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감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ntimental Vagabond Feb 03. 2023

보니 가머스의 <레슨인 케미스트리>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얼마 전 친오빠에게 아이패드를 선물 받았고, 우연히 yes 24 북클럽을 가입하게 됐다. 평소 책값으로만 월에 10만 원 정도를 쓰는데 북클럽에 가입하고 5,500원에 읽고 싶은 책을 무한정 읽을 수 있어 독서량이 훨씬 늘어나게 되었다.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띈 Lessons in Chemistry.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고, 최근 애플티비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있다니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엘리자베스 조트라는 '여성' 화학자의 성장스토리와 같은 이야기다.



아래는 출판사의 리뷰이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이제껏 보지 못한 우아하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다. 그녀는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치고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밝혀내지 못한 ‘진화 이전’ 분자의 비밀을 연구하는 화학자다. 문제는 당시가 1955년이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보통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세상이었고, 임금 노동자라고 해도 사무 보조원이나 행정직원이 대부분이었다. 연구소 동료들은 엘리자베스를 동등한 화학자가 아닌 연구 보조원이나 커피 심부름을 담당할 사람쯤으로 여긴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는 바로 노벨과학상 후보 캘빈 에번스다. 유능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섬이나 마찬가지였던 두 사람은 영구적인 화학 결합처럼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과학자로서의 이름과 연구를 지키기 위해 ‘결혼 없는 동거’를 선택한 엘리자베스는 캘빈이 사고로 죽자 비혼모가 되었다. 하지만 주저앉아 울 시간조차 없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난 엘리자베스는 쇠지레로 직접 집 부엌을 부수고 개조해 실험실로 만들고 연구를 해나간다.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화학자 지망생’이 아니라 이미 훌륭한 화학자니까.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비혼모인 그녀는 딸이 다섯 살이 되던 무렵 우연찮은 계기로 TV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의 MC로 발탁된다. 급기야 미국 부통령까지 그녀의 팬을 자처하는 미국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는데..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우선 너무 재밌다. 캐릭터들도 너무 좋고, 마치 미드를 보는 듯한 빠른 전개와 흡입력, 주말에 밥도 안 먹고 순삭 하며 두 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엘리자베스를 응원함과 동시에 나도 해내고 말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레슨인 케미스트리를 쓴 보니 가머스의 이야기도 재밌었는데, 육십이 넘어 처음 쓴 소설이 바로 이 책이었다고 한다. 첫 작품이 2020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영국에서 16개의 출판사가 경쟁한 뒤 데뷔작 사상 가장 높은 계약금 200만 달러(한화 약 25억)에 출판권이 계약되었다고 한다. 출간 후에는 현재는 3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고, 애플 TV는 이 소설을 브리 라슨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은 분들은 알겠지만, 저 강아지가 6시 30분인가보다




많은 사람들이 틀에 박힌 지난한 일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나의 지긋지긋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싶다는 소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변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나 역시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하고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사실 변화란 화학적으로 언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소리친다. 엘리자베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기에 그 말이 더 설득 있게 와닿는다. 내가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그리고 계속해서 말한다. 시스템대로 움직이지 말고, 시스템을 뛰어넘자고. 내가 여자라서. 나이가 많아서. 애가 있어서. 내가 가난해서. 못 배워서. 더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고 함께 시스템을 뛰어넘자고 말이다.



거짓 종말론을 설파하며 성물을 판매하다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가 있는 아빠와 아이들을 버리고 브라질로 이민 간 엄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성애자 오빠까지. 그리고 마침내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어이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남자를 잃고 나니 배 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어 미혼모가 된 엘리자베스. 온 우주가, 그리고 눈앞에 드러난 모든 증거가 네 삶이 불행할 거라고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마음먹고 끊임없이 화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또 엄마로서의 삶을 헤쳐나가는 엘리자베스. 그런 엘리자베스가 하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고, 우리는 시스템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엘리자베스와 함께 달리고 변화하고 싶어 진다. 여성들에게 희망이 아닌 믿음을 주는 명랑한 자기 계발서와 같은 소설이었다.



<1권>


시스템을 굳이 뛰어넘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싫었으니까. 애초에 시스템을 바르게 만들면 안 되는 거야? 호의를 받아들인다는 것도 정말 싫었다. 호의란 결국 꼼수와 다를 게 없다.



누군가 퍼즐 조각이 든 상자를 마구 흔든 다음, 바닥에 우수수 쏟았더니 모든 조각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내려앉아 저절로 단단하게 맞물려 완벽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완성품이 되었다고 한 할까. 다른 연인들이 보기에는 정말 눈꼴신 커플이었다.



그리하여 가족 이야기는 마치 유서 깊은 고택을 탐방하다가 마주친 출입금지 방 같은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꾸준히 슬픔을 먹으며 자라난 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큰 슬픔을 먹고살았다는 걸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너무나 힘든 삶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가, 우주의 모든 법칙과 눈앞에 드러난 증거가 네 삶이 불행할 거라고 외치는데도 불구하고 내일은 나아질 거라고 마음먹다니. 정말이지 보통 용기 있는 아이가 아니었구나.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 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롯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에게는 대단한 것을 이룰 가능성이 있었다. 누군가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운명을 타고나기 마련이고, 자신 역시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러면 머리가 폭발하려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듯이.



인생은 열심히 노력해서 헤쳐나가면 되는 거라고 계속 믿고 있지 않은가.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인데. 하지만 이제껏 엘리자베스는 운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운이라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기만 한다면 이 노력이 언젠간 빛을 발할 거라고 그녀가 얼마나 단언했던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인생에는 사실상 최선을 다해도 노력이 빛을 잃는 경우가 더욱 많은 법인데.



누군가 배짱 좋게도 ‘연구소의 보고를 해주러’ 오는 건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요금을 두 배로 받을 생각이었다.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캘빈에 대해 지껄이면 세 배를 받을 생각이었다. 임신한 걸 두고 행복하지 않냐, 기적과도 같다 운운하면 네 배를 받을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먹고살았다. 아무런 공로도 받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연구를 해주면서 말이다. 예전에 헤이스팅스에서 했던 일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번주만 벌써 일곱 번째였다. 누군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와, 네 인생이 곧 바뀔 것이며 앞으로 지긋지긋하게 살아가게 되리라는 말을 무슨 임무처럼 전달하곤 했다. 그녀는 앞으로 직업도 없어지고, 연구도 못 하게 되며, 방광 기능 조절도 안되고, 발톱도 제대로 안 보이고, 잠도 푹 못 잘 것이며,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허리가 아플 것은 물론이고 임신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하게 여기는 온갖 자잘한 자유를, 이를테면 어떤 어려움도 없이 운전대 앞에 앉는 자유 같은 걸 전부 잃어버릴 거라고들 말해댔다.


그렇다면 잃어버리지 않는 건 없나? 있다. 바로 몸무게다.



자신이 최우선이 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오롯이 나만의 시간요. 아기도. 일도. 죽은 에번스 씨도. 더러운 집도 다 제쳐두고요. 딱 나를 위한, 엘리자베스 조트를 위한 시간을 가져봐요. 뭘 필요로 하든. 뭘 원하든, 뭘 찾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추구해 봐요.



처음에 느꼈던 흥분은 곧 싸구려 매니큐어처럼 닳아 없어졌다.



부모가 되는 일은 공부하지 않은 영역의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토록 믿어주는 모습도 참 오랜만에 보았다. 부족한 엄마를 이토록 믿음직하게 여기는 아이에게 그녀는 압도적인 사랑을 느꼈다.



아기를 낳은 뒤 엘리자베스는 깨닫게 되었다. 아기를 키우는 건 저 먼 행성에서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과 함께 사는 것과 비슷하구나. 처음에는 외계인이 우리의 방식을 배우고, 또 우리는 외계인의 방식을 배우면서 서로 주고받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점차 외계인의 방식은 사라지고 우리 지구인의 방식이 고착화 된다. 엘리자베스는 그 점이 유감스러웠다. 어른과 달리 외계인 같은 자신의 딸은 제아무리 작은 발견도 지치지 않고 해냈기 때문이다. 저번 달에는 매드가 거실에서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엘리자베스는 한 시간짜리 업무를 다 망치고서 급히 아이의 곁으로 달려갔다.



조정이 재미있는 점은 말이죠. 앞을 보지 못하고 노를 저어야 한다는 거예요. 조정이라는 운동은 마치 우리에게 자신을 앞서 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같달까요.



제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사람도 실망하게 되는 게 인생이죠




<2권>


난 희망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믿음이 있어요.



다른 이의 문제와 비극은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면서 자신의 상황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습관을 지닌 숱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자신이 누군지 확실하게 아는 자가 내보이는 분명한 기색. 엘리자베스는 그 자신감을 씨앗처럼 뿌렸고 그것이 마침내 상대방에게 뿌리내려 자라도록 했다.



제일 어려운 일은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럴 용기를 갖는 거란 사실을요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Crying in H mar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