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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20. 2017

봄이여, 솟구쳐 올라라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골목에서 봄을 기다리다.


상고대


절기상으로는 입춘도 우수도 지났고 남도에서는 봄꽃 소식도 들려오지만, 아직 서울의 체감온도는 겨울이다.

밤새 내린 봄비는 길 위에 쓴 '봄이 멀지 않음'이라는 제목의 반가운 편지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봄비가 스며든 곳마다에서 봄은 솟구쳐 오를 터이다.


유독, 기어이 올 것이면서 올 듯 올 듯 망설이는 봄을 닮은 역사의 겨울이라서 그런지 더욱더 봄이 기다려진다.

봄의 길목에서 겨울로 되돌리지도 못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역사의 봄날에도 구질구질한 시간 끌기로 연명해 보려는 불의한 이들의 시도가 기승을 부린다.


그러든지 말든지 봄은 오고야 말터이다.

그래도 기왕에 올봄인데, 너무 짧지 않게 "봄이여, 당장 오늘 솟구쳐 올라라!"  


상고대


이미 우리 곁에 온 봄, 그래서 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것이리라.

'이제 머지않아 이런 풍광은 사라지겠지'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에, 겨울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그 남은 흔적에 집착하는 것이리라.


뭔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얼른 떠나보내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쉬움이 남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리고 그 끝에는 '기다림'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지금 기다리는 것은 '봄', 볼 것이 많은 '봄'이다. 


상고대


무언가 하나가 더해졌을 때, 추하지 않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은 신비다.

내 삶에도 뭔가 하나 더해졌을 때 아름다워지기를 소망하지만, 다 그렇다고 할 수 없으니 반성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 반성이 더해짐으로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기를 소망할 뿐이다.


봄이라는 계절을 내 삶이 한 번 더 맞이하는 오늘 이 계절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아름다워지고 싶다. 그리고 그 삶이란, 오로지 더하는 삶이 아니면 뺄셈의 삶이기도 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을 더하는 삶 이리라.


상고대


이제 곧 흙으로 돌아갈 것들 사이에 꽃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연록의 새순을 낼 것들,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들의 맹아는 희망이다.


그래, 봄은 희망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 보이지 않아도 실상처럼 보는 것이 곧 믿음이요, 신앙이다.

신앙이라는 것이 별 것인가 싶다.

가는 것과 오는 것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이 곧 신앙인 것이요, 그것과 척짓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순리요, 그래서 신앙은 삶이다.


상고대


봄이여, 솟구쳐 올라라.

오늘의 기도다.


저 언 땅에서,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올라오듯 우리네 역사의 언저리에서도 봄이 솟구쳐 오르기를, 그래서 많은 이들이 환호할 날이 속히 솟구쳐 오기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열어간다. 오늘만큼 봄은 오리라는 그 소망으로 하루를 연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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