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황혼이 잿빛으로 물들지 않기를
잿빛 황혼 속에서도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 말 한마디
그 말이, 끝을 붙잡는다
“그 사람이 참 저한테 잘해줬어요…”
마주 앉은 노년 여성은 표정 없는 얼굴로 조그맣게 말하며, 끝내 흐느꼈다.
그녀의 황혼은 노을빛이 아니라, 깊고 무거운 잿빛이었다.
세 달 전, 그녀의 남편은 갑작스러운 암 진단을 받았다.
그날 이후 노부부는 일상은 고요하고 어두웠다.
자녀들과 연락은 끊긴 지 오래였다.
"우리 애들이 사업이 실패해서, 사는 게 바빠 연락을 못하는 것 같아요."
원망 대신 이해를 먼저 건네는 그녀의 말에,
긴 세월 가족을 품어온 마음이 느껴졌다.
"살 만큼 살았지. 더 살아봤자 신세만 지고, 당신도 아픈데 내 병시중 하게 할 순 없지."
그런 말을 자주 하던 무렵, 남편은 그녀가 외출한 사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 쓰던 식탁 위 두 개의 밥그릇은 그날 이후 하나로 줄었다.
그녀의 하루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무너져 내렸다.
아침마다 빈자리를 마주하며,
같은 방에서 나누던 사소한 대화들이 사라진 자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무너졌을까.
남편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던 어느 날,
그녀 역시 스스로를 놓아버렸다.
응급실로 실려온 후, 우리는 상담실에서 마주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외루움과 상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나는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고,
억눌린 감정을 꺼내어 표현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켰다.
그녀는 남편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서 오히려 잘해주었던 기억에 오래 머무르며 상담을 이어갔다.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오가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마음을 다해 남편과 작별하는 연습을 했다.
퇴원 무렵, 그녀는 치료비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치료비 지원을 해드리고,
추가로 구청에 서류를 보내 긴급생계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가 버겁지 않도록 모든 서류 준비를 도왔다.
관련 기관에 직접 가야 할 땐, 병원에서 도보 5분 거리를 함께 걸었다.
돌아오는 길, 카페에서 수박주스를 건넸다.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땀을 닦는 줄 알았지만, 그것 눈물을 훔치는 손길이었다.
"자식들도 이렇게 안 하는데, 고마워요. 내가 뭐라고..."
그리고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 뒤에는 오래된 그리움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 숨어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우시는 모습에 조용히 손을 잡아 드렸다.
지원금이 잘 처리되어 진료비 전액을 지원되었고,
그녀는 나와 약속했다.
"식사를 거르지 않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할게요."
그리고 식사 거르지 않고, 하루에 한 번 꼭 산책하기로 나와 약속을 했다.
이후 병원 진료 때마다 그녀는 찾아와 안부를 전했다.
덥다며 요구르트 한 병을 건네고,
막내딸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요즘은 만들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아주 바빠요."
연계 후 지역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는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황혼의 시기를 맞이하겠지.
황혼은 하루의 끝자락이지만, 내일의 시작이기도 하다.
모든 황혼이 잿빛에 갇히지 않기를,
어르신들이 자살로 생을 거두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받은 무한한 사랑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그 마음을 전하자.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남은 삶을 지켜줄지도 모른다.
※ 본 글은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내담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일부 정보를 변경 및 각색하였습니다. 내담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음을 밝힙니다.
https://youtu.be/Ph5gTZX3euQ?si=XdqtYR-d2Bthy-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