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를 기억하라
“나랑 결혼해줄래? 대답할 말이 생각 안 나? ‘그래’, ‘싫어’, ‘내 인생에서 꺼져’ 등등의 답변이 있어.”
“그럼 난 ‘그래’로 할래. 물어봐 줘서 고마워. 사람들 잔뜩 부르고 시끌벅적하게 요란 떨지 않아 줘서 고맙고, 난 다른 사람은 싫어”
“가서 라디오 끄고 올게”
영화 <어바웃 타임> 中
희희와 엄빠의 만남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프러포즈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등산 데이트 이후부터 프러포즈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해왔었다. 최초 계획은 빨리 웨딩 반지를 보러 가자고 한 뒤에 희희가 마음에 들어 하는 반지를 몰래 사서 무릎을 꿇고 “나와 결혼해줘” 멘트를 시전하는 것이었다. 배우지 않아도 프러포즈하면 ‘반지’가 필수 아니겠는가? 하지만 결혼반지를 몰래 사서 프러포즈 선물로 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양한 샵을 돌면서 마음에 드는 브랜드와 디자인을 골라야 하고, 사이즈도 측정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서프라이즈로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넷을 통해 ‘프러포즈 반지’를 검색하다 보니 프러포즈 반지와 웨딩 반지를 별개로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전 연애에서도 커플링 한 번 안 해봤던 나는 반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과 결혼반지로 커플링을 해야겠다는 로망. 이 로망을 깨뜨리고는 싶지 않았기에 프러포즈링을 준비하는 것은 옵션에서 자연스레 배제되었다.
희희의 뒷모습을 찍고, 다양한 글로 채워 넣고 있는 인스타계정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이 계정은 프러포즈 날 공개할 것이다. 프러포즈용 편지도 틈틈히 구상 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WWW 뿐이었다. 프러포즈링을 대체할 만한 선물(What)과 언제(When), 어디서(Where).
What
반지를 대체할만한 선물.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래도 일생에 한 번 받는 프러포즈인데 희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희와 백화점 데이트를 종종 할 때면 일부러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다 보면 분명 희희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나올 것이다. 그다음은 드림00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봤다.
“희희 나는 드림 시계가 있는데, 롤렉스야. 희희는 드림00 같은 거 있어?”
“음, 글쎄? 나는 디올의 레이디백?”
이런, 그건 나의 프러포즈 예산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몇 번의 백화점 데이트를 거친 뒤 드디어 예희의 또다른 드림 00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로저비비에’의 구두였다. 오, 구두. 괜찮은 선물일 것 같았다. 웨딩촬영때도 결혼식 당일에도 신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구두를 하나 사기로 마음먹었는데 뭔가 부족했다. 희희가 원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희희에게 주고 싶은 선물도 하나 추가하기로 했다. 하얀 피부와 페미닌한 스타일의 희희는 목걸이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인스타를 통해 그녀의 룩들을 살펴보니 목걸이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거다! 쥬얼리 하면 또 민트색 상자 아니겠는가?(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걸 보면 티파니의 마케팅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 같다) 혼자 백화점으로 가 생전 처음 들어가보는 로저비비에와 티파니 매장에서 프러포즈 선물을 구매했다.
When
유부남인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언제’ 프러포즈를 했냐고. 대부분 결혼 준비를 얼추 다 끝내고,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했다고 대답했다. 하긴, 결혼이라는 것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으니 요즘엔 ‘결혼 준비 후’ 프러포즈가 ‘국룰’이겠지. 평소 남들과는 다르게 하고 싶어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나는 프러포즈 만큼은 남다르게 하고 싶었다. 희희의 부모님을 11월 말에 만나 뵙기로 했으니 그 전에 프러포즈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야 부모님을 만나 뵈었을 때 “따님을 내게 주십쇼!!” 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Where
프러포즈 장소는 희희와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정하고 싶었다. 우리의 데이트 코스를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수많은 장소가 있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은 역시 안목해변이었다. 틴더에서는 우리의 유머 코드를 맞춰볼 수 있었던, 오프라인에서는 희희 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곳이니까. 희희와 카톡하던 도중 뜬금없이 안목해변에 가고 싶다고 했다. 10월 10일에 희희 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으니 11월 11일에도 뭔가 낭만적인 데이트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희희는 알겠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