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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웨이 Feb 14. 2021

프러포즈 #2

어색해도 괜찮다는 것을 명심하라

“가장 완벽한 프러포즈는 어색할 때”

김창옥 교수 


선물, 인스타 계정, 안목해변까지 준비가 완벽하게 됐다. 프러포즈 편지는 일주일간 고민하여 총 7장의 편지를 완성했다. 가을 바다를 보다 차로 들어올 때 트렁크를 열어 반짝이는 전구와 꽃, 선물을 주면 되겠다는 계획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적어도 머리로는 그랬다. 


11월 11일 안목해변으로 가기 몇 주 전. 카피라이터인 희희는 PT(광고주가 TV CF를 하고자 할 때 다양한 광고 대행사에 제안서를 받아 PT를 진행하여 광고 대행사를 선정하고, 이를 ‘PT를 준비한다’라고 표현한다)준비에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1월 11일에 안목해변에 갈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PT 준비는 정말 지난하고 고단하며, 계속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라 장거리 이동을 하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희희, 11월 11일에 안목해변에 갈 수 있겠어?”

“오빠.. 우리 안목해변은 다음에 가자. 대신 나 호텔 바우처 하나 생겼는데 11월 10일에 호캉스를 즐기고 그 다음날 출근하자!”

“오? 좋은데?(좋긴 뭐가 좋아..) 그렇게 하자!(안돼..) 


예상치 못한 WHEN이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더 안목해변을 주장할 수 없었다.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가려고 했다는 것을 들키면 안됐다. 더욱이 희희는 누구보다 촉이 좋은 여자였다. 그래, 그러면 호텔에 도착해서 주차를 한 뒤에 트렁크를 열어서 프러포즈를 하면 된다. 지하주차장은 안되니까 호텔에 지상 주차장이 있는지 알아봤다. 다행히도 지상 주차장이 있었다. 그래, 어쩔 수 없으니까. 주차장도 괜찮아! 


프러포즈 이틀 전. 주문한 전구가 도착했다. 일부러 건전지로 작동하는 전구를 샀다. 리모컨으로 컨트롤이 가능해 희희를 트렁크로 부른 뒤 리모컨으로 on 하여 멋지게 프러포즈하면 된다. 안목해변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획은 완벽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트렁크에 전구를 설치한 뒤, 선물을 놓아보았다. 웬걸.. 썰렁 그 자체였다. 이건 아니었다. 망했다 싶었다. 쿠팡을 바로 실행한 뒤 ‘프러포즈용 데코레이션’을 검색했다. 장미꽃잎 플라워샤워라는 제품이 있었다. 그래, 이거라도 사서 뿌린 다음에 트렁크를 꾸미자. 당장 주문을 했고, 아슬아슬하게 프러포즈 당일 새벽에 제품이 도착했다. 7시에 도착하자마자 제품을 뜯어보았다. 제길. 500 피스의 꽃잎이 단단하게 붙어있었다. 한 장 한 장 떼어서 데코를 해야 했다. 새벽 7시, 부스스한 차림으로 트렁크를 열어 꽃잎 하나하나 떼어서 트렁크 바닥에 뿌렸다. 빌라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트렁크를 닫고 전화를 하는 척하기도 하고, 이제 막 도착한 사람처럼 집으로 올라가는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장장 90분 동안 장미꽃잎을 곳곳에 뿌려놓았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적어도 썰렁함은 사라졌다. 


그날 희희 몰래 반차를 썼다. 퇴근 한 뒤 예약한 꽃집에 찾아갔다. 프러포즈용 꽃다발이니 신경을 써달라고 했고, 플로리스트분은 ‘물론이죠!’라고 힘차게 대답해주셨던 그곳에 갔다. 웬걸? 문이 닫혀있었다. 플로리스트분에게 전화하니 시간과 날짜를 착각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완벽은 개뿔. 되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주변 꽃집을 검색해 리뷰가 좋은 곳으로 전화를 걸어 꽃다발을 주문했다. 겨우 꽃을 픽업하여 트렁크에 실었다. 하, 분명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완벽은 거대한 벽이 되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희희를 픽업하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이 말을 만든 사람은 분명 엄청난 인사이트를 지닌 학자임에 틀림없다. 차가 엄청나게 막혔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넘게 도착해 희희를 태웠다. 희희를 태우자마자 우리가 데이트하며 즐겨들었던 Bruno Major의 nothing을 BGM으로 깔아두려고 했는데 웬걸. 쿵쾅쿵쾅 하드한 힙합 음악이 흘러나왔다. 프러포즈 잘 할 수 있을까? 란 생각과 함께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고, 구석진 곳에 차를 주차했다. 희희가 먼저 내렸고, 나는 짐을 가지러 간다는 말과 함께 트렁크로 가서 트렁크를 열었다. 흐트러진 선물과 꽃을 가지런히 다시 정리하려던 찰나. 희희가 걸어오며 말했다. 


“오빠 뭐 도와줘?”

“안돼!! 오지 마!!”

당황해서 소리쳐버렸다. 이런. 희희는 발걸음을 멈춰 물음표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희희야 잠깐 와봐”

희희가 트렁크에 도착했을 때쯤 리모컨을 눌러 전구를 켰다. 트렁크에 담겨있는 광경(?)을 본 희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야? 프러포즈야 이거?”

“응, 프러포즈 하는 거야”

“뭐야.. 뭐야 정말? 와? 내가 이런걸 받는 거야? 프러포즈를? 와.. 대박. 언젠가 받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나 당황해서 눈물도 안나. 우와 오빠 고마워”

“어머님 아버님 뵙기 전에 프러포즈 하고싶었어” 


희희는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정말 기뻐했고 당황해했다. 선물과 짐을 챙겨서 체크인 하고 방으로 올라가던 중 희희가 다시 말했다. 


“오빠 근데 왜 결혼해달라고는 말 안 해?”

“아? 희희야 나, 나랑 결혼해줘” 


제일 중요한 ‘나와 결혼해줘’ 멘트를 빼먹었다니. 웬걸의 연속이었다. 방에 도착한 뒤 희희는 편지를 읽어보고 싶다고 했고, 비밀로 해두었던 희희를 위한 계정도 공개로 바꾸어두었으니 읽어보라고 하고 초콜릿을 사서 오겠다고 난 방을 나섰다.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산 뒤 호텔 방으로 들어왔을 때 희희가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희희를 보니 기분이 오묘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프러포즈였는데 내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았다. 희희가 고맙다며 날 꼬옥 껴안아 줬다. 그래, 웬걸의 연속이면 어때. 어색하면 어때. 결국 진심만 통하면 되는걸. 그날 우리는 부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을 함께 뗐다.


희희가 인스타에 남긴 프러포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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