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딸랜드 Sep 21. 2016

여기가 부티끄 호텔이 아니라 도서관이라고요?

도서관의 개념을 바꾸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알미르 신공공도서관

살다 살다 보다 보다 이렇게 근사한 도서관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이미 훌륭한 네덜란드 도서관을 많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지역마다의 명물인 도서관을 대할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버릇 같은 감동이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차별적 운영으로 그 도서관의 매력을 알아가기 전에 이미 도서관 건축물을 보는 순간 잊지 못할 첫인상을 가지게 된다.  도서관 현관을 열고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나? 와~ 진짜 멋지다! 건물 자체가 예술이다!라는 말을 녹음된 테이프 틀어놓은 마냥 반복적으로 외치게 된다. 나만 그리고 함께 한 우리 아이들만 느끼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알미르 신공공도서관(De Nieuwe Bibliotheek van Almere)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의 평가에 따른 수상실적은 이러하다.


2010년 11월 건축가 Meyer en Van Schooten이  수상

2010년 11월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수상

2010년 12월 올해의 최고 도서관 수상 (Beste Bibliotheek van Nederland)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약 이삼십 분 거리에 있는 알미르 역(Almere Centraal)에 내려 중심가를 따라 걷다 보면 수많은 상점을 지나치게 된다. 패스트푸드점, 꽃가게, 카페, 유명 패션의류점들을 지나가다 보면 눈에 띄는 커다란 건물이 있다. 보기에도 시원스레 생긴 청량감 넘치는 건물이 우뚝 서있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답답함이 절대 느껴지지 않는 외양이다. 푸른빛의 유리와 세련된 회색빛 감도는 진한 오크색과 조화를 보이는 이 건물은 쭉 뻗은 모양새만큼이나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시원한 기분을 던져준다.

도서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나올 때까지 유쾌함이 지속된다는 것이 이 도서관을 방문한 보람이자 소감이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남보랏빛의 책장과 크나 큰 러그를 깔아 놓은 개성 있는 바닥을 보면서 내가 디자인 호텔을 찾아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고 잠시 혼돈이 왔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스탠드와 각종 데코들, 각 공간마다 어울리게 비치해 둔 소파나 의자들, 책장과 책꽂이 자체도 일렬종대나 일렬횡대 아니면 규격 갖춘 네모난 모양이 아니라 푸른 파도 넘실거리듯 출렁거리는 물결모양의 책장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출렁거리게 한다. 낮은 계단 하나씩 오르면서  인테리어 하나하나 살피면서 한 편으로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깥 풍경에도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러면서 두 갈래로 나뉜 도서관 건물 사이 중앙에 위치한 비밀정원에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서 품으면 안 될 것 같은  행복한 조바심이 생긴다. 책부터 고를까? 이 안락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을까? 아님 정원에서 차 한 잔부터 마시고 시작할까?


투명한 유리벽 사이 비밀 정원은 햇빛과 바람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인테리어로 삼은 고급 백화점이나 디자인 호텔, 부티끄 호텔이라고 보면 적당한 표현 같다. 각 층마다 도서관 사서들이 친절하게 도와주고 있고 층별 안내와 서비스를 안내하는 안내판 하나도 하나의 작품이니 말이다. 외양만 그럴싸하고 화려한 장식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이 도서관의 가치는 드높아져 간다.


알미르(Almere) 시에는 약 20만 시민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 32%가 도서관 회원증을 소지하고 있다. 꽤 높은 비율이다.  물론 회원증이 없어도 대출을 제외한 도서관 이용은 가능하다. 도서관 카드 발급 비용이 어린이와 학생들은 무료이고, 성인들만 연간 회비를 납부한다. 도서관 카드 소지자에 한하여 책과  CD , 때로는 미술품도 대여해준다.

어린이에게는 그야말로 도서관이 천국인셈이다. 무상복지 무상교육이 절대적으로 실현되는 장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알미르 신공공도서관(De Nieuwe Bibliotheek van Almere)이 보유한 책은 무려 3만여 권이고 여기에 CD와 DVD,  오디오북, 컴퓨터 게임, 읽기 도구, 전자책과 전자책 리더기와 신문과 잡지들을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장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 카페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커피와 차를 즐길 수 있고 무료로 WI-FI를 이용할 수 있으며 청결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그리고 이 지역 방문자에게 충분히 매력을 안겨 주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 멋진 건물에 들어온 김에 쉬고 쉬는 동안 새로 들어온 책이 있나 살펴보고, 요즘의 화젯거리는 무엇인가 하며 신문도 들추어 본다. 최신 유행 판도를 파악하기 위해 잡지책도 넘겨보는 이런 일상 가운데의 가벼운 책 읽기는 물론 깊이 있는 독서생활까지 부담 없이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지적인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칫 사치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근사한 도서관을 옆집 드나들듯 다녀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도서관 맨 윗층의 브런치 카페


이 도서관은 플러스 도서관(PlusBibliotheek)이라고 부른다.

보유한 장서와 도서관 서비스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도서관 이용을 하면서 2%가 부족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뭔가 기대 이상의 만족감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난독증을 가진 어린이나 성인들을 위한 컴퓨터 보조 프로그램이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월별·주별로 마련되어 있다.  주말을 이용하여 신청자에 한하여 생일파티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학회 회원이나 대학생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세미나를 하려고 할 때 극장 또는 세미나실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무늬가 도서관이지 이 곳에서의 활동은 우리가 필요로 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생활편의와 복지가 실현되는 꿈의 장소인 것이다. 그것도 공공도서관이기에 공공복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잠시 잡아주고 그 흐름의 유통을 더욱 품격 있게 도와주는 문화생활의 허브로서 알미르 신공공도서관의 역할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은 도시의 숲이다.


일상의 얼룩진 마음이 초록 숲의 신선한 공기로 상쾌해지듯 갓볶아진 커피 향이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새롭게 한다. 게다가 도서관 안에 감쪽같이 존재하는 정원 안에서의 차 한잔을 즐기는 시간은 여느 부티끄 호텔에서의 시간보다 더 근사하다. 장시간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호텔에서 여가를 즐기고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볼링장, 레스토랑, 카페 등을 이용하면서 바캉스를 누리듯 이 곳을 드나드는 이들은 부담 없이 언제나 호텔 바캉스를 누린다.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다.  여기서 누리는 모든 서비스가 게다가 무상이니 이보다 더한 휴가가 어디 있을까?




일상과 휴가의 경계가 없다.

이 도서관 앞 광장에서 주말마다 혹은 일주일에 몇 번씩 장터가 열리고, 사람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고 날마다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마트와 가게가 몰려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 내킬 때마다 혹은 발걸음 닿는 대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친근한 장소이다. 단지 동네 사랑방이 동네 참새방앗간이 너무나도 근사해서 처음 들어설 때만 마음이 움찔해질 뿐 왕래가 익숙해지면 고급문화를 일상에 끌어당겨 삶의 질을 높여주는 꿈의 도서관이 바로 이 곳이다.



그저 부럽기만 한 그들의 일상이다. 실제로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할 때 책이 부족하여 안타까워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책은 언제나 넉넉했고 자료도 풍부했고, 비록 인기도서는 바로바로 대출할 수는 없어도 다른 선택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도서관 공간은 언제나 넓었다. 충분히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만한 여유가 넘쳤고, 내가 공부를 하든 책을 보든 잠을 자든 커피를 마시든 아니면 컴퓨터 게임을 하든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이지 도서관에서 간섭하는 일이 아니었다. 통제와 제재가 없는 곳에서 자유로운 자가 통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크게 결례를 행하는 이들이 없다. 암묵적으로 서로 간의 기본적인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행여 너무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있다면 살짝 눈짓을 하거나 조용히 사서가 다가가 노는 법을 알려주던가 책을 보는 곳으로 따로 안내를 해준다. 강압적이지 않다. 권위적이지도 않다. 마치 5성급 호텔에 들어온 투숙객을 향하여 호텔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정중하게 제공해주듯이.


                       개성 있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다양한 러그들이 도서관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알미르 신공공도서관에서 나오는 순간 건축가 Swarte가 공공도서관을 왜 호텔 라운지로 비유했는지 절대 공감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함께 해준 사랑하는 네 딸들아

도심 속 호텔에 놀러 온 기분이라며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그곳에서 책 보고 놀고 즐기던 너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상을 여유롭게 품격 있게 보내기에 도서관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이 사실을 힘주어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도서관에 들어가 자리 잡고 능숙하게 도서관에서의 여유를 누리는 그 인생이 귀하다. 먼 훗날 너희들이 이렇게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책 여행을 떠난 것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낄 날이 오겠지? 너무나 바쁜 현대 생활에서 한 모금의 차 한잔을 나눌 사람과 시간조차 마땅치 않을 때 스쳐 지나가는 영화 자막처럼 오늘의 도서관에서의 추억이 너희들에게는 살아갈 용기를 줄 것이다.




& 출판전문잡지 출판저널 489호(2016년 10월호)에 이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잘 만든 도서관 하나 열 키즈카페  안 부럽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