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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Apr 08. 2016

유머와 음악이 만날 때

유머가 숨 쉬는 영화 -  세 번째  <스쿨 오브 락>


직원 중에 소고기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키가 크고 우람한 외형에 비해 말수가 적은 조용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요. 그가 화를 낸다거나 큰 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보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항시 정해진 수준의 볼륨, 정돈된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 소예요?"


그런데 저녁에 회식이 있다거나 특히 그 메뉴가 소고기일 때, 그 눈은 평소와 다르게 반짝입니다. 고요했던 입가가 미묘하게 실룩이면서 전에 없던 익살스러움이 피어나곤 하죠. 꼭 회식이 아니더라도 점심 메뉴에 소고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사람이 남긴 반찬에서 소고기를 골라 먹을 때, 심지어 소고기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 얼굴은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의 것이 됩니다.



유머는 유아기의 놀이적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어른들의 해방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꼭 다른 사람에게 특정 의미가 전달되어야, 누군가를 하하호호 웃게 해야만 유머러스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관심 있고 소중한 것을 대할 때의 설렘, 평소와 다른 표정, 숨기지 못해 드러나는 기쁨. 이 모든 것들이 나 스스로에게, 때론 그것을 보게 되는 타인에게도 유머러스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뭔가에 열중하는 '마니아'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소위 '덕밍 아웃' 연예인들이 있죠. 어떤 상황에서도 '도라에몽' 얘기엔 달리 반응하는 심형탁 씨의 모습은 굉장히 익살스럽고 매력적으로 표현됩니다. <능력자들> 같은 프로그램에선 뭔가에 미치도록 몰두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마니아 영역에서 '만렙' 수준의 지식과 태도를 보여주면,  순수하고 진지한 모습에 함께 웃거나 놀라기도 합니다. 하나의 캐릭터로,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로 선정될  있다는  그만큼 '몰두하는 상황' 주는 유머가 있다는 의미겠죠?


영화 <스쿨 오브 락>에 등장하는 '듀이 핀(잭 블랙 분, 이하 듀이)'은 음악에 미친, 그중에서도 락(rock)에 심취한 괴짜입니다. 그는 친구의 집에 기생하며 오로지 음악 할 궁리만 하는 민폐남이기도 한데요. 친구를 대신해, 실은 궁한 돈을 채우기 위해 일일교사가 되면서 그의 유머러스한 일상이 시작됩니다.


* 영화 줄거리(네이버 영화)
밴드 단원인 듀이 핀은 로커 답지 않게 뚱뚱하고 촌스러운 외모 때문에 밴드에서 쫓겨 난다. 월세까지 밀리자, 그는 급한 김에 친구 네드의 이름을 사칭하고, 호레이스 그린 초등학교의 대리교사로 취직한다. 수업 첫날부터, 공부를 가르칠 생각은 않고 시간 때울 궁리만 하던 듀이는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앞으로 열릴 락 밴드 경연대회에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참석하려는 것! 클래식 기타와 피아노, 첼로, 심벌즈 등의 악기를 다뤄본 애들을 뽑아, 리드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을 가르치고, 다른 아이들에겐 백 보컬, 매니저, 코디, 장비 담당 등의 일을 맡긴다. 3주 동안, 듀이와 아이들은 여자 교장 멀린스 (조안 쿠삭 분)의 눈을 피해 교실에서 록 음악을 연습하고, 드디어 오디션 접수까지 끝낸다. 마침내, 경연대회가 있던 날, 듀이가 가짜 선생임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멀린스 교장을 앞세우고 대회장으로 쳐들어 오는데.


자, 그러면 그가 록에 심취한 오타쿠이자 엉터리 교사라는 것은 알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을 대할 때 얼마나 '유아기의 놀이적 상태'로 돌아가는지, 그로 인해 스스로와 주변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 괴짜스러운 현실이자 유머러스한 장면들을 찾아볼까요.





1. 너희 연주를 들었다.


시간 때우다가 돈이나 쏙 받아 채려고 했던 듀이, 그는 우연히 학생들의 음악수업을 엿보게 됩니다. 그리곤 뭔가에 홀린 듯 자신의 차로 뛰어가죠. 학생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차에 있던 악기를 교실로 옮깁니다.



악기를 들고뛰는 모습이 어찌나 신나 보이는지요. "그럼 딱 1시간만 더 놀고 와!" 엄마의 유례없던 허가를 얻은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표정입니다.


"너희 연주를 들었다. 왜 아무도 말 안 한거야?"




2. 좋아, 한 곡 당기자!


클래식 기타를 치는 학생에겐 일렉 기타를, 첼리스트에겐 베이스 기타, 피아니스트에겐 키보드, 타악기 유경험 학생에겐 드럼을 알려줍니다. 마치 원포인트 레슨처럼 짧고 정확한 설명이 이어지죠. 학생들은 다소 의아해하면서도 선생님이 너무 흥분한지라 그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듀이는 학생들에게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에 대한 코드 진행을 알려주며 한 명씩 연주에 포함시킵니다. 그리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칩니다.


"좋아, 한 곡 당기자!"


그들의 첫 연주가 교실의 적막함을 산산조각 냅니다.


그래, 이거야!




3. 넌 리드 기타야.


밴드 이름을 정해, 넌 가장 특별히 밴드 매니저를 시켜줄게, 장비를 만들어, 레이저 빔과 분무 장치가 필요해, 보안을 책임져, 멋진 쇼를 만들려면 최고의 스태프가 돼야 해. 듀이는 연주자를 포함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밴드 내에서의 역할을 줍니다. 소극적이던 학생들은 좀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듀이에게 조율을 요청합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점차 몰두하게 됩니다.


잭 무니햄(이하 잭)은 상당한 기타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 순간들을 즐기지 못합니다. 괴짜 선생님이 시키는 곡들을 '연주'할 뿐이죠. 듀이가 다가가서 말합니다.


"왜 그렇게 뻣뻣해? 관절에 기름 좀 뿌리자."

"시킨 대로 연주하고 있는데요."

"그래 그건 완벽해. 하지만 락은 열정이야. 즐겁지 않니?"


락에 대해 얘기할 때 듀이의 얼굴엔 한 톨의 가식도 없습니다. 그는 당연한 뭔가를 다시 언급하 듯 말을 더합니다.


"넌 리드 기타야. 밴드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역할에 빠지지 못하는 잭에게 그는 소위 '락 스피릿'을 전수하며 좀 더 자신의 연주에 빠질 수 있도록 돕는데요. 그 우스꽝스럽고 진지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코드를 친 다음 손을 들어 올려. 락에게 경의를 표해. 웃으면서 눈을 크게 떠. 불만이 있는 것처럼!"


잘했어! 또 한 곡 땡기자.




4. 락이 어떤 건지 말해볼 사람?



듀이가 학생들에게 락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합니다. 학생들은 '이성 꼬시기, 방탕하기, 잘난 놈들 혼내 주기'  락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얘기합니다. 그는 '잘난 놈들에 도전하는 '으로 락을 일축하며 학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것들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들의 대답들로 즉흥적인 노래를 부릅니다.


한 학생이 '용돈이 없어서'라고 대답하자,

오늘도 용돈을 못 받아서 열 받아 죽겠네,라고 노래합니다.


또 뭐가 싫지?

집안일이요.

오늘도 집안일을 해서 열 받아 죽겠네!


괴롭히는 애.

날 괴롭히지 마. 열 받아 죽겠으니까!


누군가 너희를 귀찮게 하면 뭐라고 대답할래?

저리 가?


저리 가(Step off)~

저리 가(Step off)~

저리 가(Step off)~

저리 가(Step off)~


학생들은 그가 지어낸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쉽게 파이지 않던 아이들의 입꼬리가 점차 올라가며 이내 까르르 웃어버립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울부짖어준 유일한 선생님이 아닐까요. 듀이는 열 마디 설명보다 한 곡의 노래로 록이 가진 매력을 전달해냅니다.


Step off~!







5. 불치병이에요. 전부 다.


듀이가 학생들과 학교를 탈출합니다. '록 밴드 경연대회'의 예선 심사를 보기 위해서죠. 하지만 심사가 끝난 후에야 도착하고 맙니다. 좌절하는 그에게 밴드의 매니저이자 반장인 '썸머'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선생님. 좋은 수가 있어요."



퇴근하는 심사위원들을 듀이가 막아섭니다. 그리곤 상대적으로 능숙한 거짓부렁을 유창하게 쏟아냅니다. 성 마가리타 병원 소아과 병동의 음악 교사가 되죠.


"제가 다 망쳐버렸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애들에게 연습만 하면 밴드 경연 대외에 나갈 수 있다고 했죠."

"왜 그렇게 말했어요."

"그러게요. 불치병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결국 밴드 '스쿨 오브 락'은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데 성공합니다. 각자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익살스럽네요.




6. 삐유-기리기리 기기깅 리기 기기긱 기긱 기긱 기기기긱 히융!


리드 기타인 '잭'이 작곡한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듀이는 그의 곡을 함께 연주해보기로 합니다.



우리는 만점을 받지. 하지만 바보가 된 기분. 그 거짓말들 암기하기 싫어. 락은 이유가 없어


잭의 노래엔 그들 나름대로 감당하고 있는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연주를 바라보던 듀이의 표정이 환희로 가득 찹니다. 그래. 이게 락이야! 정말이지 짝사랑이 이뤄졌을 때나 나올법한 행복한 표정이죠?



그는 뭔가에 홀린 듯 연주에 뛰어들어서는 입으로 기타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네가 괜찮다면, 여기에 독주를 넣을 게!"


잭이 쓴 이야기는 밴드 경연대회의 연주곡으로 결정됩니다.


삐유-기리기리 기기깅 리기기기긱 기긱 기긱 기기기긱 히융!





7. 우리는 스쿨 오브 락입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밴드 '스쿨 오브 락'은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 내죠.



듀이 역시 입으로만 뱉었던 기타 독주를 합니다. 가짜 교사라는 것이 들통났고, 극성맞은 학부모들이 그를 보고 있습니다. 얹혀살던 집에서도 쫓겨날 판입니다. 그래서, 뭐 어때. 그는 고대했던 순간을 온몸 가득 느끼며 완벽한 연주를 해냅니다.



가짜 교사의 사기극에 분기탱천하여 공연장을 쳐들어온 학부모들. 그들이 듀이의 무대를 보며 거짓말처럼 웃는 장면은 이 영화가 가진 유머의 정점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 초반, 듀이는 소위 말하는 '루저'로 표현됩니다.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던 그는 밀린 월세 때문에 대리교사를 사칭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소위 '엘리트' 학생들을 마주해보니 그 삶도 갑갑하긴 매한가지였습니다. 그중 몇은 자신처럼 루저이거나 혹은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원하는 걸 물어도 도통 대답 없는 아이들. 그들 모두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가짜 교사와 학생들은 공연 준비에 몰두하면서 서로에게 공감합니다. 각자의 사정을 다른 형태로 해소합니다. 마치 전문가처럼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때론  나이의 다른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자지러집니다. 어설픈 이들의 엉뚱한 시도가 모여 다른 모든 이들을 웃게 하는, 그렇게 그들 모두에게 뛰어든 괴짜 선생을 양손 모아 받아내는 장면은 극의 클라이맥스이자 눈가를 뜨겁게 하는 유머의 힘을 보여줍니다.




마치며 - 맘껏 덕하자.


우리는 상당 부분 타인의 반응에 나의 만족 수준을 맞추곤 합니다.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레 습관화된 태도가 아닐까 해요. 그런데 '유머' 반드시 상대방의 맥락에 맞춰야만 성공하는  아닙니다. 자신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가' 따라 달라집니다. 삶을 즐겁게 바라보고 사람은 굳이 원숭이 표정을 짓거나 얼굴을 구기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 웃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몰두하고 즐길  있는 수단을 만드는 것은 유머러스한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닐까요.


영화 <스쿨 오브 락>은 음악과 동시에 '몰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원하는 뭔가에 몰두하는 사람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괴짜스럽게 변하는지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뭔가에 몰두한다는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다른 차원을 만든다는 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음식, 게임, 운동, 여행 , 뭔가 좋아하고 그것에 시간을 쓰는 것이 사치처럼 비치곤 합니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하거나 준비가  뒤에나  결심 먹고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죠. 심지어 '내가 선택하는' 취미생활인데도 좋은 취미와 나쁜 취미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나요.  삶을 원활하게 유지할  있다면, PC게임에 시간을 쏟아붓고, 저녁  귀퉁이를 소주로 적시고, 드라마를 보며 새벽을 주행하는 것도, 클럽에서 미친 사람처럼 몸을 흔드는 것도 문제   없습니다. 이마선 넘나드는 땀을 닦으며 한정판 피규어를 조립하는 동안, 손을 바들거리며 통기타의 F코드를 잡는 동안, 누가 뭐래도 그곳은 나의 세계입니다. 삶의 고된 숙제를 떠나 스스로 몰두할  있는 세계를 찾아내고 유지하려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하게도 '내가 좋아하고 기다려지는 ' 일상 곳곳에 심어져 있으면 그만큼 웃을 일이 많아질 테니까요.


나중에 해봐야지, 좀 더 안정되면 즐겨야지.

오늘이 사실 '나중' 아니었던가요.

그냥 오늘부터 하자고요! 허허벌판 같았던 공간에 나만의 구역을 만들고 맘껏 몰두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일상 속의 유머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누군가와 함께 웃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맘껏,

덕(질)하자고요!


'스쿨 오브 락' 10년 후의 모습. 함께 웃는 모습이 여전히 아이들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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