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웨이 Feb 14. 2021

11. 엄빠의 꽃다발

꽃보다 희희!

“꽃을 선물 받는 거는 남자가 꽃집에 가서 어색해하는 그 순간까지 다 포함된 선물이라고, 그래서 여자들이 꽃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tvN <선다방> 中  


희희와 연애를 시작한 지 딱 하루 되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엄마가 최근에 김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교회에 웬걸 참한 싱글인 자매가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엄마도 예전에 그 자매를 우연히 교회에서 봤었는데 정말 예뻐 보이더..”

“엄마, 아들 연애 시작했어.”

“응? 어~~ 정말? 잘 됐다!”

“목사님 딸이야”

“할렐루야!!” 


큰아들의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생각한 엄마는 종종 선 자리를 주선하려고 애를 썼고, 그때마다 거절했다. 난 선을 볼 나이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아직 ‘자만추’가 가능한 남자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졌고, 잦은 만남이 늘어나면서 실패는 쌓여갔다. 부모님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을 때 기적처럼 희희를 만났다. 게다가 부모님이 원하는 단 한 가지의 조건인 종교까지 갖춘 희희를. 자연스럽게 희희와의 연애를 부모님께 알린 뒤, 희희를 향한 부모님의 호기심은 매일 제곱으로 늘어났다.  


등산 데이트 후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눈 우리는 부모님이 가진 호기심이 신비주의로 바뀌기 전에 만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자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한 적 없었던 나는 부모님에게 날을 잡자고 말했다. 약속 날짜를 잡은 뒤 엄니에게서 연락이 많이 왔다. 메뉴, 의상, 헤어스타일 등 엄니는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담담하게 감정 기복 없이 처리해내는 아부지는 그 고유의 스텐스를 유지한 채 약속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약속 날이 되었고, 희희를 태우러 집 앞으로 갔다. 희희도 엄니만큼은 아니지만, 그날의 의상부터 선물까지 바쁜 와중에 고민했다. 단아한 원피스를 차려입은 그녀는 엄니의 약국과 아부지의 목양실에 둘 예쁘고 서울틱한(인천이 고향인 부모님에게 ‘서울틱함’은 꽤 중요한 요소였다) 디퓨저 두 개를 샀다. 인천으로 가는 길, 희희는 떨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 곧바로 사실 떨린다고 고백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고스란히 내게 표현했다. 나는 걱정이나 불안 하나 없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계속 운전했다. 


주차 한 뒤 엄니의 약국으로 희희와 함께 들어갔다. 엄니는 어제 막 미용실에 다녀온 머리를 하고 희희와 나를 반겼다. 목소리 톤은 연극 톤 그 자체로 말이다. 


“어서 와요↗ 어머, 희희양 사진보다 더 예쁘네! 사진을 봤을 땐 이런 미모를 지닌 여자가 있나 싶었는데요. 호호호” 


엄니는 약국에서 가장 큰 의자를 들고 와 물티슈로 닦은 뒤 희희에게 앉으라고 권유했다. 희희 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무 대체질인 희희의 긴장한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나는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 이윽고 아부지가 약국으로 들어왔다. 큰 쇼핑백을 들고 온 아버지는 희희의 인사를 받고 “오냐~” 라고 화답했다. 쇼핑백 안에는 꽃다발이 들어있었다. 무뚝뚝한 아부지의 손에 들려있는 꽃다발이라니. 희희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약국 문을 닫고, 예약해뒀던 양고기 집으로 갔다. 양고기를 먹으며 본격적인 담소가 시작되었다. 긴장한 모습을 보였던 희희는 역시나 무대 체질이었다. 조곤조곤 하지만 당차고, 유쾌하게 말을 했다.  


“제가 눈빛이나 말투를 정말 많이 보는데, 어머님 아버님을 뵈니 오빠가 이런 눈빛과 말투를 왜 갖추게 됐는지 알 것 같아요” 


부모님이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희희와 부모님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무뚝뚝한 아부지는 그날따라 말이 많았다. 아들 둘(동생과 나)이랑 있을 때는 별 말 없는분이었는데, 이렇게나 말이 많은 남자였다니. 희희가 주는 긍정 에너지가 아부지의 입을 연 것 같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서 소금빵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희희의 부모님에게 드릴 소금빵도 포장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희희는 내게 물었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내가 뭐 실수했어?”

“오늘 부모님이 희희랑 있는 내내 행복해 보여서 딱히 할 말이 없었어. 웃는 것 외에는” 


희희를 데려다주고 부모님께 고맙다고 카톡을 했다. 엄니는 즐거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희희 만나는 날 D데이로 챙기면서 엄청 설레하셨어. 꽃까지 사 온걸 보면 말야. 꽃집에서 문구도 작성할 수 있다고 했는데 ‘꽃 보다 희희’ 라고 쓰시려던 걸 참았다고 하시더라고” 


꽃집에 가 꽃을 사고, 그 꽃을 들고 약국으로 왔을 아부지를 생각하니 고마웠고, 부모님에게 큰 기쁨을 준 희희에게도 고마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사랑한다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