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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E열 Apr 28. 2020

열정이란 이름의 자기 파괴

영화 <위플래쉬>

열정이란 이름의 자기 파괴

<위플래쉬>, 데미언 샤젤 감독, 2014.



누구든 실수하기 마련이다. 열정이 크다고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열정이 무언가를 실수라 착각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도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 실수는 즐거운 성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광기를 열정이라 착각한 자에게는 성과 또한 실수가 된다. 고작 이것밖에 이뤄내지 못한 것은 실수다. 광기는 자기 파괴를 통해 실수를 극복하려 한다.




앤드류는 혼자 드럼을 연습한다.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박자를 탄다. 어쩌다 플래처의 눈에 들게 되고, 곧이어 플래처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간다. 플래처는 폭력적인 수업방식으로 앤드류를 몰아친다. 다음날 앤드류가 혼자 연습할 땐 박자를 타지 않고 속도에 집중한다. 손이 까져 피가 날 때까지 죽을상으로 드럼을 친다. 그는 드럼을 즐기지 못한다. 앤드류의 첫 번째 자기 파괴는 단 한 번의 수업으로 일어났다.


경연을 마친 후 앤드류는 메인 드럼 자리를 꿰찬다. 식사자리에서 가족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자 사촌에게 절대 NFL에 가지 못 할 거라 말한다. 결국 자신이 사촌보다 우월하다 말하기 시작하며 가족의 반발을 산다. 아버지가 앤드류에게 링컨 센터에 갈 수 있냐고 한 것은 본인이 초래한 두 번째 자기 파괴이다. 아버지는 작가이면서 교육을 겸업한다. 앤드류는 성공한 작품 대신 타협을 통해 가정을 꾸린 아버지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 아버지는 그가 넓게 보길 바라지만 그는 플래처의 메인 드러머만 보며 달린다.


세 번째 자기 파괴는 더욱 직관적으로 나타난다. 앤드류는 드럼을 연습하기 위해 니콜과 헤어진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기정사실삼은 결별은 폭력적이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엔드류에게 꿈도 없는 니콜은 멈춰선 장애물일 뿐이다. 앤드류는 대단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과 주변을 파괴해간다. 니콜이 지금은 대단하지 않냐며 묻자 앤드류는 똑같은 답을 되풀이한다. 최연소 밴드 멤버라는 성취는 보조 드러머로 돌아갔다는 실수보다 작다. 누군가 자신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든 이상 자신은 대단하지 않다.


앤드류는 얼음물에 손을 담가가면서 연습한다. 성에 차지 않는 자신을 쓰레기라 칭하며 드럼을 친다. 제발 똑바로 하라며 소리치는 앤드류의 얼굴엔 분노만이 가득하다. 첫 수업 때 분하다고 소리를 질러야 했던 앤드류는 이제 혼자 있을 때에도 소리를 지른다. 그는 플래처와 다를 바 없다. 서서히 잠식되던 앤드류의 열정은 피를 튀겨가며 광기로 변한다. 완성되지 않은 그는 언제나 분하다.




플래처를 만난 후부터 그는 열정을 연료삼아 드럼을 치지 않았다. 대단한 드러머가 되려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플래처에게 인정받고 메인 드러머를 꿰기 위해서였다. 플래처는 앤드류가 포기하던지, 제2의 찰리 파커가 되던지 둘 중 한 가지를 강요한다. 둘에게 음악은 주관적이지 않다. 앤드류는 앤드류가 아닌, 플레처의 찰리 파커가 되기 위해 폭주한다.


그의 자기 파괴는 교통사고에서 절정에 이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던 앤드류는 무리해가며 경연에 들어간다. 광기에 견인되어 드럼을 친 앤드류는 플래처를 덮친다. 둘은 결국 성취를 위한 광기라는 공통분모로 일치한다. 퇴학을 당하고 플래처라는 광기와 떨어진 앤드류는 순식간에 식어 드럼을 접는다.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플래처에 의해 달려나갔던 그는 폭탄이었다. 후폭풍은 파괴력에 비례하여 모든 것을 헤집는다. 그에게 플래처는 장작이 아닌 화약이었다. 엉망이 된 그는 니콜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니콜은 폭발과 함께 떠났다.


우연히 플래처와 만나 다시 무대 위에 선 그가 보여주는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최후의 자기 파괴이다. 망신을 당한 앤드류는 무대를 빠져나온다. 아버지와 포옹을 한 후, 결심을 한 것처럼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아버지 대신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앤드류는 플래처의 지휘에서 벗어나 독주를 시작한다. 앤드류는 신호를 준다고 하며 플래처를 견인하기 시작한다. 문틈으로 지켜보는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표정이다. 광기라 말할 수 있는 그의 독주는 플래처를 완벽히 견인한다. 플래처가 앤드류의 신호에 맞춰 곡을 마무리할 때 두 인물은 성취를 이룬다.




플래처는 그의 교육방식으로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어냈고 앤드류는 이 공연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말했듯 서른 언저리의 나이에서 친구 없이 약물중독으로 죽는다. 친구와 연인, 가족을 잃고 만들어낸 성취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카레이서이다. 전 세계가 그를 기억하더라도 그것이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완성은 플래처의 수당이다.


플래처는 교육자가 아닌 미친 예술가다. 스승이 아닌 연주자의 입장에서 던진 의자는 교육이 될 수 없다. 앤드류가 죽은 후, 플래처는 그의 공연 CD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자기 파괴를 양분삼은 새로운 CD가 나올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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