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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도은 Jun 01. 2016

우리는 왜 주택에 살지 못할까

2. 선택과 비극

두 가지 매물


 대구광역시 동구 ㄱ동 부근의 아파트는 2016년 6월초 현재 시가 3억 ± 1000만원이다. 34평 아파트 기준이며, 이를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880만원이다. 이 아파트는 현관 앞에 커다란 복도가 딸려 있으며, 이를 대문으로 막는 시공을 하여 작은 마당을 둘 수 있다. 버스 정거장이 가깝고, 바로 옆엔 중간 규모의 시장이 있으며 대형 시장과 시내 중심가로 향하는 대로에 맞물려있다. 


 반면 바로 옆 골목의 주택은 대지면적 50평 기준 평당 580-600만원의 수준이다. 용도지역상 일반주거지역이므로 대지의 총 60퍼센트에 주택이 자리 잡을 수 있어 주택의 층별 넓이는 30평이며, 복층이다. 당연히 그 나머지 평수의 마당이 있고, 평당 가격은 지어진 지 30년 미만의 이 복층 건물을 포함해서다. 시가 3억 ± 1000만원, 넉넉잡은 가격이다.




비교


 우리는 쉽게 이 두 주거형태의 특징을 비교한다.


 아파트는 깔끔하고, 단지는 고급스럽고, 범죄가 적으며 주차가 비교적 쉽다. 공유 부분은 관리를 위탁해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동 호수마다 시세차가 크지 않고, 아파트 단지의 가격을 잘 따져보면 전입과 전출 시 손해 볼 확률이 데다가 그 차익을 노릴 수도 있다. 강력한 카르텔들이 공간의 상하좌우에서 가격을 방어해주고 있지 않은가.


 반면 주택은 낡았다. 외장의 관리를 주인이 할 수 없으니 물때가 끼기 마련이고, 자재 또한 콘크리트에 페인트 마감이 전부라면 더더욱 오염에 취약하다. 주택이 위치한 골목은 위험해보이고, 주차는 전쟁이다. 주택은 오래 살기 때문에 건물 값이 거의 없고, 무턱대고 구입했다가는 붙박이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시세가 일정치 않고, 주변 공인중개사는 믿을 수가 없다.



 선택은 이토록 간단하다. 우리는 조합원 가입이건, 분양권 당첨이건, 프리미엄이 붙은 사전 양도건 아파트를 선택하고 계약서를 들고 은행으로 가서 대출을 받으면 된다. 단지별, 세대별로 이미 시세는 정해져있고, 매매가는 실거래가 신고를 통해 투명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대출도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층간소음이나 벽간소음, 난방열사를 탄생시킨 얌체 주민 등의 일상적 문제는 아니다.




진화의 다양성


 이 선택이 그 출발부터 옳은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출발’이라 함은 시점의 문제다. 아파트와 주택의 주거 형태에 대한 당연해 보이는 선택에는, 혹은 그 양 주거의 특징이 굳어진 이유에는 주택의 잘못이나 아파트의 선전 이외 외부적 요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의 궤변과 같이 들린다면 이 글이 부동산 전문가를 가장한 개인의 에세이에 그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주거형태와 단독주택의 주거형태는 주거의 양 극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간 주거의 진화의 선에 두 형태가 놓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식물군에 그 우열이 없는 것과 같다. 예컨대 동남아시아 군도의 수상가옥 형태와 북극의 이글루 중 어떤 것이 진보한 건축물인지를 비교하는 것 처럼 의미가 없다는 것. 물론 두 주거형태의 장단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한 형태의 장점이 또 한 형태의 단점으로 치환되는 공식은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두 가지 주거형태를 설명할 때 ‘장단점’으로 이를 비교하여 한 형태의 우월성을 찾아내는 것이 불필요하고, 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굳이 수평적 발달선상에 두 가지 형태를 놓는다면 그것은 ‘효율성’의 직선상 정도가 적당한데, 이에서는 아파트가 압도적으로 앞선다고 하겠다.




선택과 비극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이끄는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손쉬운 계량화’라고 하겠다. 얼마 전 변호사들이 중개 관련 업무에 손을 댔다가 검찰의 조사를 받은 바 있는 T법인 또한 계량화가 이뤄져 중개에 큰 부담이 없는 서울 지역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단일 토지에 올라간 거의 똑같은 형태의 수직배치 주택들은 규격화돼있고, 분양 시점 기준 동일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레디메이드. ‘주택쇼핑’의 개념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방식은 누구에게 유리한 것인가? 거주민에게 유리한 점도 많겠지만 분명 이 계량화로 인한 효율성의 저울은 공급자에게로 기울어져있다. 조금 범위를 넓혀 보자면 ‘파는 이’에게 맞춰져있는 것이다. ‘파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사는 이’도 이 방식의 이점을 취한다. 그렇다면 모든 구매자와 판매자가 이점을 취하는 데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만약 그렇게만 느껴진다면 우리는 큰 비극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질문에 답하다보면 이 비극을 포착할 수 있다.



 "집을 팔기 위해 사야 하는 것인가, 살기 위해 사야 하는 것인가? "


 주택을 구입한 당신은 중개업자도, 건설업자도 아니다. 그런데 집을 팔 생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주택의 열악함도, 아파트 단지의 화사함도 아닌 이 비극에서 출발한다. '팔기 위해 거주지를 산다'는 비극은 '평당가격' 집착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비극은 동시에 뚜렷한 현실이기도 하다. 


 만약 이 같은 고려가 주택구매를 크게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왜 매각을 고려해야만 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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