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이 쉬어갈 수 있게 의자가 놓인 세탁소.
종로 01번 마을버스를 타고 '세탁소' 정류소에 내리면 1977년부터 원서동을 지키고 있는 럭키 세탁소가 있다. 장한섭 사장님은 생계를 위해 스무 살부터 일했다. 자동 세탁기가 발명되기 이전 재래식으로 세탁한 시절부터 기술을 닦아 온 베테랑이다. "처음엔 세탁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손님들이 하대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죠. 그러나 어느 날 마음을 바꿨어요. '내가 내 직업을 부정하면 세탁물이 제대로 나오겠는가. 프로정신을 가지고 해야겠다.' 하고요.” 그는 자신만의 기술과 경험을 갈고닦아 깨끗하면서 손상이 덜 가게 세탁하려고 노력했고, 손님들은 어떤 오점이든 제거해 주는 그를 신뢰했다. 요즘은 무인세탁소로 교체된 곳들이 많지만, 그에게 세탁이란 자동으로 처리되는 공정이 아닌 자신의 철학을 담아 선보이는 작품과 같았다.
사장님은 세탁에 대한 자부심뿐만 아니라, 동네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가게 앞에는 ‘어르신 쉼 의자’라고 적은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이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까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놀러 가시거나 가까운 곳으로 외출하실 때에도 힘들어하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세탁소 안에 들어오셔서 자주 앉았다 가셨는데, 가게 문을 닫았을 때에도 쉬어가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주인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 덕에 가게에 볼일이 없는 사람들도 편하게 머물다 갔다.
한 번은 대학로 연극 팀에서 세탁소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만드는 데 참고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게 모습을 관찰하며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이라는 연극을 구성했다. 2003년 초연한 이래 지금까지 공연되며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았고, 현대 연극 최초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사장님은 얼마 전 극작가가 다시 찾아와 세탁소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며 긴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인연들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서 시작했던 곳이 동네 쉼터가 되고, 작품의 배경이 되고, 다시 찾아오고 싶은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세탁소는 원서동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울 때 문득 향할 수 있는 방향, 궁금할 때 문 두드릴 수 있는 이웃,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져 오는 위로의 공간으로 말이다.
2020년 좋은 생각 11월호에 <우리 동네 오아시스>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2011년부터 오래된 간판에 매료되었고, 필름카메라로 기록해왔습니다. 사진가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이었던 제가 휴일마다 틈틈이 거리를 누비며 5천 장이 넘는 간판 사진을 찍었습니다. 왜 계속 기록했고 무엇에 그토록 매료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어 <버리지 않는 마음>,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이라는 책을 엮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겉과 속 둘 다가 아름다워서 반했던 것 같습니다. 폰트가 나오기 이전 간판 장인의 손글씨로 디자인해 수작업으로 제작한 간판들의 고유함이 좋왔고, 또 생계를 넘어 사명감을 가지고 자리를 지키는 사장님들의 모습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가게와 사장님들께 존경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책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