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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정부, 와이브로 실패 인정, LTE-TDD부상

51부. 제4이통사를 찾아라

by 김문기

제4이동통신사 설립을 향한 도전이 이어지던 시기, 국내 이동통신 정책의 중심축을 흔드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오래도록 정부가 방어해온 와이브로 정책 자체가 수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공론화됐다는 점이다. 제4이통 후보 기업들이 와이브로 기반 망 구축을 전제로 사업계획을 제출해왔던 만큼, 정책 방향이 바뀌면 도전 자체의 전제가 무너질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논쟁을 넘어, 신규 사업자의 존립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적 불확실성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와이브로는 이미 세계적으로 퇴조 국면에 들어서 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이 주도한 모바일 브로드밴드의 상징 기술로 평가받았지만, 3GPP 계열 LTE가 등장하면서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특히 2012년 1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중국 차이나모바일이 주도한 TD-LTE(LTE-TDD)를 정식 4G 표준으로 승인한 뒤 흐름은 더욱 가속화됐다. 인도, 일본, 러시아 등 와이브로 또는 와이맥스를 도입했던 국가들은 즉각 TD-LTE 전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여러 국제 통신 보고서에서 확인되며, 한국 역시 동일한 기술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결정적인 장면은 2012년 7월 17일 KT가 주재한 하반기 LTE 전략 간담회에서 나왔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은 “와이브로를 계속하더라도 글로벌 장비 생태계가 붕괴해 유지가 어렵다. 해답은 TD-LTE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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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브로 전국망을 구축하고 가장 열정적으로 서비스를 추진했던 KT가 직접 기술적 한계를 인정한 셈이어서, 업계는 이 발언을 사실상 와이브로 퇴진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기사와 녹취 기록에서도 해당 발언은 동일하게 확인된다.


사업자뿐 아니라 제조사 진영도 이미 와이브로를 떠나고 있었다. 인텔은 와이맥스 포럼 의장직을 사퇴하며 관련 투자를 축소했고, 삼성전자 역시 일본 UQ커뮤니케이션즈 등 일부 해외 수요에만 장비를 공급할 뿐 신규 생태계 확장에는 손을 떼고 있었다. 글로벌 단말 제조사들은 와이브로 모델을 단종시키며 칩셋·모듈 공급 라인도 철수했다. 사실상 제조사·사업자·정책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무너지는 조짐이 명확해진 것이다.


와이브로 대역을 TD-LTE로 전환하려는 논리는 기술적 측면에서도 무리하지 않았다. 와이브로와 LTE-TDD 모두 시분할(TDD) 기반의 구조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2.5GHz 와이브로 대역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LTE-TDD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LTE-FDD와 비교해 TDD 장비는 구성요소 일부를 공유할 수 있어 전환비용이 낮았으며, 당시 Strategy Analytics는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2014년 이후 세계 최대 LTE 시장으로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특히 중국의 TD-LTE 가입자가 2년 내 2600만 명에 달한다는 동일 기관의 예측은 정부가 기술 전환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판단 요소였다.


결국 2013년 9월 13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열린 ‘와이브로 정책방향’ 토론회에서 와이브로 정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2) 정부는 LTE-TDD를 와이브로 대역에서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지만, 기존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SK텔레콤과 KT는 2019년까지 와이브로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부여했다. 반면 제4이통을 위해 남겨두었던 2.5GHz 대역폭 40MHz는 신규 사업자가 와이브로 또는 LTE-TDD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문호가 개방됐다. 이는 정책적 일관성과 산업 생태계를 동시에 고려한 ‘절반 전환’ 조치였다.


이후 10월 3일 발표된 정부의 최종 정책안은 이러한 논의 결과를 그대로 반영했다.3) 학계·연구기관·전담반이 축적해온 분석을 바탕으로 와이브로 시절의 정책적 실험을 사실상 마무리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기술을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한국 이동통신사가 3G·4G·5G 시대를 거치며 쌓아온 기술·정책·생태계 전략의 전환 지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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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문지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며 전세계를 누볐습니다. 이전에 정리했던 이동통신 연대기를 재수정 중입니다. 가끔 다른 내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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