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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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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Jan 05. 2021

밀크커피

밀크커피: 「명사」 우유를 첨가하여 마시는 커피(우리말 샘 사전에서)


의사가 된 지 3개월이 지난 봄이었다. 외과 인턴 근무 중아침 당직실은 평온했다. 수술도 없었고 아침 회진도 끝난 상태였다. 딱히 공부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잠도 푹 자둔 상태였다. 당직실의 다른 인턴들은 각자 자기 일을 하러 병동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나는 아주 평온하게 3개월 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냥 멍하니 내게 배정된 침대에 앉아 방안에 떠다니는 햇빛에 반사된 먼지를 바라보면서.


호출벨이 울린 건 그 여유를 한참 즐긴 다음이었다. 반복적으로 호출이 울렸고 나는 느릿느릿 전화로 걸어가 더러운 당직실의 전화기를 들고 나를 호출한 사람을 찾았다." 외과 인턴 선생님! 응급실 빨리 내려와요."응급실 간호사가 아무런 설명 없이 이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내려놓고 17층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심폐소생술이거나 아니면 급하게 환자 이송이 필요한가. 일단은 뛰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치가 흥건히 고인 침대에 누운 환자 옆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더 생각할 것이 없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혈관을 찾아 수액세트를 꼽고 수혈을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환자의 심장은 희미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만 순식간에 10개도 넘는 혈액이 환자의 몸안에 주입되었다. 환자는 15살짜리 중학생이었다. 5층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왜 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착할 때 의식은 분명히 있었다. 뱃속에서 많은 출혈이 확인되었고 손과 발은 골절되었고 혈압은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그 아이가 입고 있던 옷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포기라는 말이 수군거리며 나오려고 할 때 혈압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환자는 의식을 찾았고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 '수술장으로 올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나는 전공의 선생님들과 함께 환자를 옮겼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모든 외과의 교수님들이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생각할 수 없는 분량의 피가 수술장에 실려 들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정말 모두들 이 아이가 살아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떼우는 일 뿐이었다. 나는 피가 담긴 팩을 짜서 혈액을 환자의 몸안에 주입하고 여분의 혈액을 찾아 수술실과 혈액원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피를 빨리 가져다가 그 아이에게 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출혈의 속도는 나의 발걸음보다 빨랐다. 교수님들도 복강내에수 출혈 지점을 찾았지만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출혈은 잦아들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 지나고 수술장 안은 점점 정막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집도하시던 노 교수님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이젠 힘들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고 방을 나갔다.

 "그래도 너무 어린데 한번 더 해보겠습니다." 다른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다시 나는 혈액원을 향해 뛰었다. 그렇게 두세 시간. 그리고 다시 다른 교수님이 들어오고 한두 시간. 이제는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할말이 없었다. 혈액원에서는 이제 더 이상 피를 구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포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시작할 때쯤. 심정지가 왔다. 교수님들은 내게 심폐소생술을 지시했다. 수술포를 걷고 들어가 심장마사지를 했다. 마치 삼장안에 아무덧도 없는 사람같았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삼십 분 한 시간...... 교수님은 보호자를 만난다며 수술장을 나갔다.


시간이 더디고 또 무겁게 흘렀다. 수술장 밖 멀리서 보호자들의 절규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은 심폐소생술을 중지하라고 했다.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췄다. 땀이 흘렀다. 아이의 심장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황은 종료되어 버렸다.


심장이 멎는다고 환자의 상처도 닫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거의 시신으로 변한 그녀의 상처도 봉합해야 했다. 역시 나의 일이었다. 전공의 선생님들과 자리에 남아 복부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무섭게 흘러나오던 피도 이미 멈춰 버린 상태였다. 내가   있는  최대한 상처를 줄일  있게 피부를 봉합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이송하였다. 수술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모두 아이의 몸에 있던 피였다. 중환자실로 가는 복도에는 환자의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침대가 수술실을 나오는 순간 그들은 환자의 이름을 부르다 쓰러졌다. 우리 모두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나는 뒤에서 사망 선언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어머니가 절규하는 것을 바라보고 학교에서 달려온 친구들이 바닥에 쓰러져 우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청백해 질대로 창백해진 아이의 얼굴과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기껏   있는 것은 바닥에 쓰러진 그들을 휠체어를 가져다가 앉을  있게 하는  정도. 무능한 시간이었다.


저녁 7시가 다된 시간. 당직실로 올라갔다. 다른 인턴 선생들은 이미 집에 가거나 야간 업무를 하러 내려가 있었다. 몇몇 남은 인턴들이 오늘 이야기를 들었다며 힘들지 않냐며 말을 걸어왔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옥상으로 갔다. 생각의 회로가 끊긴 것 같은, 뇌가 진공상태에 빠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여름이라 그런지 해가 남아있었다. 옥상 난간에 앉아 병원 아래 풍경들을 바라보다가 커피가 먹고 싶어 자판기로 가서 동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분명 블랙커피 버튼을 눌렀는데 밀크커피가 나왔다. 다시 난간에 앉아서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았다. '16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냥 처음에는 눈물이 한두 방울이 나왔었고 왠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죄책감'이었을까.

죄책감을 가지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사였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큰소리로 울었다. 왠지는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다가 잘못 뽑아온,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밀크 커피를 마셨다. 눈물과 콧물이 섞인 내 입속으로 달고 쓰며 끈적거리는 느낌의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다시 컵 안으로 밀크커피를 뱉고 침을 뱉고 또 뱉었다.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이렇게 끈적거리는 것도 달짝지근한 것도 혓바닥이 갈색으로 변할 것 같은 그 느낌도 화가 났다. 밀크커피를 쓰레기통에 컵 채로 던져 버렸다.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옥상에 있었다. 그 아이를 위해 서투르지만 기도 비슷한 것도 했다. 한참을 더 옥상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외과 인턴을 찾는 황급한 진동벨 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병동에 들렀다가 간단한 일을 끝내고 당직실에 내려와 양치질을 했다.


밀크커피의 끈적거리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양치질을 해도 그날 밤이 지나도 그다음 날에도 그 끈적거림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 끈적거림은 내 입안에 각인되어 남아 있었다.


난 지금도 밀크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밀크커피를 마시면 그날의 기억은 매번 다시 선명해진다. 아무 것도 할수 없이 무능하게 혈액원만 뛰어 다니고 두려움에 떨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던.


우유 조차 들어 있지 않은 자판기 밀크커피는 내겐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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