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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25. 2016

부정할 수밖에 없을 때

뇌 마사지 영화 '인셉션'


전에 지인들과 길을 걷다가 ‘뇌 마사지’라는 문구를 보았는데요. "뇌 마사지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 거지?"라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글쎄요. 그 간판 뒤의 마사지사들이 어떤 식으로 마사지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인셉션>을 보니 ‘뇌 마사지를 한다면 대략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치 뇌 구석구석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그 자극이 멈추지 않았으니 말이죠. 제한이 없는 상상력, 그럼에도 허황되지 않은 그 거대한 추상체를 우리에게 온전히 전달해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참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놀란 감독은 인셉션 이후로도 다크나이트 라이즈, 인터스텔라, 테넷 등으로 열심히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는데요. 굳이 수년 전 영화인 인셉션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 주인공인 '코브'에게서 방어기제의 한 종류인 '부정'에 대한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셉션'을 인셉션 하기


코브의 부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영화 전반에 대한 줄거리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그게 쉽지가 않죠. 상당히 촘촘한 전개일뿐더러 결말도 다양한 가능성을 암시하니까요. 개봉 시기가 2010년인 것을 감안할 때 아마 영화를 보신 분 대부분이 그 내용을 희미한 기억 저편으로 흘려보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간략하게 요약할 텐데요. 천천히 읽어보시면서 그때 그날의 뇌 마사지를 다시 받으시면 어떨까 합니다.


코브는 누구인가


영화 초반 해안가에서 눈을 뜨는 남자, 그 이름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입니다. 누군가 내 꿈으로 들어와 내 중요한 비밀이나 생각을 훔쳐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코브가 바로 그 분야의 일인자인데요. 그가 누군가의 꿈속에서 뭔가를 훔쳐오는 과정을 추출(extraction)이라고 하고, 그런 역할을 하는 코브를 추출자라고 불립니다.


추출을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세트장을 제작할 설계자가 필요합니다. 즉, 목표 대상이 꾸게 될 꿈의 무대이지요. 이들은 마치 컴퓨터 해킹을 하듯 다른 사람의 꿈에 침투하여 그곳을 자신들이 설계한 세트장으로 바꿔놓습니다. 그 공간으로 들어선 대상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다양한 존재들로 그곳을 채우게 됩니다. 코브는 세트장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새롭게 추가된 것들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고 그중 자신이 원하는 정보(기억)를 수집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 내놔."


심지어 목표 대상이 특정한 곳에 코브가 원하는 중요한 정보를 남기도록 유도할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금고와 같이 보안을 상징하는 물건을 세트장에 배치합니다. 그리고는 그 대상에게 접근하여 "금고에 그렇게 중요한 게 들어있다면서요?"와 같은 말을 하면 상대는 무의식 중에 그 금고에 중요한 것(기억)을 채워 넣죠. 코브는 세트장의 구조를 샅샅이 알기 때문에 금고가 아무리 깊이 있다 한들 열어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을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모두 보고 기억해야 합니다. 영화 초반, 코브가 무너져 가는 꿈속에서도 서류 내용을 집요하게 읽고 있는 보습을 보면 알 수 있죠.




꿈속의 꿈 그리고 인셉션(inception)



어느 날 코브는 남다른 제안을 받게 됩니다. 그가 전문적으로 해오던 ‘추출’이 아닌 주입(inception)을 하자는 제안이었죠. 표적 대상은 대기업의 후계자인 '피셔'이며 향후 사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하여(목표로 하는 생각을 '주입'하기 위하여) 이른바 <인셉션> 작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코브는 기존에 함께 일하던 포인트 맨 ‘아서’와 더불어, 꿈 설계사, 페이크 맨, 약제사를 팀원으로 들여 최고의 팀을 구성합니다.


왼쪽부터 약제사, 페이크 맨, 포인트 맨, 추출자, 설계사, 관광객
추출자 ‘코브’ - 주인공. 꿈속의 목표 대상에게 접근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냄.
포인트 맨 ‘아서’ - 코브의 오랜 친구. 작전이나 꿈이 잘 진행되는지 전반적으로 체크하는 살림꾼
설계사 ‘아리아드네’ - 코브의 장인어른인 ‘마일즈’ 교수의 소개로 알게 된 천재 건축학도. 꿈속 세계를 설계.
페이크 맨 ‘임스’ - 꿈속 세계에서 자유자재로 자신을 변신시켜 상대방을 속이는 역할.
약제사 ‘유서프’ - 꿈의 세계 접속과 유지를 돕는 특수 약물 제조.
관광객 ‘사이토’ - 작전의 의뢰인. 그럼에도 왠지 가장 고생하는 듯 보이는 인물.


꿈속의 꿈에서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니, 더군다나 그 이유가 뇌의 활동이 빨라져서라니 정말 놀라운 상상력입니다. (여기서 기억하실 점은 인간의 의식에 '깊이'가 존재한다는 것인데요. 줄거리를 살펴본 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셉션 팀은 꿈속의 꿈을 3단계로 설계하는데요. 그 깊고 깊은 꿈속의 또 깊고 깊은 곳에 금고를 위치시킨 후 대기업 후계자인 '피셔'가 힘겹게 그것을 쟁취하도록 유도합니다. 무의식의 굉장히 깊은 곳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려는 것이죠. 지켜보는 사람 발가락 움키게 하는 우여곡절들이 생기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작전을 이어나갑니다. 그들이 진입한 꿈의 단계는 간단하게 아래와 같습니다.


 현실 [시간 비율: 5분] - 보잉 747기 1등석

여객기의 1등석 안에서 목표 대상인 피셔를 잠들게 한 후 그의 꿈속으로 침투합니다.


 1단계 [시간 비율: 1시간] - 도심 속 폐건물

목표 대상인 ‘피셔’에게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사실과 특정 번호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금고에 대한 중요성 등을 각인시키는 단계입니다. 피셔의 무의식이 생각보다 강한 저항을 하여 동료 사이토가 총상을 입습니다. 달리는 밴 안에서 2단계로 접어듭니다.


 2단계 [시간 비율: 12시간] - 호텔 525호실

작전을 변경하여 ‘찰스(코브의 가명)’가 투입됩니다. 피셔의 무의식이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죠. 현 상황이 꿈인 것을 밝히고 실제로는 피셔의 무의식 존재들을 악당인 것처럼 그를 속입니다. 찰스가 피셔를 보호하는 것 같은 시나리오가 전개됩니다. 이후 삼촌과 이간질을 하고 삼촌의 꿈속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며, 미리 설계한 3단계로 진입합니다. 피셔는 아버지와 관련된 뭔가 중요한 비밀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겠죠.


 3단계 [시간 비율: 약 일주일] - 설원의 기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방어하게 됩니다. 인셉션 팀이 미리 설계한 설원 기지에 무의식의 전문 병력을 촘촘히 배치한 피셔는, 그것이 자신이 배치한 존재들인 것도 모른 채 상대하고 싸우며 비밀의 금고를 향해 진입합니다. 


하지만 작전 성공을 코 앞에 두고 코브의 무의식 속 존재인 '맬'이 나타납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죠. 코브와 아리아드네는 다음 단계인 림보로 진입하게 됩니다.


 림보 [시간 비율: 약 80일]

코브와 맬의 비밀이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죠. 현실의 5분이 그곳에선 80일이니, 잘못 들어갔다간 큰일 나겠네요.

마지막 단계인 '림보'


그렇게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아리아드네에 의해 코브의 과거와 그 아픔도 조금씩 베일이 벗겨집니다. 영화는 현재 진행되는 인셉션 작전과 코브의 과거 두 가지 요소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점점 더 극적인 순간으로 치닫게 되는데요. 후반부에서 관련 단서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마치 변신합체로봇이 어지러이 꿈틀거리다가 합체하는 것처럼 말이죠.



여러 가능성의 결말


인셉션의 결말은 '그 뒤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처럼 쉽게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감독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이죠. 그에 대한 가설이 많은데, 대략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 코브의 팀은 작전을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왔다.

가장 일반적인 결론입니다. 코브는 작전을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옵니다. 림보에서 탈출에 성공한 것이죠. 의문스러운 부분은 남습니다. 코브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의 옷과 나이가 코브의 기억 속 모습과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마치 꿈속처럼.


B. 코브는 아직 림보에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코브가 현실로 돌아왔다고 하기엔 아이들의 변치 않은 모습이 수상합니다. 토템인 팽이를 돌려 보는 코브의 모습도 좀 이상한데요. 그는 쓰러질 듯 돌고 있는 팽이를 크게 개의치 않고 돌아섭니다. 그전까지 토템에 신경 쓰던 모습과는 상반되죠. 어쩌면 코브는 꿈 속이란 것을 알지만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는 만족의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C. 유서프를 만난 순간부터 계속 꿈이었다.

영화 중반, 코브는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약물을 통해 꿈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신약 테스트를 위에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후 꿈에서 깨어 공허한 기분으로 토템인 팽이를 돌려 보려고 하지만 사이토의 참견으로 실패합니다. 이후 영화에서 그가 토템을 정확히 확인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혹시 그는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자신의 작선이 성공하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요.


D. 일장춘몽

코브는 사실 평범한 비즈니스맨입니다. 영화의 모든 내용은 그가 타고 귀국하는 기내에서 꾸었던 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추출자도, 인셉션도,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꿈일 뿐이죠.


E. 인셉션의 타깃은 코브였다.

인셉션 작전의 목표 대상은 사실 '피셔'가 아닌 코브였습니다. 그가 아내에 대한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의 장인인 마일즈 교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재능 있는 건축학과 아리아드네를 소개한 것은 어쩌면 사위의 아픔을 덜어주고 싶은 장인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 영화 후반 프랑스에 있어야 할 장인은 미국의 공항에서 사위를 맞이합니다. 피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장례 일정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코브를 맞는 장인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합니다.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깨어난 코브


나는 존재하는가.


영화가 끝날 땐 A가설(일반적인 결론)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아마도 감당할 수 있는 뇌 마사지의 수준이 그 정도였나 봐요. ‘꿈’에 대한 일목요연한 접근과 내용의 짜임새, 그리고 그것들을 영화에서 정해놓은 순리에 맞게 수행해내는 것만으로도 다른 유추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자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글들을 보면서 제 생각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감독의 던지는 메시지의 뿌리는 호접지몽(胡蝶之夢)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꿈을 소재로 다루었을 뿐, 우리가 실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이죠. 그것이 디카프리오의 다른 작품인 <셔터 아일랜드> 같은 개인의 에피소드이든, 아니면 SF 대작 <매트릭스>와 같은 인류의 수수께끼이든 간에 개인이 지각하는 실재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셔터아일랜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졌습니다.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언젠가부터 주변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이 존재는 실재인가? 나는 이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나는 이것이 실재하지 않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떤 것도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회의적인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역사 속에 남은 명제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명제는 심리학에서도 존재나 현상을 증명하는 과정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는데요. 뭔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척 완고한 논리를 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반박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지금 이 시점에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 <인셉션>이 이런 촘촘한 명제를 비껴갑니다. 존재는 하되 존재하는 이곳이 나의 꿈속인지 아니면 그 꿈의 꿈속인지 또는 거대 무의식의 끝(영화에서 ‘림보’라고 표현)인지를 알 수 없으니, 이 시점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즉, 죽어도) 그것이 실재에서 사라지는 것인지 단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인지를 알 수 없고, 살아서 ‘생각’이란 것을 한다 하여도 그것이 어딘가에 누워서 꾸는 백일몽인지 알 수 없으니 과연 그 찰나를 ‘존재한다’라고 확신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게다가 그 ‘생각’조차도 누군가가 “너는 존재한다.”라고 인셉션을 하였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펜로즈의 계단처럼 말이죠. (헥헥)


끝없이 오르게 되는 펜로즈 계단



어렵네요.

하지만 이처럼 머리가 꼬리를 무는 여러 가정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의 결론을 선택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린 존재하니까요!) 저는 '인셉션의 타깃은 코브였다'는 E결론을 바탕으로 그의 방어기제인 '부정'을 소개하고, 그것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파트너인 아리아드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코브의 무의식 그리고 부정


영화 내내 오르락내리락하는 '무의식'이라는 단어 때문에 갸우뚱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에 대해서는 검색창을 통해서도 충분히 많은 설명들이 나오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려볼게요.


일단 무의식은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피겨 스케이팅'하면 김연아 선수가 떠오르는 것과 비슷해요!


인간의 의식은 3차원으로 분류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뇌가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러한 의식 구조를 빙산에 비유했죠.


어딘가 으스스하네요.


빙산의 수면 위 영역이 의식, 수면 아랫의 거대한 부분이 무의식인 셈입니다. 그리고 수면 바로 아래에서 의식의 문을 두드리는 단계를 전의식 쯤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보다시피 무의식은 의식에 비해 월등히 크지만 우리가 의도적으로 떠올리거나 알아챌 수 없는 영역이에요.


프로이트는 이런 무의식과 대면하는 것을 심리 치료의 중요한 지점으로 여겼습니다. 환자들이 무의식 속에 봉인해 놓은 아픔이나 진실과 직면하게 함으로써 외부에 드러났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했죠. 영화 <인셉션>에서 코브에게 행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이와 유사합니다. 프로이트도 상대방의 림보를 보려던 것일까요.



코브의 방어기제 - 부정(denial)



코브 역시 방어기제를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부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정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나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예를 살펴볼까요?


한 시골에 노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부부는 오늘도 농장 일을 하며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립니다. 친한 이웃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아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왔으니까요. 하지만 노부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아들을 기다립니다.


이해가 좀 되시나요? 부정은 쉽게 말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없는 일처럼 또는 발생하지 않은 일처럼, 말 그대로 부인하는 것이지요. 이따금씩 반전 영화에는 그런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화면이 어지러이 돌거나 과거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죠. 주인공은 영화 내내 자신이 찾아 헤맸던 것들이 결국 자신이 부인하던 어떤 사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들은 무릎을 탁!) 



코브는 무엇을 부정하였는가


현실에서의 코브는 아내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쉽게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는 듯 보이죠. 하지만 자신의 꿈은 현실과 같이 설계하지 않습니다. 꿈속에서의 코브는 더 이상 꿈 밖에서처럼 ‘쿨한 고독자’의 모습이 아니죠. 죽은 아내와의 평온했던 시간들만을 구성하여 반복합니다. 때때로 함께 울고 웃기도 하며 지난날을 곱씹습니다. 맬(아내) 또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죠.


이게 두부 썰기 놀이야.." (코브의 꿈속에 존재하는 맬)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등장한 맬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매혹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코브를 포함한 주위를 당황케 하죠. 팀원의 다리에 총을 쏘는가 하면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꼭 훼방을 놓습니다. 이따금 굉장히 슬픈 눈으로 코브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나 좀 달라 보이지 않아? 머리 했어." (다른 꿈에 나타난 맬)



"내가 바로 프로이트!" - 아리아드네


('인셉션의 타깃은 코브였다'는 E가설에 따라) 장인어른인 마일즈 교수는 코브를 치유하기 위해 인셉션 작전을 계획합니다. 그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고통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죠. 마일즈는 코브에게 건축학도인 아리아드네를 소개합니다.


"울 사위 좀 잘 부탁하네." (아리아드네를 소개해주는 코브의 장인)


가짜 작전의 설계사로 위장한 아리아드네는 줄기차게 코브의 꿈속과 현실을 쫓아다니며 그가 자신의 과거를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때때로 맬에게 위협을 당하고 심지어 죽게 될 때도 있지만, 아리아드네는 코브의 꿈 더 깊은 곳으로 무단침입을 감행하죠. 참고로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네주어 그가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오도록 돕는 크레타의 공주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코브의 꿈속 지하실에 설계된 호텔방에서 그가 가장 후회하는 사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게 무의식의 지하 깊숙이 사건을 묻어둔 것만으로도 ‘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꿈을 설계하고 무의식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던 코브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을 각 층으로 분리하여, 상위층은 행복한 나날들로 구성하는 센스(?)를 발휘했어요. 때문에 아리아드네가 그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코브가 아내의 죽음 자체는 인정하기 때문이죠. 그는 호텔방에서의 사건과 관련된 ‘더 큰 비밀’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실체가 아니에요”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설령 치료자가 상대의 무의식 속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하여도 바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치료자는(아리아드네가 코브의 꿈 곳곳에서 그 단계를 밟아나가듯) 상대방 스스로가 조금씩 그것들을 밝혀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장 적절한 순간에 무의식 속에 있던 그 문제와 직면하도록 이끌어 주는데, 이를 ‘성찰’이라고 합니다.



맬의 의미 그리고 코브의 성찰


우리는 코브의 아내가 실존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보았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아내 '맬'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우리가 본 맬의 모든 모습은 모두 코브의 생각 속에서 또는 무의식에 표상된 존재였을 것입니다. 카멜레온 같았던 맬. 어째서 그녀는 그토록 불안정한 모습이었을까요. 코브는 어떻게 그토록 불안정한 내면을 갖게 된 것일까요.


심연의 공간인 림보에서 코브는 아내에게 얘기합니다. "현실에서도 그리고 꿈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던 것이 있었어." 라고 말이죠.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도 그리고 아내가 존재하는 자신의 꿈속에서도 유일하게 변함없던 한 가지, 그것은 죄책감이었습니다.



맬에게 투사되어 나타났던 모습들은 이러한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녀는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서 코브를 방해합니다. 마치 ‘네가 이럴 자격이 있어? 네가 이렇게 작전을 성공할 자격이 있어?’라고 하는 것 같죠. 그리고 이는 코브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무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맬을 코브는 막을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그저 피하고 부정할 뿐이었습니다.


“당신을 죽게 한 건 나야...”


결국 코브는 부정하던 그 사실과 직면합니다.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랐지만 아리아드네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내면에 가둬두었던 아내를 놓아줄 수 있게 됩니다.




글을 마치며 - 조력한다는 것


E가설을 따를 때, 사실 코브보다 돋보이는 것은 그를 치유하기 위해 조력하는 아리아드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상대의 문제를 알게 되어도 "넌 지금 부정하고 있어!"라는 식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더 많은 단서들을 상기시키며 기다리는데요. 그 시간은 한 달이 될 수도 몇 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스로 알아채고 성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상대방의 문제를 너무 쉽고 간편하게 뱉어버립니다. 상대가 푸념이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 더 많은 얘기들을 쏟아내고는 하죠. 심지어 그런 판단이나 조언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언자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건너가버린 나의 결론 자체가 상대방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뺏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심리학이나 상담 관련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은 이따금 이런 실수를 저지릅니다. 넌 그런 점이 문제야, 넌 이런 증상을 앓고 있어, 그렇게 하면 나아질 수 있어,  라는 식이죠. 저 역시 그런 실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문가들은 주변인에 대한 조언을 무척 아낍니다. '상담자와 내담자'라는 관계 외에 '지인 관계'라는 이중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설령 전문성에 기반한다고 하여도 그 조언 자체가 '그저 하고 싶은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문제를 정화하고 진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상담하거나 조력할 때, 어떤 문제를 꼬집거나 충고할 때, 한 번쯤은 아리아드네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가 자신에 대한 단서들을 통해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팽이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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