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버린 창업, 그 이후 공동 창업자와 새벽에 했던 전화
나에게 창업을 했던 2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건 자기 확신을 가지는 일이었던 것 같다.
‘스타트업’, ‘창업’ 판에 처음 들어와서 당장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건지, 아니 애초에 그냥 할 수는 있는 건지에 대해 대혼돈을 겪었다.
방향을 잃었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마치 어디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광활한 사막에 툭 떨어진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은 조금씩 발아래에서 피어났다.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는 계속 커져서, 결국 나는 그대로 의심으로 가득한 모래의 늪에 빠진 듯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가는 아주 값비싸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남이 나를 믿기란 어렵다. 다시 말해 자기 확신이 부족한 것은 팀의 믿음이 쌓이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믿음은 어찌 보면 무형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실체다. 팀원들의 물음, ‘왜 여기에서, 이 일을 하고,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등이 모두 대표의 꿈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사업이 끝날 때까지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사업을 한 번 정리하기로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언젠가 다른 동료 창업자와 아주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그에게 자기 확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대뜸 그는 나에게 스스로 왜 사랑받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사랑받는 이유라… 나는 괜히 말 끝을 얼버무리면서 자신 없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 친구는 조용히 듣다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공동 창업한 친구들은 왜 수이랑 같이 창업했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겨울 새벽의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의 머릿속은 아까의 질문으로 가득 차있었다. 자기 확신에 완벽한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사랑받는, 인정받는 이유? 그게 단서가 되어줄 수 있을까. 핸드폰을 켜서 공동 창업을 했던 친구 중 한 명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메시지를 했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였다. 그 새벽에 며칠 전 사업을 접자고 한 공동 창업자에게 대뜸 했던 전화. 참으로 민폐지만 이미 호기심이 나를 가득 채웠고, 이번에 제대로 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시간에 전화해서 진짜 미안한데, 너무 궁금한 게 있어. 넌 왜 하필 나랑 창업했어?”
그 친구는 마치 어두컴컴하고 광활한 바다에 낚시 찌를 하나 던져놓은 것 같은, 뜬금없고 막연한 새벽의 질문에도 언젠가 이런 걸 물어볼 줄 알았다며 짐짓 놀라지도 않고 답을 했다.
“너는… 응원하게 되는 면이 있어.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괜히 챙겨야 할 것 같고… 뭔가 이겨내지도 못한 것 같은데 일단 나아가려고 노력해. 그 과정을 응원하게 된다고 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뭔가 새로운 거 만들 것 같잖아.”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 친구가 말해준 것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저 구절이었다. 사실 함께 사업하다가 망한 마당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슬프다는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처음엔 저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려웠다. 저 말을 하면서 ‘비 맞은 강아지’ 같다거나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라는 말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아니 불쌍해서 함께 하고 싶었다는 거야 뭐야?’
이 이야기를 듣고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묵혀뒀었다.
그런데 어떤 묵힌 이야기들은 무의식 속에서 제련되다가 불현듯 뾰족한 무언가가 되어 머리를 스치고 가곤 한다. 어느 날 아침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흔히 강인함을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약함도 좋은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하나의 면만 가지지 않으니까. 좋기만 한 것도 또 나쁘기만 한 것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나약함이 강점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가진 나약함은 왜 강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약하기에 나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고, 그 약함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과정을 함께 할 수 있고, 그게 서로의 강함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적으로 자유롭고 또 강인해지는 과정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내 강점이자 장점이 아닐까? 나약함은 함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해진다.
사실 나의 수많은 나약함 중에 스스로 확신하기 어려웠던 것이 역설적으로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나약하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약함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나의 나약함을 믿어보든 나약한 나를 믿어보든, 나약한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믿어보든. 조금씩 더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