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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흥만 Dec 31. 2015

엄마가 다 해줘

아시시에서 순례자가 여행을 대하는 자세.

오늘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는 날이다. 난 사실 수녀원에 도착한 첫날부터 한국인 수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한쪽에서 너무 달려들면 다른  한쪽에서 도망가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태연한  척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마지막날 아침식사시간 난 조급한 마음에 태도를 바꿔, A수녀님께 다가갔다.


"수녀님, 시에나에 가보셨어요?"

"아뇨, 전 아시시 외에는 로마와 피렌체가 전부예요.."

난 다시 수녀님께 여쭈었다.

"수녀님 그럼,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이탈리아 여행지가 있을까요?"

나의 이번 여행이 순례여행이라 말씀드리자 수녀님은 내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말씀하셨다.


"세상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아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봐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세계의 모든 곳을 여행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는다면 여러 책이 아니라 한 문장이 중요하고, 여행을 한다면 여러 여행지가 아니라 한 순간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유럽여행을 하면서 짧게 짧게 도시를 옮겨가는데...

전 솔직히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치기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시겠지만, 기도에서 중요한 건 하느님께 내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분 말씀을 들으시는 거예요.

기도하러 오셨다면, 엉덩이를 붙이셔야 해요."


이어 수녀님은 기도 중에 나를 기억해주시겠다고, 내 이름과 세례명을 써달라고 하셨고,

나 역시 수녀님 말씀에 반해 메모장에 수녀님 존함과 세례명을 받았다.

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나는 그렇게 따뜻하고 깔끔했던 수녀원 순례자 숙소를 나왔다.


새 숙소는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아래 'A casa tua'라는 이탈리아 민박집이다.

이탈리아 말로는 다비드, 영어로는 데이빗이라는 친절한 아저씨와, 새색시 같이 깜찍한 안나라는 아줌마가 사는 집이다. 이 에어비앤비하우스는 일반 이탈리아 가정집이라 투숙객이 나 아니면 한 팀 정도 더 있을 일반 이탈리아가정집이다. 내가 이 집에 도착한 첫날은 나와 이 집 부부 내외가 전부였다. 물론 내가 이 집을 떠날 때 이 집의 상황은 지금하고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난 다비드의 집 설명을 듣고, 미끄러지듯 아시시의 관문인 Piazza San Pietro로 달려나왔다. 왜냐하면 수녀님 말씀대로 엉덩이를 붙이고 기도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은 내 선택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누구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는지도 참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 어느때부터인가 난 가톨릭 수도자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자수도자인 수사와 여자수도자들인 수녀님들을 많이 만나왔었다. 그런데 남자수도자들은 멋진분들을 많이뵙지 못했는데 여자수도자들인 수녀님들은 예수님을 닮은 분들이 많았다. 아마 내가 여자였더라면 오늘 만난 이 수녀님의 수도회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오늘 만난 수녀님은 참 오롯한 수도자의 느낌을 가지신 분이셨다.


오늘 내가 찾은 성당은 아시시역 인근에 천사들의 성마리아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이다. 이 성당 중앙에 포르춘콜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프란치스코회가 수도회를 시작한 장소라고 한다. 또 성당 내 트란시토라는 장소는 성인께서 숨지신 장소이기에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은 아시시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큰 바실리카 즉, 대성당이라고 한다. 게다가 성당 내부 정원에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세 가지 기적 중 하나인 가시 없는 장미를 볼 수 있어 성당은 하루 종일 순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순례를 마치고 성당 성물판매소에 들려 지인들에게 줄 따오십자가묵주를 골랐다. 그리고 난 수녀님 인상을 한 성물판매소 여직원분에게 조심스레 인근의 맛집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자, 터프하게 영수증 종이를 두르륵 뽑으시더니 거기에 아시시역 근처의 맛있는 레스토랑 두 군데를 적어주셨다. 룰루랄라 이쪽으로 가면 아시시역이겠거니 하면서 가고 있는데 내 구글맵에서의 내 위치와 아시시역이 뭔가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난 차를 주차하시는 건지 운전하시려는 건지 알수는 없지만 암튼 주차장에 서 있는 부부에게 쪼르륵 걸어갔다. 그 분들에게 아시시역 가는 길을 알려달라 하자 이 분들은 내게 길을 안내해주다 말고 두 분이 이탈리어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나에게 차에 타라는 몸짓을 했다. 나를 아시시역까지 자신들의 차로 태워주겠다는 거다.

꿈인지 생시인지 난 감사하다며 차를 얻어타고, 식당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아내분에게 보여드렸다. 웃으시며 여기 안다고, 문제없다며 식당까지 태워주셨다. 이런 일이 영화나 블로그에서나 있지 내 여행에서도 일어날지 몰랐다.


  성물판매소 직원분이 소개해준 Elide 레스토랑에서 토마토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2시 15분 성 프란체스코 1층 성당 앞에서 눈물수사님을 두 번째로 만나 뵈었다. 왜냐하면 이 수사님은 나를 첫 번째 만날 때에도 대화중에 눈물을 보이셨기에 나는 이 수사님을  눈물수사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늘은 3개층 3개의 성당으로 구성된 성프란치스코성당과 그 성당과 연결된 성프란치스코회 꼰벤뚜알 수도원을 소개해주신다고 만나 뵈었다. 두어시간에 걸친 성당소개가 끝나고 오늘도 저번처럼 만남방에서 카푸치노를 마주한 채 우리는 앉았다. 사실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무슨 특별한 목적을 두고 만나 사이였다. 우리에게 공통 분모가 있다면 하느님과 수도생활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이 두 가지 주제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성프란치스코성당과 함께 연결된 수도원은 내 눈엔 궁궐 같았다. 한국에서 내가 접했던 수도원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수도원식당을 예로 든다면 식당 층고는 30m정도로 보였고, 교황님이 오시면 식사하는 자리가 있을 정도로 예사 수도원식당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가난을 외친 프란치스코의 후예들이 이런 웅장한 수도원에서 살아가도 되는지 의문을 가졌지만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되었을 당시의 유럽의 시대상을 이해해주는 것으로 타협해 주기로 했다.  


 카푸치노를 한 잔 씩 배꼽 앞에 둔 두 남자는 솔직했다. 눈물수사님은 진중하면서도 순수했다. 수사님은 우리의 진솔한 대화가 끝날때즈음 지금까지 이 방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치셨다. 더불어 한국에 가 누가 자신의 안부를 묻는다면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만 말해주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수사님과 나눈 보석같은 이야기는 나 역시 그 방에 두고 나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수사님께 들은 한 가지 조언은 함께 나누려고 한다. 훗날 눈물수사님께서도 이 내용을 아시더라도 혼날 각오를 하고 말이다.


 지구별에는 현재 성프란치스코 수도회라는 이름으로 3개의 수도공동체가 존재한다. 그 중 이탈리아 아시시 성프란치스코성당 사목을 맡고 있는 수도공동체는 꼰벤뚜알 성프란치스코회이다. 이 부분이 비밀은 아니다.  이 수도회의 창립자인 프란치스코성인은 여러 애칭을 가지고 계신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애칭은 아무래도 그리스도를 많이 닮고 흠모해 생긴 '제2의 그리스도'라는 애칭이 아닐까 싶다. 이 꼰벤뚜알 성프란치스코회의 한국관구 수호성인은 독일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돌아가신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신부님이신데 이 성인 역시 생전에 훌륭하신 삶의 모습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콜베성인께서 존경받는 대표적인 이유는 성모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 때문일 것이다. 눈물수사님도 콜베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한국관구 소속으로 수호성인인 콜베성인의 영향을 받아서 그러신지 성모님 사랑이 보통이 아니셨다. 수사님은 대화중에 성모님을 '엄마'라고 부르시며 종교보다 더 가깝게 성모님께 다가서고 계셨다.


 나 역시, 성모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린시절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보지 못한 나 역시 아시시에서 듣는 '엄마'라는 단어는 내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사실 난 어렸을 적, 이 말을 했어야 하는 나이에 이런 말을 못해보고 성장했었다. 슬퍼도 울지 말아야 했고, 부모님의 맞벌이로 엄마한테 어리광 한 번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성장하였다. 그런데 수사님께서 앞으로 삶, 이번 순례 여정, 심지어 오늘 저녁 들릴 레스토랑까지 엄마에게 여쭈어 보란다. 그래서 난 수사형 말만 믿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나서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다 해줘.."


"엄마, 어젯밤 이 순례 여행이 무서워졌어요. 계속 다음 순례지를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하고, 교통편을 예약하고, 가봐야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탈리아 성당들뿐인데... 더 이상 성당을 보고도 감응이 없어요.. 저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어젯밤 우연히 잠들기 전 읽었던 몇 페이지의 책 안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자 이제 자자. 내일은 분명 좋은 날. 무얼 그리 외로워하는 거니? 이젠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라는 글이었어요.


전 알아요. 어젯밤 책에서 접한 글들, 그리고 오늘 수녀님과 수사님의 말씀들, 다 엄마께서 손 써주신 것을 알아요. 이번 순례여행 역시 하느님과 엄마의 콤비네이션으로 저를 아시시로 초대해주셨잖아요"


아시시 한인수녀님이 계신 수녀원 숙소 http://blog.naver.com/dormitorio

강추하는 아시시 에어비앤비 숙소 A casa tua 예약 http://www.booking.com/hotel/it/b-am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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