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Apr 25. 2020

싱가폴의 상주 도우미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을 정한다는 것

상주 도우미 아주머니(싱가폴에서는 주로 도우미 언니라고 부른다. 한국적 맥락을 감안하여 아래에서는 “도우미 아주머니”로 부르겠다.)와 함께 생활한 지 8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의 생활과 가장 큰 차이점이 이 도우미 제도라고 생각하는데, 이것과 관련된 글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글을 시작해 본다. 만약 싱가폴에서 상주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지내는 분 중 아래 글과 다른 경험을 하신 분이라면, 다른 분들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다. 


우리 부부는 단이 임신 이후 상주 도우미 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신혼 부부 단 둘이 사는데, 굳이 집에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둘 다 회사 생활을 하니 크게 집이 어지럽혀질 일도 없고, 퇴근 후에 식사 준비해서 차려 먹는 것도 부부생활의 큰 즐거움이긴 하니까 말이다. 싱가폴 오기 전 상해 생활부터 한 주에 1~2번 2~3시간 정도 집안일을 해주는 서비스를 쓰곤 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연고 없이 싱가폴에서 아기를 키우려고 생각하고 보니 주위에 전혀 도움 받을 사람이 없었고, 자연스레 함께 지낼 수 있는 도우미 고용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왜 싱가폴에 도착하자마자 상주 도우미 아주머니를 미리 고용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삶의 질을 매우 큰 폭으로 향상 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폴에서 만난 분들 중에서는, 상주 도우미 제도 때문에 아이들이 충분히 크기 전까지는 싱가폴에서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만 집에서 함께 살면서 생활하는 상주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각각 자신의 이야기와 사정, 그리고 삶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에, 조금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진행해보기로 한다. “우와, 우리 집에는 상주 도우미가 있어서 엄청 편하다.“고 말하고 단순히 말하고 끝날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이 분들의 삶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보기로 한다.


노동력이 중요한 나라


싱가폴에 상주 도우미 제도가 활발하게 운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싱가폴이 노동력이 매우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싱가폴은 일본을 바짝 뒤쫓고 있는 초고령화 사회이다. 그만큼 일할 수 있는 인구가 부족해서, 많은 노동력을 해외 노동력을 통해서 수급하고 있다. 아시아에 몇 안되는 영어로만 살고 업무 할 수 있는 나라고 아시아 문화와 서구 문화가 적절히 섞여 있기 때문에, 영미권 나라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 육아 때문에 부부 중 한 명이 집에서 육아만 하게 된다면? 국가 입장에서는 아주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부부 둘 다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싱가폴 정부가 상주 도우미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육아 뿐만 아니라, 노부모를 돌보는 일 등 싱가폴의 노동 가능 인구가 최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업무를 대신 수행하고 있다. 실질적인 절차는 중간에 에이전시가 처리하지만, 정부가 도우미 제도를 운영하고 조직적으로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상주 도우미를 데려오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단위로 상주 도우미 제도가 운영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상주 도우미를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상주 도우미가 싱가폴에 오는 사람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마찬가지로 상주 도우미를 고용 하려는 사람도 정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때 고용주는 상주 도우미를 고용하는 개인이 된다. 교육의 내용은, 많은 상주 도우미가 동남아 각국의 시골에서 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싱가폴이라는 새로운 도시 환경에 오게 되었을 때 어려움, 위험한 환경에 노출시키지 않도록 자주 일어나는 사고들, 상주 도우미의 기본적인 권리 등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이다. 뿐만 아니라 반년에 한 번, 상주 도우미는 건강 검진도 받는 것이 의무고, 고용을 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고용주가 보험도 가입해야 한다. 


상주 도우미가 하는 일


상주 도우미 아주머니는 24시간 그 가정에 머무는 노동자를 의미하고, 가정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도우미 숫자도 가정 당 꼭 한 명만 있는 건 아니고, 아이가 여럿인 경우 상주 도우미도 여럿 고용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상주 도우미는 육아, 청소, 빨래, 장보기, 요리, 노인 돌봄, 개 산책, 화단에 물주기, 세차 등의 업무를 도맡아서 하는데, 각 가정의 시기와 상황에 맞춰서 특정 업무를 집중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주머니가 요리를 잘 못하신다면, 그 외 다른 일을 도맡아서 하는 식이다. 



우리 집의 도우미 아주머니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상세한 이야기는 다루지는 않기로 하겠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아주머니는 다른 업무를 굉장히 잘하는 것에 비해 청소는 비교적 만족스럽지 않아서, 로봇 청소기를 구매해서 잘하는 다른 업무에 더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돕고 있다. 특히 육아와 요리는 우리 부부와는 매우 비교가 되는 수준이라, 굳이 별도의 요구를 할 필요가 없는 정도이다. 처음에 한 달 정도 한식 관련 레시피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내드렸더니, 이제는 알아서 장도 보고 식단도 알아서 척척 구성해주신다. 


상주 도우미 고용 비용


아마 상주 도우미를 매달 고용하는데 비용이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우선 상주 도우미 월급은 약 싱가폴 달러 기준 S$ 450~ 이고, 대부분 S$ 550~750 (오늘 환율, 싱가폴 달러 S$ 1 = 한화 863.72원) 사이에서 계약이 이뤄지는 것 같다. 2년 계약이 일반적이고, 이것 외에 별도로 싱가폴 정부에 매달 S$ 300 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개인 공간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방 하나가 더 필요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비싼 싱가폴에 월 주거비가 S$ 500~1000 정도 더 비싸지는 것까지 감안하면 되겠다. 거기에 식사를 함께 하지 않는 경우는 별도의 식비를 지급하거나, 식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같은 음식을 함께 먹으면 된다. 그리고 그 외에 집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수적인 샴푸, 칫솔, 치약, 수건, 침구 등은 고용주가 제공해야 한다. 대략적인 금액으로 계산해서 650 + 300 + 500 + 식비 + @ 정도를 하면, 한 달에 S$ 2000, 한화로는 170만원 수준이다. “우와 비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고, 정말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비싸다고 만은 말하기 힘들다. 


상주 도우미의 생활


상주 도우미는 싱가폴 법률 상 매일 7시간 이상 연속된 휴식 시간을 제공 받도록 되어있다. 즉, 7시간 이상은 숙면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제공 하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소한 한 달에 1번 휴일을 보장하고 있는데, 고용주에 따라 주말(토요일, 일요일)과 공휴일을 모두 쉬게 하거나 반대로 최소 규정만 따르는 경우도 있다. 관찰 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유럽 출신 고용주의 경우 휴일에 관대하고, 싱가폴 로컬이나 아시아계 사람들이 휴일에 박한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적인 유럽계 고용주와 아시아계 고용주 사례를 모두 접하기 때문에, 일반화 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휴일에는 보통 상주 도우미로 일하는 친구분들과 함께 공공 장소에서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 집은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을 휴일로 제공하고 있다.


많은 경우 본국에 자녀가 있어서, 가장의 역할로 싱가폴에 나와서 본국으로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가족이 아픈 경우, 본국으로 갑자기 돌아가거나 휴가를 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두가 사람이고,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싱가폴 내 다른 커뮤니티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싱가폴 한인 커뮤니티에서 종종 이상한 상주 도우미에 대한 이야기가 떠돈다. 갑자기 도망을 갔다거나, 돈을 빌려서 본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등등 상주 도우미 고용을 걱정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과연 이상한 상주 도우미가 많을까? 아니면 이상한 고용주가 많을까? 싱가폴 내 상주 도우미 학대 뉴스를 종종 접한다. 최근에는 한 노부부가 상주 도우미 휴대폰을 뺏어서 외부로 연락을 막고, 집에서 상습적인 구타를 하다가 발각되어 징역을 선고 받았다. 무려 상주 도우미 학대가 처음이 아닌 재범이다. 싱가폴은 빨래를 한국처럼 실내 빨래 건조대에 너는 것이 아니라, 기다란 봉에 널어서 베란다 밖으로 말리는데 그 봉을 밖으로 걸다가 떨어져 죽는 경우도 제법 많다. 따로 방을 주지 않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방공호나 테라스에 재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고용주가 월급을 받는 통장을 빼앗아서 가지고 있거나, 집안일 내 가사 업무만 할 수 있는 상주 도우미를 데려다 공장일을 시킨 사례도 있다. 물론 이상한 상주 도우미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최근에는 본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고용주에게 이야기 했다가 들어주지 않자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서 돌보던 아기의 팔을 끓는 물에 넣어서 화상을 입힌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구조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폭력적이기 쉽겠냐는 것이다.


싱가폴 생활과 상주 도우미


상주 도우미분들이 가족과 삶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대우만 한다면, 싱가폴 생활에서 상주 도우미 분과 함께 사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부부만 함께 살고 있는 경우에라도, 퇴근 후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위해서 상주 도우미 고용을 고려해보는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 부부 역시도 도우미 아주머니 덕분에, 매우 즐겁게 첫 아이의 육아를 해내고 있고 여전히 밀도 높은 부인님과의 시간도 보내고 있다. 한국은 특히 이 가사 노동과 육아를 아내의 업무로 강요하는 경향이 강한데, 각 나라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 다르지만, 정부 차원에서 고민하고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사진: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폴에서 경력 전환 돕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