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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약점을 더 드러내는 사람

상처에 공기를 통하게 하면 나를 지켜줄 단단한 흉터가 된다.

by 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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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큰 흉터가 있는데 그걸 가리지 않는 게 특이해. 여자인데도..."


실제로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이마에 꽤나 큰 흉터가 있다. 이마 정중앙에 세로로 길게 이어져 있는 흉터다. 아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천방지축이었던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누군가를 잡으러 신나게 달려가다가 열려있던 창문틀에 이마를 심하게 긁혔다. 눈 사이로 피가 흘렀고, 열심히 도망가던 친구들이 멈춰 서서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나를 쳐다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꽤나 큰 흉터이기에 엄마는 이 흉터만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고 흉터 제거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부모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덥수룩한 앞머리가 유행이던 고등학교 때에는 완벽하게 가려지기라도 했지, 20대 중반부터는 그나마 있던 앞머리도 거의 없애버렸기 때문에 흩날리는 가벼운 앞머리 사이로 꽤나 잘 드러난다.




“너는 상처가 있어 보였어."


동시에 이건 최근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다. 이외에도 종종 ‘상처가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이때의 상처는 물리적 상처가 아니라 심리적 상처를 의미한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그늘이 있어 보인다는 것. 어떤 이들은 깊이가 있어 보인다는 말로 좋게 표현해주기도 한다.


겉치레를 전혀 하지 않은 직설적인 말이라 그런지, 예전부터 종종 들었던 류의 이야기이지만 이번에는 짐짓 멈춰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상처 또는 깊이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 않나? 티 없이 맑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흠 나… 알고 보면 꽤나 명랑한 편인데… ^^;;’ 아주 잠깐 억울하기도 하고 말이다.


상처를 실패, 취약성, 힘들었던 시기 등으로 해석한다면 나는 실제로 나의 취약성을 그다지 숨기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왜일까? 약육강식의 야생의 세계에서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곧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죽음을 뜻한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의 세상에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스로 언제 어디서나 진정성 있고 솔직하고 싶기도 하고, 그게 실제로 나에게 가장 편하고, 나아가서는 취약성을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진정한 의미로 보완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서로 채워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약점, 취약성, 힘들었던 시기 등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다만 사업을 하는 지난 2년 동안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표가 되고 나서 쏟아지는 불확실성과 실패에 얻어맞으면서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취약성을 드러내기는 어렵고, 인정욕구는 높아졌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꺼리거나 회피하기도 했다.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물지 않고 드러내면 너무 쓰라린 법이니까. 더 나아가서는 상처가 티 날까 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아프지 않은 척했던 것이다. 만약에 그때 내가 “와 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 좀 도와달라!”라고 누구에게라도 솔직하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의식화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 카를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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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동 창업자들이 모두 떠나고 여러 번의 복기를 통해 사업을 한 번 정리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나는 회피하거나 가려서 덮어두려고 하던 나의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최근에는 오랜만에 나답게 취약성을 대하고자, 공동창업자들과 이별하게 되었다는 장문의 글을 대문짝만 하게 써서 SNS에 올렸다.



그리고 거의 20년을 훌쩍 넘겨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마의 흉터를 떠올렸다. 흉터를 가만히 매만져보면, 아직도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특유의 촉감. 언제든 상처를 다 꺼내놓을 필요는 없다. 그러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아플 때도 있고 상처를 대하는 것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다만 적어도 나에게 상처, 실패, 취약성 등은 꺼내두고 공기를 통하게 해야만 아무는 것 같다. 상처를 채우려고 그 위로 새살이 이전의 살보다 더 두텁게 덮인다. 흉터는 곧 이미 회복되어 차오른 살이 잘 굳어졌다는 것. 이후 흉이 지거나 그 흉터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건.... 글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렇게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는 단단한 흉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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