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 이벤트
10월 25일 월요일
토요일에 미리 만들어 둔 쿠키가 있어 조금 마음 놓이는 아침이다. 일찍 출근했을 설에게 버터와 달걀을 꺼내놓아 줄 것을 부탁했다.
오전 11시 30분이 조금 넘었을 때 임이 찾아와 카드가 되는지 물어보았다. 근처 마트에서 결제를 하는데 통신이 안돼서 카드 결제를 못했다는 것이다. 어쩐지, 멜론과 유튜브 음악을 틀고 있던 공기계가 와이파이를 못 잡고 헤롱 거리 더니만. 그래서 인터넷에 의존하던 음악을 정말 오랜만에 CD 음악으로 바꿨는데, 그게 통신 장애로 인한 사고 때문이었던 것. 회원 검색도 안되고 카드 결제도 안 되는 상황이 대략 1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손님이 드문 우리 카페 같은 곳은 괜찮겠지만, 대형마트는 정말 큰 혼란이 있었을 것 같았다. (이곳 지역에서만 일어난 일인 줄 알았는데, 전국적으로 일어난 통신 대란이었다는 것을,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
쿠키를 반죽하고 조금 모자란 수량은 냉동실에 잠들어있는 사브레 쿠키로 대체하기로 했다. 새 거지만 아직 그 쓸모를 찾지 못하고 있는 오븐의 힘을 빌려보았다. 두 대로 쿠키를 구워서 시간은 조금 벌었는데, 온도의 감을 잡지 못해 오븐 입구 창을 통해 계속 구워지는 모양새를 관찰해야 했다. 시간을 맞춰놓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비효율적인 기계라니. 어찌어찌하여 주문한 15개의 쿠키 봉지를 만들었다.
10월 26일 화요일
목요일에 줘야 할 또 다른 쿠키 10개 주문이 들아왔다. 다시 반죽 시작.
지난주에 만들었던 당근케이크가 딱 1조각 팔리고 운명을 다했다. 설에게 나눠주고 손님에게 서비스로 내주었는데도 아직 3조각이나 남아서 쇼케이스에 널브러져 앉아 처량하게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쌍한 당근이. 사실 그동안에도 잘 팔리지 않아 만들기를 주저했지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했더니 정말 마지막이 되었다. 상하지 않는 한 내가 하루에 한 개씩 먹어주며 당근의 명복을 빌어줘야겠다.
어제 통신대란으로 잠시 맛이 갔던 와이파이는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2G 인터넷망만 쓰는 음악 담당 공기계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다시 음악은 CD 플레이어가 담당. 오랜만에 듣는 CD 음악은 나쁘지 않은데, CD가 한번 돌아가고 나면 다시 가서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 하는 단점이 있다. 5G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카페용 저렴한 공기계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10월 27일 수요일
아침에 출근하니 음악 담당 공기계가 제대로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쓸 만 한가보다. 공기계 산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하고 결제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10월 28일 목요일
지난번 <텀블러 이용객 할인행사>를 했던 단체에서 이번에는 <텀블러 증정 이벤트>를 하게 되었다. 읍내 몇몇 가게들과 함께 진행하는데, 우리 카페에서는 선결제 포함 결제금액 3만 원 이상 고객에게 주기로 했다. 우리 카페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일부터 시작하는 이벤트 날짜를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 주최 측의 요구였는데, 민감독이 이미 카페 인스타에 행사 내용을 올려버렸다. 물론 인기 있는 인스타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본 사람이 왕왕 있었다. 이벤트 기간을 지키라는 ‘신신당부’가 있다 하더라도, 인스타를 보고 받아가려고 온 사람을 내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들 아는 사람들이라 내일 와서 받으라는 말이 먹히지 않았다. (모두 입을 모아 내일은 오지 못한다는 똑같은 말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텀블러를 건넸다. 비밀 유지를 약속받고. 그래 봤자 3명이지만.
10월 29일 금요일
공식적인 텀블러 이벤트가 시작되었고, 카페는 어제의 조급한 손님들이 가지고 간 후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다. 행사 자체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탓이다. 함께 이벤트를 하는 업소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젊은 총각이 운영하는 인기 많은 과일가게는 오후 무렵 텀블러 소진으로 이벤트가 종료됨을 알려왔다. 헐, 대단하다. 여기에는 아직도 많이 쌓여있는데 말이다.
진저 라테를 위해 생강을 구입하고 설이 힘들게 빠닥빠닥 씻은 후 고객 임에게 빌린 1세대 휴롬으로 즙을 내었고, 어느 정도 레시피를 만들어놓았는데, 아직 정식 메뉴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베이커리 외의 음료에 대해 종업원의 생각을 존중하느라 결정권을 주고 있는데 그동안 그렇게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메뉴 확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나름 카페 음료 책임자임을 인정해주고자 하는 배려이긴 하지만, 종업원 본인이 생각이 많고 결정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다 보니 성질 급한 나와 설에게는 그 결정을 기다리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냉장고에 만들어 둔 생강 원액이 많은데,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힘들게 만들어 놓은 재료를 쓰지도 못하고 다 버리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청귤을 대신하는 음료로 귤청을 해볼까 해서 만들어놓은 귤청은 설탕 맛만 나는 음료가 되어 팔기가 애매했다. 이제 반 병 남은 청귤이 다 팔리면 메뉴 정리를 할 때 진저 라테를 넣어볼까 한다.
10월 31일 토요일
생강을 만들다가 남은 생강 찌꺼기가 냉동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혹시나 다음번 재료 만들 때 사용하려고 남긴 줄 알고 내버려 뒀는데, 사실은 종업원이 남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냉동실을 열 때마다 너무 냄새가 나서, 이것이 진짜 필요한 재료인지 물어보기 전에 냉동 보관하는 케이크에 냄새가 밸까 봐 지퍼락으로 꽁꽁 싸매 놓았었다. 오전, 한가한 커피 타임에 오랜만에 내가 만든 티라미수를 한 조각 같이 먹었는데, 이런, 먹을 때마다 전해지는 생강 냄새라니! 지퍼락을 하나 더 꺼내 한번 더 밀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