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히스테리의 문화적 배경
1518년 유럽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트로페아라는 여성이 길거리에서 맹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대략 4~6일 동안 길거리 여기저기를 누비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두명씩 그녀의 춤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후 그녀와 춤을 함께 추는 사람들의 수가 34명으로 늘었고, 한 달 뒤에는 무려 400명 가까이로 불어났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렇게 춤을 추는 동안 발에서 피가 흐르고 뼈가 튀어나와 더는 춤을 추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도저히 춤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탈수로 혼절했고, 일부는 심지어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수많은 지역 연대기들과 교회의 기록, 시 당국자들의 보고서상에서의 일관된 증언으로 검증되는 분명한 실화입니다.
이러한 일이 스트라스부르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1536년 바젤(Basel) 등 16세기 유럽은 이런 괴이한 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는데요. 이 기묘한 일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당대의 명의 파라셀수스는 여성들의 음탕한 욕망과 상상이 원인이라 주장했고, 헌팅턴 무도병이라는 유전성 뇌질환이라는 설, 호밀에 난 곰팡이 때문(맥각병)이라는 주장도 있었죠. 하지만 현재는 집단 히스테리라는 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집단 히스테리(Mass Hysteria)란 한 사람의 이상 행동이 집단에 전염되어 많은 사람이 유사 증상을 보이는 현상을 뜻합니다. 집단 히스테리는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여러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1962년 탄자니아의 웃음 전염병, 2016년 페루의 악마 목격 소동이 있습니다.
탄자니아 웃음 전염병은 1962년 159명의 학생이 있는 탄자니아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여학생 몇 명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지만 웃음은 계속 퍼져나가 나중에는 159명 중 95명의 학생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하는데요. 몇 시간만 웃고 그치는 학생도 있었지만 심하면 16일 동안이나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페루의 악마 목격 소동은 2016년 4월 29일~5월 18일에 걸쳐 페루 학생 80여 명이 집단적으로 '악마가 쫓아오고 있다.', '악마에게 목이 졸리고 있다.'고 불안을 호소하거나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킨 사건인데요. 주로 여학생들에게 발병했는데 이 학생들은 발병 전에 위자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이 유행했으며,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학교 터 밑에 많은 유골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집단 히스테리의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암시와 동조라는 기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암시란 암묵적인 단서에 의해 어떤 행동이 촉발된다는 점을 의미하고 동조는 집단 압력에 의해 행동이 집단화되는 것을 설명하는데요. 저는 문화심리학자로서 이러한 설명에는 뭔가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문화적 배경이죠. 암시가 작동하고, 그 암시가 집단적인 행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해당 집단이 문화적으로 공유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특정 시대, 특정 사회의 현실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구성하고, 그것이 어떤 암시로 촉발되면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거의 집단 히스테리 현상들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스트라스부르의 춤 소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17년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던 해입니다. 십자군 전쟁(11세기~14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교회의 권위가 감소하고 상업이 발달했으며 이같은 분위기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로 이어집니다. 매우 간략히 말씀드렸지만 중세를 지배했던 기존 질서와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사회 체제의 한계와 불안, 새로운 가능성이 뒤섞인 혼돈의 시대였죠.
1962년 탄자니아 웃음 전염병에서도 유사한 시대적 배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식민지였던 탄자니아는 1차대전 중 영국이 점령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그러다 2차 대전 이후 독립의 열망이 강해지면서 1961년 탕가니카 독립으로 탄자니아의 독립이 시작되죠.
이어 잔지바르 공화국의 수립, 탕가니카와의 합병을 통해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이 출범한 것이 1964년입니다. 1962년은 이러한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사람들의 불안과 기대가 혼재된 혼란의 시기였던 것이죠.
2016년 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루는 2000년 후지모리 대통령의 실정과 친위쿠데타에 이은 몰락 이후 오랫동안 정치적 혼란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2016년부터 2021년 동안 네 명의 대통령이 바뀌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지요.
한편 한국에서도 집단 히스테리로 추정되는 사건이 있는데요. 조경남의 <속잡록>에 실린 훼훼귀신 소동이 그것입니다. 한양에 훼훼(喙喙)라고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는 귀신이 밤마다 나타나 사람들이 가위에 눌려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건데요. 때는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집단 히스테리로 보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오랜 사회 혼란으로 기존 가치관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거나 혼란이 지속되어 사회 구성원들의 스트레스가 어떤 수준을 넘게 되면 축적된 불안과 공포를 표출하기 위해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집단 히스테리는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다 오랫동안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마녀사냥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녀사냥이 교회 권력이 강하고 사회가 덜 발전했던 중세 초기에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녀사냥이 가장 극성했던 시기는 16세기에서 17세기인데요.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전염병, 이성의 발견에서 비롯된 교회 권력의 추락과 태동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 변화 등에서 오는 불안의 원인을 악마와 마녀로 귀인하고 이들을 '응징'하는 것으로 불안을 달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말입니다. 근현대 이후로 계속해서 격심한 사회변화와 가치관 혼란을 겪어온 한국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해 왔을까요? 한국 사회의 유별난 사회 갈등 지수는 한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그간의 불안과 공포를 반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