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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코티시 Feb 14. 2016

달콤창고

인심=베푸는 행동=사람의 마음

곳간에서 인심난다. 내가 좋아하는 속담이다. 그런데 때로는 넉넉잖은 곳간에서도 인심이 흘러나온다. '달콤창고'는 지하철역 물품보관함 등 현재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간식 기부' 현상이다.


사진출처=네이버(제목글 사진도)


인심은, 사람인 마음심자를 썼을까. 한자 뜻으로 생각해볼 때는 사람의 마음. '곳간에서 인심난다', '인심쓰다' 할 때는 베품. 즉, 인심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행위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이다.


베풀다 = 사람의 마음

보관함을 연, 한 사람을 보았다. 빠꼼히 고개를 빼, 재빨리 서랍 안을 들여다봤을 때 작은 꽂이에 몇개의 소시지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서있었다.

신촌역 물품보관함 229번에는 '인심'이 들었다.

가득찼더라.


229번 물품보관함을 연 사람은 문을 닫고 뒤를 돌아서 걸어갔다. 멀찍이 지켜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슬쩍 미소짓는, 긴 생머리의, 유진닮은, 그녀, 학생?사람.


그 사람은 나를 보자 입꼬리가 올라가고 광대가 볼록해졌다. 둥그런 눈매보다 광대와 입꼬리 사이 당겨진 근육이 참 아름다웠다. 그건 진짜 미소였다.


이렇듯 작은 기부가 사회의 한 흐름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작은 나눔을 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변해간다. 그건 정말이지 적잖이 예쁘다.


또 다른 한편,

흙수저와 달콤창고는 연관성이 있다는 느낌이다.

흙수저는 불평등의 상징인데, 달콤창고는 베품의 상징이다. 이용자 모두 흙수저라는게 아니다.

흙수저를 만드는 불평등은 무언가 벽이 가로막혀 태어날 때 사회적 지위를 뛰어넘을 수 없어 생긴 일이다. 개천에선 용이 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베푸는 사람들이 따뜻한 추억을 갖고 성장한다면, 벽을 허물고 나누며 베푸는 일이 사회 곳곳에 퍼질 수 있으리라. 이 기대로 달콤창고를 무척 관심있게 보고 있다.

자라나는 이들의 인심이 예쁘다. 인심 쓴 것을 받았다면, 받은이에게 인심이 있는 것이니 쓰는 이도 받은 이도 인심이 있어 아름답다. 참 ~ *.,* 좋아


(한편 기부를 마케팅 전술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벤트에 참여하면 저절로 기부가 되게끔 하는 식이다. 기부하고 이벤트도 참여하고 일석이조라며. 그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이며, 허영의 기부, 과시의 기부를 하도록 조장하는 것 같다. 정말 기분 이상하다. 모든 게 상업성이 들어가면 돈을 쓰게 한다는 의도가 보여서 진흙탕같이 변한다. 결국 기부는 기부인데도 싫다. )


(나는 지금 사람의 마음이 없다. 베푸는 것도 지쳤다. 뭘 그리 베풀었냐하면, 내 어리숙한 열정이다. 아마 받는 쪽도 지치게 하는 열정이었을게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리고 회사에 관해서는 열정이 없어지려한다. 소진되는 기분이다. 기분탓일거야. 실제로 그렇지는 아니하거나 그렇거나... 모른다고 일축하겠다. 나를 위해서. 또 오늘은 빗속을 거닐면서 가족에게만 헌신하고 있는 내 자신을 되돌아봤다. 타인을 위한 일은 전혀 없는게 개탄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 자신을 진정 사랑하면서 가족에게 쏟아붓고 있지도 않다.)


(나는 229번을 연 사람을 '그녀'로 먼저 인식했다.

그녀라는 단어 대신, 사람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더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으로 먼저 보기도 전에, 여자라고 판단하고 학생일 것이라고 짐작하는가 하면, 옷매무새를 살폈다. 나는 내가 예쁜 인심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다면 별점 2-3점이 당연한 결과다. 수긍한다.


사실 그 달콤창고, 내가 채울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빼먹을 생각은 든다. 나는 이제 베푸는 것도 지쳤다고 애먼데다가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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