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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Nov 04. 2024

【300원의 기억】

 

  “엄마. 나 올백 맞았어.”

  “그나, 우리 아들 참 잘 했다. 가서 짜장면 사 먹고 온나.”     

계란 후라이를 올란 옛날 짜장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시험을 잘 봐 올백을 맞으면 그날은 짜장면을 먹는 날이었다. 하교 길에 조그만 중국집을 지날 때면 코 끝에 짜장면의 그 달콤구수한 냄새와 단무지의 향긋함이 섞인 묘한 자극. 표현하기 어려운 짜장의 자극은 지금도 기억될 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그 짜장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시험 전날 꽤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리고 올백을 맞으면 어김없이 나의 손에 300원이 쥐어졌다.   

   

짜장면 가격은 25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짜장면 한 그릇 먹고 하드(막대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면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때 그 짜장면 맛을 찾기 어려워 이제 만들어 먹는다. 옛날 짜장면의 구수한 맛을 내려면 춘장과 된장을 섞고, 감자를 넣으면 그 맛이 조금 살아난다. 지금은 쟁반짜장, 유니짜장, 간짜장, 해물짜장, 사천짜장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 많은 짜장 중 나에게 최애 짜장은 유니짜장과 쟁반짜장이다.     


유니짜장은 손이 많이 간다. 돼지고기, 양파, 당근. 양배추, 호박, 마늘, 생강 등 모든 재료를 다져야 한다. 그간 갈고 닦은 칼질이 활약한다. 약 30분 정도의 춤을 추면 얼추 재료가 완성된다. 그리고 달궈진 궁중팬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아 기름을 내고, 딱딱한 당근이 익을 즈음 양파와 생강을 넣고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나머지 재료를 넣고 볶는다. 이후 춘장을 넣고 마구마구 웍질을 해준다. 사실 요즘 인덕션에서 하는 웍질은 별 의미가 없다. 불맛은 대강 볶고 토치로 대신한다. 이어 물을 붓고 끓여 다 익었다 싶을 때 전분물을 부어 마구 저어주면 보기에도 맛난 짜장이 완성된다.     

한 번 더 볶아 낸 쟁반짜장

쟁반짜장 재료 손질은 유니짜장보다 크게 썰기 때문에 조금은 쉽다. 그러나 해물과 버섯, 청양고추를 준비해야 하고 면을 삶은 후 다시 짜장과 볶아줘야 하기에 한 번 더 손이 간다. 두 짜장의 맛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유니짜장은 각 재료가 거의 완벽하게 섞여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고, 쟁반짜장은 불맛과 함께 각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느낄 수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덟 살에 시작된 짜장면과의 만남은 군 시절 담 넘어 날아오는 중국집 짜장의 향기에 사장님을 목청 높여 부르게 했다. 사장님이 던져 주는 비닐봉지에 싸여 있던 그 짜장면의 맛, 휴가 나가며 다시 한 그릇 먹고 밀린 결재를 했던 그 짜장면의 맛을 집에서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단무지 대신 깍두기에 먹는 맛도 꽤 좋다.      

처음 보았던 검은 국수의 마법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근사한 오찬을 선사했는데 은퇴하고서는 매주 한 번 정도 먹던 짜장면을 한 달에 한 번 먹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꽤 큰 춘장을 하나 주문해 김치 냉장고에 넣어 놓고 그 검은 놈이 그리워지면 어김없이 궁중팬을 올리고 아주 능숙한 칼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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