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부재
11월 8일 월요일
주말 내내 스트레칭 운동을 했다. 굽혀지지 않는 오른쪽 다리가 문제이긴 했나 보다. 운동 덕분에 저림 현상이 정말 많이 없어졌다. 내 몸은 재활이 필요하다.
민감독은 영상 파트에서 일했던 범 대신 저녁 시간 카페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 범에게 1년 동안 지원해 줄 임금이 아직 남아 있었다. 관련기관은 예산이 책정되어 나온 금액은 계획대로 소비를 해주기를 바란다. 다시 반납하면 일이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이다. 중요한 채용조건 중 하나는 취약계층이어야 한다는 점. 저녁 11시까지 근무하는 조건이라 아마도 가정주부들은 힘들지 싶다. 이곳저곳 공고를 낸 모양인데, 오늘 한 사람 면접을 보러 왔다. 현재 다른 곳에서 지원을 받아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싶어 했다. 그곳과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 수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한 가지 특이점은 심하지 않은 간질 질환이 있다는 것. 2달에 한번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11월 9일 화요일
딸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비싸다. 내가 가입한 과일가게 밴드에서 조금 저렴한 딸기 소식을 전했고, 하나를 예약해보았다. 500그람짜리가 9천 원.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고 남은 케이크 시트로 오랜만에 딸기 생크림을 만들었다. 플라스틱 안에 두 단으로 쌓여있던 딸기 중 윗부분을 사용했다. 아랫단 딸기가 남아있으니, 내일 한 판 더 만들어 볼 수 있겠다.
내일부터 설이 3일 동안 교육 워크숍에 간다. 고로 토요일까지 4일 동안 오전 근무를 책임져야 한다. 익숙해져버린 설의 노동력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설이 오기 전까지는 늘 그렇게 혼자 일을 해왔으면서, 새삼스럽게 말이다. 멀리 여행 가는 엄마가 남은 가족을 위해 곰국을 끓이듯이, 설은 자신이 재료를 준비해 왔던 달고나와 밀크티용 홍차를 수북이 마련해두고 가려고 애를 썼다.
11월 10일 수요일
슬리퍼로 질질 바닥을 끌고 다니며 걷는 소리가, 나는 참 듣기 싫다. 읍내에는 그런 곳이 꽤 있다. 주로 음식점. 아래 위로 등산복이나 트레이닝룩을 갖춰 입은 종업원 또는 주인이 그렇게 서빙을 한다. 바닥을 질질 끌면서. 그 대표 주자인 읍내 서점 주인은 집 안에서나 입을 만한 옷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손님을 맞이한다. 핸드폰으로 무슨 드라마를 보는지, 소리까지 크게 틀어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급하게 마스크를 쓰면서. 어디 멀리 갈 것도 아니다. 우리 카페에도 거슬리는 슬리퍼 족이 두 명이나 있다. 까다로운 내 탓을 해야겠지.
11월 11일 목요일
이틀 전에 만든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벌써 다 팔렸다. 생크림이 굳기 전에 잘랐더니 케이크가 한쪽이 무너지려고 하는 모양으로 나왔는데도 잘 팔렸나 보다. 다들 딸기는 엄청 좋아한다.
혼자 맞이하는 오전 근무. 남은 딸기 반상자가 있어, 어제 만든 케이크 시트로 다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런데 딸기가 딱 2개 모자랐다. 케이크 윗면에 딸기 반쪽씩 올려놓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딸기 1/4쪽을 올렸다. 모양이 좀 볼품없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 금값인 딸기를 더 살 수는 없는 일. 손님이 올까 봐 조마조마하며 후다닥 케이크를 만들어놓으니 마음이 편했다. 다행히 바느질 회원들 외에는 거의 손님이 없었다.
비가 오락가락. 곧 히터를 하루 종일 틀어야 할 것 같다. 겨울에는 다들 따뜻한 음료를 찾는다. 우유 스팀을 매번 해야 한다. 겨울이 깊어지면 스팀 지옥으로 더 빠져들 것이다.
11월 12일 금요일
해가 쨍쨍 나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비가 한바탕 쏟아진다. 어제오늘 날씨가 그렇다. 햇빛만 보고 빨래를 밖에 널어놓을 수가 없다.
초코 라테와 초콜릿 케이크 세트를 즐겨 먹는 빈이 와서 초콜릿 케이크 2판을 예약했다. 일요일과 월요일에 하나씩 찾아간다는 것이다. 냉장고에는 미리 만들어두었던 초콜릿 케이크가 마침 2개가 있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이번 케이크를 만들 때 젤라틴이 잘 녹지 않아 약간 덩어리 진 것들이 조금씩 박혀 있다는 것. 먹을 때 혹시나 걸리적거리지 않을까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다시 만들기에는 시간도 없고 하기도 싫었다. 베이킹과 카페 업무를 혼자 맡는 시간이 되면 뭐든지 하기가 점점 싫어진다.
11월 13일 토요일
날 좋은 토요일 오후. 한가한 오전. 딱 한 봉지 남은 커피 원두. 화요일에 주문했다고 하는 커피가 아직도 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 주말에 커피 손님 많으면 또 어디선가 커피를 주문해야 하지만 12시를 향해가는 이 시점에서 보기에는 1kg 원두로도 감당이 가능할 거 같다,라고 쓰고 있는데 원두가 도착했다.
저녁 6시 넘어 종업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일 일이 있어 하루 문을 닫아야겠다고. 1년도 넘게 지켜온 그들의 ‘신념’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리는 거 아닌가. 그토록 ‘신념’을 가진 마감시간 때문에 지난 7월 나를 그렇게 몰아세우더니 본인들은 그게 별일이 아니었던 거구만. 피폐한 감정이 남아 나만 괴로운 이 억울함을 어디다 호소할 것인가. 퍼뜩 내일 찾으러 온다는 케이크 손님이 생각났다. 손님과 통화하여 알아서 처리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