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는 기억의 얇은 피부 밑을 흐르는
<당신을 만지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 <<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창비, 2005
미지의 불문과 교수가 해설을 달아주셔서
나는 새삼 이 시가 좋아졌다.
미지의 불문과 교수는
"권혁웅이 작성한 기억의 계보학은
유쾌하고 비통하고 아름답다." 고 말했다. 141쪽
그들이 기억났다.
그래서 이 시의
당신을 기억으로 바꾸어 읽어봤다.
2005-2015,
기억해야만 한다고 내게 당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나누어주던 이들.
또는 높은 철탑 위에서 아무 힘없는 내 연락처를 물어보던, 나의 카톡친구.
(친구의 친구는 지금 기억으로 남았다.
기억 뿐이라서 기억해야 하는 친구의 친구를
나는 하나의 비극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이 시는 아름답다.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곤하나,
이 시가 아름다운 것에 동의했으면 좋겠다.
(걱정많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
노파심과 신파가 내 전문이다)
웃기는 이야기.
해설 바로 뒤,
시인의 말에 해설에 대한 반박이 적혔다.
그곳의 소로(작은 길)들과 사람들과 삶을 복원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탈출기의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주름 -사람들의 동선이 그어놓은- 을 잔뜩 품은 어떤 장소에 관해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사람들에 관해서, 겹으로 된 삶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42쪽, 권혁웅
별첨.
글을 쓴다면 이 미지의 불문과 교수가 바라본 권혁웅 같은 글쓴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념을 다루는 일에 철저한 훈련을 거쳤고, 논리를 운용하는 기술에서 누구보다도 능숙하며, 말의 힘을 부리는 솜씨에 빈틈을 용납하지 않은 권혁웅은
그가 보고 듣고 아는 것들, 생각하고 탐구하고 실험한 것들을 총체적으로 이용하여 기억들의 단서를 잡아채고, 그것들의 난폭한 힘을 순차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조직하고, 그것들의 탈주를 차단한다.
어구 하나 문장 하나마다 철저한 지성이 투과되어, 서술되는 기억들은 그 참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거의 투명하다."
아~
마음이 노골노골하게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다.
정말 아름다워서 감사하고 괘씸하기도 하면서
감탄의 불끈불끈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하하. 즐겁고도 슬픈,
무심히 살지 않았단 생각에 뿌듯한 내가 회개하는,
고맙고 울화통 치미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