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해의 관점에서 본 결혼의 형태
키르기스스탄에는 알라 카추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잡아 달아나기'쯤 되는 이 말은, 여성을 납치해 결혼하는 납치혼의 일종인데요. 2014년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1년에 결혼하는 약 54,000쌍 중 50%가 알라 카추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여성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알라 카추는 지난 2013년부터 키르기스스탄에서도 강력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복이 두려워 알라 카추로 인해 기소되거나 형사 처벌을 받는일은 매우 드물며, 키르기스스탄 유엔개발계획팀에 따르면 알라 카추에 대한 사례 보고 중 70%는 접수되지 못하거나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현대인의 시각으로 범죄와 다름없는 납치혼은 과거 중앙아시아 일대에 널리 행해졌던 풍습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유목민족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결혼의 형태인데요. 징기스칸의 아내 보르테 역시 적대 부족인 메르키트족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적이 있으며, 어머니 후엘룬 역시 징기스칸의 아버지가 메르키트족에서 납치해온 사람이죠.
이렇듯 유목사회에서는 보편적이었던 납치혼은 사회가 변화하며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여러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결혼할 때 신부의 집에 지참금을 주는 풍습이 있는데, 경제난으로 신부대금을 구하기 힘든 이들이 납치를 선택한다고 하는군요.
물론 알라 카추는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범죄로 규정되어 있고 점차적으로 사라질 풍습이지만 사람들이 왜 이런 형태의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엔 사람들이 참 '미개했고', 지금도 그걸 하는 그 사람들이 그냥 '미개하다'라는 생각은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유목민족들이 납치혼을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예로부터 족외혼, 다시 말해 자신들의 부족이 아닌 외부에서 배우자를 구했습니다. 유전자풀을 다양화하고 위급시 우리를 도와줄 동맹을 맺기 위해서였죠. 늘 이동하며 많은 전투를 치러야 하는 유목민족에게 납치혼은 족외에서 배우자를 데려온다는 것 외의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적대 부족의 인구 증가를 막고 우리 부족의 인구를 늘리는 것이죠. 적대 부족의 처녀가 그들 사이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적대 부족의 전사가 늘어나지만, 납치해 온 적대부족의 처녀가 우리 부족의 아이를 낳으면 우리 부족의 전사가 됩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나 인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생존이 우선이었던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가치들이 무엇보다 우선되었을 터입니다. 또한 이러한 풍습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반대 방향의 납치혼도 존재했거든요.
기원전 3세기에서 서기 3세기 무렵까지 오늘날의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동유럽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란계 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아인들은 여성의 아버지와 여성이 지나가는 남자나 적대 부족의 남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성별이 바뀌긴 했지만 이유는 동일합니다. 사르마티아인도 유목민족이었으니까요. 다만 성별이 바뀐 것은 모계사회적 전통과 관계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사르마티아인들은 스키타이와 아마조네스의 혼혈 민족이라 기록하고 있는데요. 아마조네스는 여성 전사들로 이루어진 전설상의 왕국입니다.
사르마티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과 그 속의 부장품 등으로 밝혀진 고고학적인 사실에 따르면 사르마티아에는 고위 여전사의 무덤이 존재했는데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거나, 동시에 여전사들도 다수 존재했던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은 사회였던 근거입니다.
헤로도토스는 사르마티아의 풍속을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사르마티아인은 아마존에서 기원했기에 여자들도 전장에서 싸웠으며, 어느 처녀든 한명이라도 적을 무찌르지 못하면 결혼을 할 수 없는 엄격한 법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은 사회에서도 납치혼은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납치혼이라는 주제가 나온 김에, 우리나라에도 납치혼의 전통이 있었는데요. 바로 조선시대 있었던 '보쌈'입니다. 동네의 과부를 이불로 보쌈(납치)해서 결혼하는 방식이었죠. 물론 우리나라가 유목문화 전통은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다릅니다.
보쌈은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과부들의 재가가 어려웠던 시절, 과부들의 재가를 돕는 편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아무나 납치하는 것은 아니고 미리 매파가 양쪽 집을 드나들며 의사를 묻고 정해진 일시에 보쌈이라는 형식으로 데려가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드러내놓고 식 올리고 살 수는 없었으니까요.
물론, 모든 보쌈이 사전 합의를 거쳐 바람직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겠죠. 현대적 의미에서는 보쌈이나 알라 카추나 범죄임이 틀림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납치혼이나 보쌈의 기능이 필요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인간 행동의 이유입니다.
과거 사람들이 한 행위들이 모두 미개하고 야만적인 이유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하는 일들을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바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지요.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