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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웨이 Feb 10. 2021

1. 나의 장래 희망은 과학자도 변호사도 아니었다

34년간 못이룬 꿈, 과연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장래 희망란에 ‘IOC 위원장’ 또는 ‘카레이싱 선수’를 적어놓곤 하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또, 그 친구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른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이후 내 꿈은 바뀌었다. 


당시 기억이 생생하진 않지만 같은 반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비엔나소시지 한 통을 나 혼자서 다 먹은 것처럼 기뻤다. (소아비만을 막기 위한 엄니의 소시지 밀당이 장난 아니었다. 물론 우리 아들 많이 먹어야지 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와 게임을 할 때면 게임이 잘 안풀려도 괜스레 웃음이 났고 뭐든지 해낼 것만 같은 뽀빠이가 된 기분이었다. 쉬는 시간에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날의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다 받은 기분까지 들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친구들과 전화하기 위해 수첩에 집 전화번호를 적어두었고 심심하면 친구들과 통화를 했었다.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친구에게 알아낸 다음, 몰래 전화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 당시 그녀는 나에게 트와이스보다 더 핫한 아이돌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고, (친구들은 입이 굉장히 저렴했지만, 그 덕에 사랑 전도사 역할들을 톡톡히 해냈다) 그녀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넌지시 고백했다고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칭찬도, 갖고 싶었던 로봇 장난감과 팽이를 선물 받은 날도 그녀의 마음을 전해 들은 날에는 감히 견줄 수 없었다. 초2 꼬마가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을 얼마나 느껴봤겠는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강한 쓰나미처럼 엄청난 감정이 나를 강타했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더 세차게 와줘라’ 


이날 이후 내 꿈은 올림픽의 감동을 전하는 IOC 위원장도, 사이버포뮬러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카레이서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한평생 함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사랑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쓰디쓴 실패의 맛도 보았고, 멋진 첫 키스를 위해 입속에서 A부터 Z까지 그려보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차인 날은 그녀의 집 앞 정자에 앉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기다렸다. 영화에서처럼 슬퍼하고 있는 날 우연히 그녀가 발견하여(나는 그녀가 날 보는지 전혀 모르는 채) 다시 내게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면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사랑에 대한 나의 꿈은 바뀌지 않았다. 수업시간 마음에 든 학우에게 번호를 물어보기도 하였고, 스마트폰이 나온 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도 이성을 만났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짐의 공백이 생기는 것도 싫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났고 자연스레 이별의 순간들도 많아졌다. 만남이 쉬운 만큼 이별도 쉬웠다.(이상하게 누군가를 만나 호감을 주고 받는 것이 내겐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이별을 고했다. 때로는 비겁하게 메신저로 이별을 전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네가 뭐라고 이 사람 저 사람 계속 만날 수 있는거지?’라는 눈빛으로 부럽다고 말하곤 했지만..  


처음엔 부러움을 받는 것이 좋았다. 내가 굉장한 매력 부자라는 생각도 들었고, 커서 연애 강의로 떼돈을 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별은 결국 내 꿈의 실패였고, 실패가 쌓여갈수록 내 마음엔 불안감이 크게 자리 잡았다.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오히려 몇 년간 연애를 이어오고 있는 ‘이젠 가족이지 뭐 아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인생 역전 로또처럼 단 한 명의 내 짝을 만나면 이 모든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름의 전략을 세워 연애 상대를 찾아 나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몇천 번을 듣지 않았는가? 때로는 진부한 말들이 진리로 느껴진다. 이전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여 다음 상대방을 만나기로 했다. 취향이 맞지 않으면 취향이 같은 사람을 찾아 나섰고, 직장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직장인을 만났다. 말과 화법이 별로면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전에 없던 조건들이 어느새 일렬종대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은 조건들과 한패를 이루어 내 마음속에서 세력을 더 크게 확장하려 했다. 그럴수록 나는 따지는 조건이 늘어나고, 딱 그만큼 불안감도 더 커졌다.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따위가 뭐라고 조건을 따져가며 사람을 골라 만나려고 하냐 못난 새끼’ 나 자신이 싫어졌다. 차라리 누굴 만나 구애를 하고 데이트를 할 시간에 자기계발이나 할 걸 따위의 생각들이 날 지배했다.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래! 혼자 있을 때 건강한 사람이 둘이 있을 때도 건강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고 다짐하며 운동을 했고, 영화를 보고 영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작심삼일의 반복이 이어지고 나는 다시 외로워졌다. 

 

핸드폰 잠금 해제를 했다. 한 후배에게서 추천받아 시작했던 틴더 어플을 다시 설치하여 깔았다. 그리고 또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숱하게 스와이프를 시작하던 중 예쁜 여자를 발견하여 슈퍼라이크를 보냈다. 느낌이 좋았지만 느낌이 좋았던 적은 이미 너무 많이 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잠잠히 있으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그녀가 너무 예뻤다. 마음이 콩닥콩닥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내 슈퍼라이크를 수락했다. 그녀와의 대화창이 열렸다. 7월 29일 오후 8시.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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