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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uper Work

AI 번아웃

앞으로 모두가 겪을 문제

by 유호현

AI를 많이 이용하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리고 AI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이다. 바로 AI 번아웃이다.



AI랑 일하면 AI가 다 해준다. 글도 써주고 코딩도 해준다. 음악도 작곡해 주고, 영상도 만들어 주고, 이미지 편집도 해주고, 데이터 처리도 해준다. 나는 AI가 일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먼 산을 볼 수도 있다. AI가 워낙 빨리 일을 마무리해서 수다를 떨 정도의 시간은 안 되기는 한다.



이렇게 Vibe Work를 하는데 정말 빠르게 피곤해진다. 지난 몇달간 이런 문제가 왜 일어나나 고민해 보다가 상담 심리 전문가 Hangshim Lee 교수님과의 대화을 통해 내가 겪는 일들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핵심 내용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달려서 1시간 이동과 차를 타고 1시간 이동했을 때의 차이이다.



차가 없이 한시간 뛰어가면 10킬로미터 정도 갈 것이다. 숨이 차고 다리는 아프고, 온몸이 땀으로 젖고, 심장은 빠르게 뛴다. 그렇지만 동네 몇개 지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를 타고 한시간을 이동하면 60km 이상 갈 수 있다. 서울에서 수원이나 인천까지 갈 수 있다. 다리는 하나도 안 아프고 숨도 안 찬다. 그렇지만 다른 피로감이 온다. 목과 어깨가 뻐근하고, 눈이 피로하며, 집중력이 소모되고, 정신적으로 지친다.



이러한 다름이 AI와 하는 일에도 적용된다.



혼자 1시간 일할 때는 보고서 초안 하나 작성하거나, 간단한 코드 몇 줄 짜는 정도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 않지만, 생각을 짜내는 과정에서 오는 적당한 멘탈 피로감이 있다. 하지만 이 피로감은 익숙하다. 우리가 평생 경험해온 것이다.



AI와 함께 1시간 일하면 보고서 10개를 검토하고, 앱 하나를 만들고, 데이터 분석 3개를 완료하고, 프레젠테이션 2개를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인지 과부하가 온다. AI의 결과물을 계속 검토하고, 수정 지시를 내리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잦은 context switching. 의사결정의 연속. 품질 관리의 압박.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피로다.



AI와 함께 일해도, 계속 쉬어줘야 한다. 운전을 해도 계속 쉬어줘야 하는 것처럼. 문제는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을 10시간 넘게 하다 죽은 사람도 있다. 분명 놀고 있는데 엄청난 피로가 쌓인다. AI와의 협업도 마찬가지다.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 피곤하지 않은 것 같은데, 뇌는 F1 레이서처럼 극한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2027년에는 대혼란의 시기가 올 것 같다. 일하는 페이스도 달라지고 노동의 가치도 급격하게 달라지고 실업자도 늘어나고 매일 매일 생산량은 폭증할 것이다. 그리고 일의 가치와 일의 피로에 대한 정의도 달라질 것이다.



AI 시대, 빠르게 적응해나가기 위해서 휴식에 대한 새로운 정의도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루 8시간 근무가 아니라 4시간 고강도 AI 협업이 표준이 될지도 모른다. 월수금만 일하는 주 3일 근무가 표준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의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가 필요할 것이다.



AI가 우리를 슈퍼휴먼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슈퍼휴먼도 인간이다. 새로운 도구에는 새로운 사용법이 필요하듯, AI 시대의 노동에는 새로운 휴식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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