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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er Lee Jul 06. 2022

22년 1월 둘째 주

칼바람 부는 겨울

1월 9일 일요일


졸업식 참석 덕분에 어제는 쉬고 오늘 근무하러 나왔다. 테이블을 닦고 커피 머신을 가동하고 설거지 건조대에 있던 컵들을 정리한 후 케이크 시트를 만드려고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꺼내려는데, 설이 아들 졸업식이 끝나고 저녁에 먹을 거라며 주문했던 케이크가 아직도 거기에 있는 걸 발견했다. 깜빡한 설에게 전화를 걸어 꼭 가져가라고 해두었다.


일요일 기타 모임 멤버 아가 점심 무렵 왔다. 스튜디오 쪽 테이블에서 사 온 점심을 먹었다. 카운터 공간으로 와서 온수로 컵라면에 물을 채우고, 나에게도 먹으라고 하나를 건네주었다. 야무지게 모든 것을 먹어버리고 일회용 쓰레기 한가득을 주방 쓰레기통에 선사했다. 그가 스튜디오 테이블로 사라졌을 때, 다시 쓰레기통을 열고 재활용 가능한 용기를 분류했다. 카페에서 뜨거운 물을 얻고 쓰레기를 처리한 값으로 아는 입가심 용 치즈 케이크를 하나 결재했다. 4천 원으로 공간과 점심을 해결하는 혜자 한 생활자이다.


젊은 커플 한쌍이 들어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 그들. 남자가 ‘사장님’을 찾았다. ‘필사’가 무엇인지 물었다. 민감독이 창가 쪽 바 테이블에 글쓰기용 책자를 몇 개 진열하고 ‘필사하세요, 아무나’라는 작은 표지판을 세워두었다. 거기에 적힌 글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필기해서 적으라는 거라고 알려주었더니, 두 사람은 거기에 앉아 열심히 글을 옮겨 적었다.


1월 10일 월요일


주말 동안 제주도를 다녀온 단골장과 오늘 제주도로 떠나는 바느질 회원 주가 같은 시간에 카페에 모여 제주도 얘기를 늘어놓았다. 카페에 묶인 사람들의 염장을 들쑤셔놓았다.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려고 생크림을 휘핑하다가 너무 오버 휘핑이 되었다. 초코 크림이 퍽퍽하다. 잘 녹지 않은 젤라틴이 군데군데 덩어리로 뭉쳐졌다. 이런, 망한 느낌이 든다. 망한 케이크 하나는 이번 주말 막내딸 생일잔치에 써야겠다.

 

1월 11일 화요일


밤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눈이 내렸고 조금 쌓였지만 해가 나면서 도로의 눈은 다 녹았다. 바람이 쌀쌀하니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보드게임 멤버 청년 4명이 모였다. 각자 원하는 음료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게임을 벌였다. 나이는 20대인데 10대 같은 순수함이 있다. 커피 대신 초코 라테를 마시고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일지도. 멤버 중 혁이 곧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 보드게임 멤버에도 조금 변화가 생기겠다.


1월 12일 수요일


큰딸이 서울로 갔다. 트렁크 열쇠를 식탁 위에 둔 채. 열쇠를 봉투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빠른우편으로 보냈다. 내일이면 트렁크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딸은 고등학교 반배치 고사를 보러 갔다. 연필과 지우개는 주머니에 넣고 실내화를 손에 든 채. 가방도 없이 신발을 덜렁거리며 시험을 보러 가는 아이를 보니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겠구나 싶었는데, 학교 주변에 몇몇 아이들이 똑같이 책가방 없이 실내화를 들고 학교를 들어서고 있었다. 시험이 뭐 별거냐 하듯 센 척하며.


교복 치수를 맞추고 읍내 옷가게를 돌며 아이쇼핑을 했다. 브랜드 매장을 돌아다니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온라인 쇼핑이 익숙하고 또 저렴하기도 하니까. 큰딸이 서울에서 40만 원이 넘는 롱 패딩을 샀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었는데, 그나마 그것이 저렴한 축에 속한다는 걸 확인했다. 옷 값이 너무 사악하다.


1월 13일 목요일


날씨가 계속 춥다. 겨울다운 날씨이지만, 집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일 못하는 날씨가 몹시도 아쉽다. 기초 공사 기간이 점점 늘어간다. 사람들도 움츠러들었다. 다시 3주간의 거리두기가 연장된다고 하고 읍내에는 확진자가 6명이나 발생했다.


멸공을 외치고 가격도 올린 거대 커피 기업은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하다. 원재료 상승에도 눈치 봐가며 가격을 올릴까 말까 망설이는 소규모 읍내 카페만 울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독서지도사 과정. 오늘 전체 4개 중 세 번째 과제 제출 마감일이다. 오전까지는 안 할 생각이었는데, 다시 마음을 잡고 오후 내내 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제출을 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넘어가면 마음이 찜찜하다.


1월 14일 금요일


스콘 레시피를 알려주었던 단골 부부가 어김없이 바닐라라테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남편 홍이 주문할 때 나는 딸기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내 작업 테이블이 보인다.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을 낱낱이 볼 수 있다. 홍이 계속 거기 서서 내가 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집에서 알려준 레시피대로 스콘을 잘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알려준 보람이 있지만, 이제 카페에서는 스콘을 사 먹지 않을 테니 우리에겐 손해라 할 수 있다. 그들 부부가 뭐 하는 사람들일까 조금 궁금했는데, 오늘 내 작업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근처 미술학원 선생님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운영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그런 관계.


1월 15일 토요일


막내딸 생일잔치를 위해 딸기 케이크를 만들고, 어제 꺼내 두었던 초콜릿 케이크를 진열하고, 2조각 밖에 남지 않은 치즈케이크를 만들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연유를 처분하기 위해 연유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었다. 12시까지 이어진 작업. 다행히 손님은 단골 2명뿐.  작업이 끝나고 다시 단골 2팀이 와주었다. 내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음료를 서빙할 시간을 적절히 배분받았다. 매출은 손해지만, 더없이 부드러운 진행이다. 이제 잠시 쉬면서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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