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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임민아 Dec 11. 2023

파주는 드론촬영 금지구역

나는 참 좋은 남편이다(2)

남편이 쓴 두 번째 글이다.

파주가 접경지역이라 드론 촬영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지 몰랐다. 뭐든 부탁하면 알아서 잘해주는 분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글 보면서 감동했다.

근데, 난 진짜 정중하게 부탁한 게 맞다 ㅋㅋㅋ




드림커뮤니티는 지난 5월 우리 아파트 중앙잔디광장에서 마을축제를 열었다. 나는 구경꾼으로 참여하고 즐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활동을 소화 중인 아내는 내가 모르는 사이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었다. 나에게 아파트 축제 현장을 드론으로 촬영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드론이라는 고급취미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내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었다. 나는 지난해 드론1급자격증과 드론지도자자격증을 취득했다. 아내가 수백만 원의 학원비를 내주었고, 내 딴엔 보답하기 위해서 직장 생활과 병행하며 엄청난 시간을 들여 딴 라이선스였다. 자격증 취득 후엔 ‘DJI 매빅에어2’ 드론도 바로 선물해줬다. 여행을 가서도 신나게 드론으로 촬영을 하고, 습지를 찾아다니며 대자연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동안 나는 원래의 나와 다르게 활동적인 사람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타고난 DNA는 속이지 못한다. 점점 외출이 줄어들고 집에서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을 때쯤 마을축제를 촬영해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받게 됐다. 아파트공동체 활동에 대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는 마을축제를 촬영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P518구역에서의 비행! 


P518 구역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만들어져 있는 비행금지 구역이다. 파주는 접경지역으로 비행 및 촬영이 금지된 구역이다. 아파트 축제를 드론으로 촬영하려면 ‘드론원스탑’이란 정부기관을 통해서 허가받아야 했다. 드론을 띄우기 위해 합동참모본부 항공작전과에 비행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와 동시에 군부대에 촬영 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불허 판정을 받았고, 이유는 공공의 목적이 있을 때만 허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공동체 활동이며, 경기도의 지원을 받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더니 공문서를 요구해 왔다. 공동주택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는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직인이 찍혀있는 공문서를 받아서 재신청 요구를 하였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반가운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P-518 비행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비행 전 지상작전사령부 항공작전과에 비행계획을 브리핑하고 근무일 전 인가번호 확인 후 비행하라는 메시지도 함께 왔다. 무인기 비행금지구역 NFL(NO FLY LINE, 군사분계선 서쪽 10KM, 동쪽 15KM) 북쪽으로 절대 비행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내용과 함께...


군부대에서 하사관이 배정되고, 그 하사관에게 장비 설명과 축제내용, 비행계획과 촬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당일 오전 11시 정도 하사관이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고 연락했고, 나는 간단한 음료와 과자를 건네며 대화를 이어 갔다. 


하사관은 대부분 나이가 어리다. 휴일인데 하사관이 여기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튼 측은지심에 먹거리를 들고나갔고, 자리가 불편하지 않게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에 벤치로 안내해 주었다. 심심하면 흔들의자를 이용하라고 농담도 던졌다. 그런 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하사관은 이어폰과 보조배터리, 책 한 권을 준비해 왔다고 웃으며 보여주었다. 그리고 각자 임무를 수행했다.


축제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점점 잔디광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나는 드론을 조종하며 아파트 전경을 담았다. 드론을 띄우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우리 아파트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잘 꾸며진 중앙 잔디광장은 드론의 시각에서 마치 작은 마을처럼 보이기도 했고, 주민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함께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주민들이 소통하며 축제를 즐기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고, 드론이 하늘을 나는 동안 축제에 참여한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내가 공동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내년엔 아내가 시키기 전에 자발적으로 드론촬영은 내가 담당하겠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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