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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웨이 Feb 14. 2021

6. 안목해변에서 발견한 '결'의 중요성

피자만큼은 진심이지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안목해변 같이 갈래요?”

“네? 좋아요!” 


희희와 틴더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할 때부터 코드가 맞았다. 안목에서 안목해변으로 이어지는 피식하는 유머 코드도 잘 맞았던 걸 보면 말이다. 김혼비 작가는 <아무튼 술>에서 유머 코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웃을 수 있는 포인트가 비슷하다는 건, 이미 정치적 성향과 세계관이 비슷하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무엇을 유머의 소재로 고르는지 혹은 고르지 않는지(후자가 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걸 그려내는 방식의 기저에 깔린 정서가 무엇인지 많은 것을 말해주니까.’  


책을 읽으며 무르팍을 ‘탁’ 치며 메모장에 바로 옮겨 두었다. 언젠가 나와 유머 코드가 잘 맞는 꿈의 그녀가 나타나면 김혼비 작가의 말을 마치 나의 말인 양 멋지게 표현해주려고.  


예전에 한 친구에게 이상형에 관해서 물어보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멜론 차트 100만 듣는 사람은 나랑 결이 안 맞더라고. 난 음악 취향이 잘 맞는 사람이 이상형이야.” 신박했다. 때론 취향이 이상형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화가 잘 통한다’ 라는 말은 어쩌면 취향과 코드의 교집합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희희와 나는 유머코드 뿐만 아니라 취향도 잘 맞았다. 나를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틴더에서 관심이 가는 사람을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한다) 한 이유도 내 외모보다는 나의 영화 취향이었으니까.  


희희와 연애를 시작하고서 갑작스럽게 안목해변에 가게 됐다. 피식했던 순간을 만들어준, 유머 코드의 교집합이 크다는 것을 느낀 시발점이었던 안목해변에 가보는 것도 우리와 코드가 맞는 데이트 장소였다. 탁 트인 강릉 바다를 보며 우리는 웃고 떠들었다. 커피 거리에 도착한 우리는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에 펼쳐진 모래사장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며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희희와 나는 사람들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다지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었지만 우리는 신이나 낄낄거리며 시트콤 작가라도 된 듯 떠들어댔다. 코드가 맞는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이 대화의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남들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니까.  


저녁을 먹기 위해 핫하다는 양양에 가기로 했다. 이왕 강원도에 왔으니 유명한 서피비치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양양에 도착하니 안목해변과는 다른 분위기의 바다가 펼쳐졌다. 쿵쾅거리는 EDM 음악과 이태원을 연상케 하는 레스토랑들과 다양한 팝업 스토어까지. 서피비치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군상도 안목해변과는 확연히 달랐다. 서피비치의 사람들은 패셔너블했고, 몸매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또한, 눈빛도 유희열이 아이유를 바라보는 눈빛보다 더 매서운 매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 이곳은 젊음이 넘치는 해변의 클럽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세상 편한 옷을 입은 희희와 나는 피자를 주문했고, 피자는 금방 나왔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쉐프의 진심이 느껴졌다. 피자에 진심인 쉐프구나. 소스가 흘러나오는 것도 모른 채 희희에게 말했다.  


“여기 피자(와그작) 지인짜 맛있다.” 


희희가 크게 웃기 시작했고, 나는 물었다.

 

“왜? 소스 흘려서?”

“아니, 피자가 맛있다고 말하는 오빠의 눈빛과 말투가 서피비치의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와는 너무 달라서. 그리고 그게 다행이다 싶어서 웃었어.” 


유머 코드, 취향 모두 중요하다. 한 사람의 세계를 직,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심결에 나온 한 사람의 눈빛과 말투는 그 사람의 ‘결’을 그대로 보여준다. 체험해서 얻은 것이 아닌 체득 해서 나온 ‘결’은 어쩌면 유머 코드, 취향을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연인과 살갗이 맞닿을 때 느끼는 체온처럼, ‘결’의 맞닿음도 따뜻할 때 비로소 사랑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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