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허그 60
나는 내가 지나온 길의 모든 계절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 알베르 카뮈
"뭐 먹을까?"
"아무거나!"
"'아무거나'란 메뉴가 어디 있어?"
"난 당신이 주는 대로 먹어..."
남편의 그 말이 우습다가도 가끔은 얄미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한 번은 묵직하게 되받아 쳤어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 남이 해주는 밥이야!"
"아, 그럼, 나가서 먹지 뭐!"
추어탕, 샤브, 물회, 황탯국 등 익숙한 맛을 찾아가지만
매번 외식을 하고 나면 갈증이 나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시게 되고,
다음 날이면 얼굴이 퉁퉁 붓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그래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대요."
"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인생도
누구나 평범한 일상식처럼 담백하게 살아내고 싶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외식을 한 것처럼 자극적인 맛을 보게 되잖아요...
인생의 매운맛, 짠맛, 신맛...
얼마나 갈증이 나면서 목이 타 들어가고...
이렇게 연말이 되면
올 한 해 동안 맛보았던 그 모든 맛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 같아요.
악몽 같았던 두 번의 이사, 재취업 도전과 실패, 1년 반의 자격증 도전과 취득, 새로운 봉사와 남다른 기쁨, 아들며느리의 임신 소식, 그 외 분명히 있었던 수많은 일들.
참 숨 가쁘게 살아낸 한 해였어요.
물론, 그때 그때 열심히 산 것 같은데도
그럼에도 경제적 손실은 매우 컸고,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는 더더욱 없이...
정작 아무런 변화가 없네요.
언젠가 하루는
제 노력에 비해 이제는 밑천이 다 드러나고,
제 밑바닥이 너무나 텅 비어있는 게 보여서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아이처럼 엉엉 큰소리를 내며 울어보았네요.
아마도
그동안 '꼭꼭, 숨어라' 하며 가두었던 제 감정의 저수지가
서러움이 폭발하여 저수지 둑이 터져버린 것 같아요.
그렇게 '꺼이꺼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다가 퉁퉁 부은 얼굴을 보니,
멋쩍으면서도 제대로 속이 후련하기도 했어요.
"야이, 대한민국 아줌마 깡은 어디 가뿟노!"
스스로에게 투덜거리며 웃었더랬어요.
그러고 보니, 올해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있더라고요.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제 몸에서 힘이 빠졌고,
체면을 내려놓으니 제 마음이 자유로워졌고,
경력을 내려놓으니 제 삶이 가벼워졌어요.
정말 귀한 것을 얻었어요.
이래서 우리 인생 맛은 다 골고루 맛보아야 하는 가봐요!
하나 잃으면 또 다른 하나가 들어오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살아가게 되니까요.
인생의 맛!
살다 보면, 외식처럼 놀랄만한 자극적인 맛을 만나지만
결국은 다시 담백한 일상식이 최고라고 깨달으며 돌아오는 삶.
올해도,
내년에도,
그렇게 한 끼 한 끼,
한 날 한 날 잘 버티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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