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꿈을 들춰낸다는 것은
2020년 3월 짧았던 3주간의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를 기억하며 3년 만에 오래된 기억들을 들춰본다. 지금 나는 정확히 3년 만에 다시 오스트리아로 떠날 계획을 하고 있다.
3년 전에 내가 쓴 글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있다. '도망치는 마음으로 오면 안 되었다'라고. 이번에 내가 오스트리아로 가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어쩌면 이번에도 약간의 도피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난번과 다르다는 것을 지금부터 설명하려 한다.
지난 3년간 1년은 남은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1년은 전공과 무관한 웹개발을 공부했고 1년은 개발 직무로 취업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의 회사생활은 자극적이기 짝이 없었다. 온통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었고 처음 맺어보는 관계들이었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또 성장했겠지만 그만큼 아팠고 그만큼 뜨거웠다.
3년간 나는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갔다. 아이유의 팔레트 가사처럼 25살쯤 되니 '이제 날 좀 알 것 같'았다. 삶에 대한 고찰을 좋아하고 인간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며 상황에 원인과 결과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은 내 사전에 없고 지금 당장 이유가 생각나지 않더라도 그 언젠가 이유를 반드시 찾아내어 스스로든 타인이든 납득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어찌 보면 고약한 성격이다. 생각이 많아 늘 피곤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죽은 듯 산다고 느끼는 지독한 사색가이고 그만큼 삶을 음미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곱씹어온 지난날들을 가끔 이런 글들로 회고하고 반성하고 추억한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 많고 복잡한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해일처럼 밀려오는 생각들에 파묻혀 진작에 익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 회사생활을 회상해 보면 참 우스운 일들이 많았다. 주변 친구들보다 이른 나이에 취업을 했다는 자부심에 취해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상들을 이어나갔다.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나를 대하는 태도, 드디어 사회인이 되었다는 안도감이 나를 한동안 눈멀게 했던 것 같다.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소속감과 더불어 역설적이게도 참 허망했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이 내가 그동안 그토록 갈망하던 것들의 결과물이라면 참 초라하다는 생각을 했다. 취업을 했고 이제 큰 이변이 없다면 한동안은 생각 없이 그저 그렇게 다닐 수 있는 회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알 수 없었다. 그 당시의 현실에 안주하면서 매일을 공장의 부품처럼 컨베이어 벨트 같은 지하철에 실려 출퇴근을 반복하는 삶을 살면서는 절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출근길에 나는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듯 산다는 말이 이런 삶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싶었다.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멍하니 매일을 그 무엇도 느끼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음미할 것들은 사라진 지 오래고 더는 어떤 의욕도 목표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에는 문득 나는 지금 내가 만든 내 일상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는 한 지금 지내는 생활 반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가장 괴롭게 했다. 그러니까 나는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갈망하던 것을 찾은 어느 날 집 옥상 위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툭 '자유롭고 싶다'라는 말을 뱉었다. 그 말을 뱉은 직후 나는 오랜만에 전율이란 것을 느꼈다. 이제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랜 방황의 시간을 지나 결국에 나는 또 다른 꿈을 찾았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내가 꾸는 꿈의 초석을 다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오스트리아를 지금 당장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국내에서 만 3년 이상 쌓은 후 외국에 나가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꿈꿨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이직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얼어버린 시장과 함께 내 이직길도 막혀버렸다. 흐르는 시간에 비례하게 내 불안은 점점 커져갔고 결국엔 그 불안에 잠식되어 한동안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 만큼 좌절하고 말았다. 너무 패기롭고 발칙하게 퇴사를 결심했나, 다시 야근 지옥에 빠지더라도 아무 회사에나 들어가야 하나 생각도 하고 다시 예전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지까지 고려할 만큼 절박해졌다. 절박함에 사로잡혀 매일매일 하던 개발 공부는 점점 갈피를 잃기 시작했고 급기야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넋 나간 사람처럼 지내던 어느 날 점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었는지 문득 이직에 이렇게 목숨 걸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날 독일로의 꿈을 꾸게 만들어준 고등학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났고 그 친구와 대화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독일로의 꿈을 다시 꺼내들 수 있었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면 참 좋겠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지난 독일로의 출국을 준비하며 깨달았으니 이번에는 마음먹었을 때 무작정 떠나보기로 했다. 또 어떤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가 복병을 만나 좌절할지 모르니 지금 당장 준비된 게 없더라도 가보기로 했다.
다시 유럽 땅을 밟는 날은 아마도 여행자의 신분으로 도착해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사람 일 함부로 단정 짓는 것 아니라더니 정말로 다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어학 공부 및 자격증 취득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으러 떠난다는 명분이 있다. 이제 누군가 '왜 오스트리아에 오게 되었냐'라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독일어 공부가 재밌고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내가 무얼 원하는지 찾으러 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무언가를 음미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어떤 일들을 기록하게 될지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