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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Sep 20. 2018

시월드에서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지난번 시월드에서 균형 잡기를 보시고 따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팁을 원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분들을 위해 첫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어디까지나 시가족의 상황은 전부 다릅니다. 우리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커피는 예쁜 여자가 타 와야 맛있지.’

‘어이! 물 좀 줘~’

‘넌 아프면 안 되다. 네가 아프면 애는 누가 챙기고, 니 남편 밥은 누가 해주냐’     


직장 내에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간다면 직장 갑질 119에 신고라도 할 수 있겠지. 시월드에서는 신고할 곳이 없다. 맘 카페에 하소연해봐야 위로는 받지만 해결은 안 된다. 남편?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대한민국 갑질 공화국이라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시간 동안 토론 방송을 하거나, 갑질 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에 벌금을 물리거나, 무례한 고객일 경우는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회사 방침도 만드는데 가정사에는 대책이 없다.


그저 며느리로서 한 개인의 자질 문제로 삼는 게 서로 속 편한 해결책인양 보인다. 왜일까? 1989년도에 최진실을 스타로 만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광고 문구가 아직도 머리 속에 뿌리 박혀 있어서일까?      




시가에 가면 늘 부엌에 감금되어 있는 듯 했다. 그 날도 저녁상을 치우는데 3살짜리 아이가 다쳤는지 다급하게 엄마를 찾으며 밖에서 운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뛰어나가 아이를 확인하는 순간, 뒤에선 시아버지가 말하고 있는데 나간다고 ' 000'이라며 욕을 퍼 붓는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이 시월드다.      


직장 내에서 ‘네가 최순실이냐’라는 말이 모욕죄로 성립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다. 시가에선 000이라는 직접적인 욕을 들어도, ‘넌 돈 백만 원이나 버냐? 네가 벌면 얼마냐 번다고’라는 식의 비난을 들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법은 고사하고 최소한 남편의 보호라도 받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우리 아버지 원래 그래. 네가 참아’ 이 말이 전부다.    

 

시가에서 무례한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웃으며 넘기거나, 참는 게 다였다. 사실 무례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상처 쉽게 받는 내 성격 탓을 했고, 견뎌야 할 '일'이라 여겼다. 착각이었다.


나이 든 시부모님 도와드리는 좋은 며느리이고 싶었고, 행여 친정 부모님이 욕먹을까 봐, 혹시나 몸싸움이라도 일어날까 봐, 아이에게 더 안 좋은 상황이 생길까 봐 견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대로 더 잘하거나 잘 참거나 식의 반응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분들은 내가 웃거나 참으니까 그래도 되는 것이라 생각해서 비슷한 행동을 지속했다. 내가 먼저 잘하면 그들도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남편 부모에게 잘하면 남편도 내 부모에게 나만큼 하는줄 알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는걸 뼈 아프게 느꼈다. 남편은 그저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나'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당신의 부모 또한 당연하다 했다.


그건 맞지 않다고 설명해도 아무리 내 자존감을 지키려 발버둥을 쳐도 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악을 쓰다 보니 불행이 돌고 돌았다. 그 불행을 깨기 위해 나름의 해결방법을 만들었다. 그 첫 번째로 시월드 사람들에게 무례한 말이나 욕먹었을 경우에 대해서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방송 캡쳐


구체적인 팁


듣는 순간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면 참지 말자.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라거나 지금 욕하셨나요?’라고 되묻자. 그 순간 바로 되물어야 한다. 욕이나 상대를 비하하는 발언은 잘못이라는 걸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물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은 대략 3가지다. 그 반응에 따라 우리 갈 길을 정하면 된다.  

    

1. 우선 ‘욕했다 왜 어쩔래?’ 식의 적반하장 격 답변이다.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망 없다. 선 긋자. 그런 사람들이 내 마음에 다시는 손도 못 대게! 상처받지도 말자. 그러기도 아깝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당히 하자. 이런 집안에 잘해봐야 나중엔 명절 일주일 전부터 와서 일하라고 소리친다.  

    

2. 두 번째, 약간의 침묵과 함께 움찔하는 경우다. 가망 있다. 이럴 땐 바로 다음 말을 이어간다. 목소리는 낮고, 단호하게, 감정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방금 욕한 건 잘못하신 겁니다. 사과부터 하시고 원하시는 게 뭔가요?’라고 묻는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며느리의 말에 방금 내가 한 말이 잘못이라는 걸 인지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순간 돌아보게 된다.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답을 찾기 때문에.


3. 세 번째, 바로 사과하는 경우다. 바람직해 보이긴 해도, 앞으로 내 딸아이 앞에서 욕먹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사과를 잘 받자.      


융통성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괜히 웃지 말고, 별일 아니라는 듯 쿨한 척도 하지 말고, 마음 넓은 척 괜찮다는 말은 넣어둔다. 단호하게 말씀드린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이런 말은 또 다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내 할 일 한다.  

        



시아버지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 사랑받고 싶은 거다.


뜨거운 국물을 좋아하셔서 방울방울 터지며 우르르 소리 내는 국을 3초 안에 바로 갔다 드려도 국물이 식었다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낸다. 이유는 없다. 습관이다. 시아버지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물론 근본 원인은 안다. 알기 위해 온갖 심리학 책을 찾고,  빼기하명상까지 하고, 수십 개의 심리학 강의를 들었던 덕분에.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거나 원가족, 특히 당신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와 배신감이 화로 표현되고, 채워지지 않았던 부모의 사랑을 평생 아내에게 갈구하며 살아온 삶을 이해한다.


그걸 받아낸 시어머니의 삶 또한 퍽퍽하다. 그렇다고 며느리인 나까지 그 자리를 대신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 난 내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 권리가 있다.    


원이가 그린 무당벨레


그분도 외롭게 살고 싶진 않을 거다. 손주들이 피하고 아무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아서 만 원짜리 몇 장 들고 있어야,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다가가기라도 하는 관계.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졌을 때 주변 가족들의 눈치와 도망감 속에서 느꼈을 외로움.  

    

그 외로움을 그 분도 이젠 어쩌지 못해 늘 해왔던 대로 하는 겠지. 그 속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음의 손잡이는 안쪽에 있으니까. 본인이 이건 아닌가 보다 라고 느끼기 전까지는 답이 없다.      



그걸 이해하고 나니까, 내가 당해야 하는 이유를 더 이상 나에게서 찾지 않게 됐다. 그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게 다행이다. 더 늦기 전에 14년 동안 원, 죄책 무기력에 쌓여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 뿐이다.


이 글이 나같은 처지의 며느리분들께 위로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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