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재정회의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류승수 <라디오스타> 中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음악 소리가 나오는 헤드폰을 쓰고 제시된 단어를 상대방에게 설명하여 정답을 맞히는 게임을 한 것을 보았다. 제시어는 ‘주식’ 이었는데 주식을 설명하는 한 배우가 이렇게 말했다.
“삼! 성! 전! 자!, 카! 카! 오!, 테! 슬! 라!”
“태진아?”
“테! 슬! 라!”
듣고 있던 출연진은 빵 터졌고 저 친구 100% 주식을 한다며 다시 한번 꺄르르 웃었다.
동학 개미 운동, 게임스탑, 비트코인, 재테크. 돈과 관련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주식의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패널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 현상이 비단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테크에 ㅈ도 모르는 나도 최근 ‘돈의 속성’을 다 읽었으니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희희와 등산 데이트 후 막걸리를 시원하게 비워내며 연봉과 보유자산을 세세하게 다 오픈했다. 프러포즈 이후 식장을 예약하고, 웨딩 반지를 사며 처음으로 결혼을 위한 공동 지출이 생겼다. 아무래도(?) 희희와 나 모두 결혼 준비는 처음이었기에 앞으로의 지출은 계획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데이트를 하던 도중 들어간 카페에서 우리는 제1차 재정 회의를 진행했다.
희희는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희희는 결혼에 필요한 것들을 이미 정리해놓고 있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귀여웠다. 메모장에 리스트들을 붙여넣기 한 뒤에 일단 우리의 수입을 적어 두었다. 각자의 월급 옆에는 ‘털보가 피땀 흘려 번’, ‘희희가 머리 써서 번’이라고 빨간 글씨로 적어 두었다. 이제 고정지출을 적기 시작했다. 차 할부, 십일조, 전세금 이자, 관리비, 교통비, 통신비에 들어갈 돈을 적었다. 막상 금액을 적어두어 합하니 꽤 금액이 컸다.
“흐앙, 이렇게 고정비가 많이 들어간다니..”
‘“괜찮아! 생활비에서도 아끼고 각자 용돈도 최소한으로 받으면 되지!”
당차게 희희 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 결혼 후에는 아니, 지금부터 근검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살아 보지 않았으니 생활비를 특정하긴 어려웠지만, 생활비에는 식비, 데이트, 생필품이 포함된다고 적어두었다. 우리가 저금 및 재테크 할 금액까지도 빼서 적어 두었다. 적어도 이 정도는 우리가 모아둬야 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고, 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축란에 금액을 기재했다. 그 옆에는 ‘빡세게 모으자!!! >_<’ 라고 적어 두었다. 뒤이어 우리는 결혼에 필요한 스드메, 혼수, 신혼여행 등 금액을 정리하였다.
이제 재정회의의 하이라이트인 용돈을 정할 차례였다. 희희와 결혼을 결심한 후 부쩍 결혼한 지인들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하였다. 그중 가장 집요하게 물어본 부분이 돈 관리였다. 부부가 돈 관리를 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한 사람이 돈 관리를 다 하는 경우도 있었고, 서로의 월급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고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모으고,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부부도 있었다.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우리는 투명하게 월급과 공동 지출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용돈만큼은 서로의 터치 없이 자유롭게 쓰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즉, 용돈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월급에서 남은 금액에서 5:5로 용돈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희희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희희의 눈빛은 그 어떤 사람보다 정직하기 때문이다. ‘하..’ 속으로 고민했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5.5:4.5로 나누자 그럼! 5.5가 희희, 4.5가 나!”
희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고맙다고 희희가 말하며 용돈란에 금액을 적었다. 그리고 빠르게 아이패드를 가져가 무언가를 적고 나서 나에게 패드를 건넸다. 하단을 보니 희희가 사인을 해놓았고, 눈빛으로 ‘어서 사인해’라고 내게 명령했다. 눈빛으로 ‘응^^’이라고 말하며 나도 사인을 했다.
재정회의 시간은 즐거웠다. 우리는 결혼하고 격주로 재정 회의를 열기로 했다. 격주 금요일 재정 회의를 한 뒤, 맛있는 안주와 그에 걸맞은 술을 마시며 파티를 하기로 했다. (뜬금없지만) 그렇게 희희는 재정부 장관이 되었고, 나는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응?)
재정 회의를 주제로 글을 쓰다가 희희와 영상통화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희희, 우리에게 돈이란 무엇이야?”
“글쎄, 오빠는?”
“음.. 재정 회의 이후 파티 때 우리가 먹고 싶은 맛있는 안주와 맛있는 술을 살 수 있는 거?”
“글쎄, 돈은 우리가 결혼 준비하며, 결혼 하고 나서도 꼭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해. 근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그때 우리가 만약 돈 이야기를 안 했더라면 우리 사이가 더 깊어졌을까?”
사람마다 돈에 관한 생각은 분명 다르다. 돈을 정의하는 방식 또한 다르고, 우선순위도 다르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돈에 대한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일터. 희희와 나는 돈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즐겁게 소비하고, 즐겁게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시에 세속의 정의를 좇지 말자고 다짐했다. 필수 불가결한 것은 맞지만 1순위를 우리가 좇아야 할 것은 아님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 것이다. 결혼은 다 돈이다. 준비하다 보니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쓰게 되고 그때마다 정말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돈 없으면 결혼이 가능한가? 에 대한 질문에 ‘사랑만으로 가능하다’로 항상 대답해왔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의 유무가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맞출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정말 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아직은 소유에서 오는 행복보단 희희와 함께하며 존재하는 지금의 행복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