴트를 발라주었을 뿐인데도 울먹이며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공항에서 일하는 한 손님은 하루 쉬는 날 팝업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침 행사장이 조용하여 스킨케어 서비스를 받게 되었는데, 어두운 표정의 그녀가 그야말로 딴 사람이 되어 환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개인적으로 우리를 알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신문사와의 인터뷰 중 스킨케어가 왜 중요하냐는 질문에 김바다 대표가 ‘한국에서의 스킨케어는 단순히 피부를 가꾸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보는 하루 루틴‘ 이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의 팝업을 함께하며 그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 행사가 단순히 뷰티 행사가 아닌, 로마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일상을 선물해 주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멋진 일주일 동안 저는 제품 판매원으로 이도는 이벤트 홍보를 이안은 스킨케어 손님들을 위한 이탈리아어, 한국어 통역과 학교 내 학생들에게 팝업 행사를 홍보를 함으로 작지만 뜨거운 도움을 더했습니다.


이후 이안과 이도가 다니는 로마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탈리아 학생들을 위한 스킨케어 강의를 마지막으로 로마의 팝업 행사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행사가 끝났고, 하루 만에 조립되었던 가구는 하루 만에 분리되었고 순식간에 행사장은 다시 빈 공간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텅 빈 공간 속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텅 비었지만

우리의 안은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요.

앞으로 우리 각자에게 펼쳐질 더 많을 즐거움에

기꺼이,

기쁘게 참여하고 나누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지금보니 행사장 위 영화 포스터가 의미 심장하게 느껴진다. 영화 속 대사 “이건 혁명이야!”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가능한 일이다.
소품 준비와 통역을 도왔던 이안도
행복한 얼굴들
인산인해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철수
로마한글학교 행사
신문 전면 기사
미니팝츠 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