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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Aug 07. 2024

낙하산 부장님의 하루일과:
커피-담배-게임-담배-커피

사회초년생이 당한 취업사기 3화

20대 초반- 대학교 휴학을 하며 경력을 쌓기 위해 마케팅 회사를 알아볼 때였다. 채용사이트에 이력서를 업로드해놓았고, 한 회사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그렇게 스물 한 두살 남짓되었을 때의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 회사에 출근을 했다, 경기도의 한 펜션으로.


마케팅 일을 하고 싶던 나.


그런 나에게, 그 회사는 영업도 함께 하길 강요했다.

높은 인센티브를 위해 최대한 많은 고객을 영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강요한 사람은 낙하산으로 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농땡이 피우던 부장.

(그런 사람 밑에서 있노라니 현타가 제대로 왔었다.)



이 시리즈를 읽으시는 당신, 혹시 어떠한 특정 회사들이 떠오르나요? 있다면 비밀 댓글 남겨주세요^^.


1화에서 업무 프로세스를 간단히 설명한 바 있다-.


우선 광고 글을 올리고, 그 다음엔 밖에 나가 전단지를 돌리며 영업을 하게 했다. 최대한 많은 고객을 영입해서 많은 인센티브를 고객을 많이 모을수록 인센티브를 많이 주니 최대한 많은 고객을 영입해야 하는 것이 미션이었다.


심지어 내가 원했던 마케팅 업무는 그저 단순 복붙식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기획하고 더 나아진 마케팅을 하고 싶었는데...(사실 이십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잘 알지는 못했다).




우리는 서울 및 경기 지역에 무작위로 보내져 외근을 했다.


저녁 7시를 넘은 시간까지도 현장 영업을 한 뒤 다시 회사에 복귀하라는 명령은 여전히 터무니 없지만 그당시 나는 황당해하면서도 순순히 따랐다. 복귀 후엔 당연히 다같이 모여 저녁을 먹고, 그날의 상황을 브리핑하고, 얼마나 많은 설문지를 회수했는지 서로서로 뽐내곤 했다(타의적으로). 


회사 건물을 나설 때면 여지없이 새벽 12시가 넘었었고, 집에 도착하면 1시를 훌쩍 넘기곤 했다. 제시간에 귀가한 적은 출근 첫 이틀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없었다. 4주 내내.


영업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사실 2인 1조로 외근을 나가서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 붙잡고 적극적으로 설명하던 사람도, 아무 매장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하며 영업 멘트를 날리던 사람도, 설문지를 공격적으로 들이밀던 사람도, 모두 다 나였다...


외근 나가는 것 자체는 싫었지만 한번 나가면 즐겁게(?) 영업을 뛰었다.


이랬던 걸 보면 그때의 나는 어쩌면 영업이 천직이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말을 걸고 상품을 소개하고 영업하는 것이 생각보다도 꽤나 즐거웠고,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많이 버텼던 것도 있을 테다(돈도 많이 벌 수 있다 했고).


놀랍게도 나는 이 회사에서 한 달 조금 넘게 버텼다(!). 


1) 왜 놀랍냐고? 

대외마케팅부 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부서에 속한 10명 정도의 우리는, 환기도 안되는 아주 작은 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일을 했다. 컴퓨터 한 대, 파티션 같은 건 없고 콜센터처럼 기다란 테이블에 붙어 앉은 우리들의 좌석 간 거리는 아마 고작 30센치 정도였을 거다(내 팔과 옆사람 팔의 간격이). 야근을 할 때면 그 작은 방에 모여 중간에 기다란 간이 책상을 펴고 핫도그, 분식 같은 것을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었다.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그 작은 방에 두꺼운 패딩, 코트를 걸어놓는 자리까지 빼놓았는데.. 행거 자리가 내 컴퓨터 자리보다 더 넓었다.


2) 함께 으쌰으쌰하는 느낌 아냐?

그럴리가! 내가 속한 부서는 매출이 형편 없어 작은 방으로 쫓겨난 상황이었다. 그말인즉슨, 우리 팀을 제외하고 다른 팀들은 널찍하고, 환기가 잘되고, 파티션으로 나눠져있는 곳에서 일을 했다. 내가 들어가기 전의 형편없던 매출까지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3) 그래도 사람이 괜찮지 않았어?

사실 사람이 괜찮았으면 두달 넘게 있었을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변방으로 쫓겨난 부서의 부장은 아침 턱걸이인 11시쯤 느지막이 출근해 법카로 점심을 먹고, 본인만 널찍한 자리에 앉아 야구게임을 실컷 하다 오후 3-4시쯤만 되면 그 앞 이디야카페로 팀원 한 두명씩 데리고 나갔다. 1차로 담배를 피우고, 2차는 카페에 가 법카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아마 일방적인 수다였겠지만. 


그러고도 할 일이 없고 심심하니ㅡ부장은 지인의 회사라는 이유로 낙하산 채용, 성과를 내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이었다ㅡ 우리 뒷자리에 앉아 하는 일을 빤히 쳐다보며 감시하곤 했다. '디자인이 이게 뭐야!'라는둥, '고객한테 상품 설명하는 거 한번 들어보자'며 일부러 자기 앞에서 전화 통화를 시키거나, '카톡 왔는데? 답장해! 내 욕한 거 아니면 내 앞에서 답장해도 되잖아!'라는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주임은 어눌한 말과 행동을 하는 직원을 묘하게 따돌림시켰다. 사실 그 직원.. 많이 특이하긴 했다.




꼭, 특이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일부러.


다시 돌이켜보니 마치 드라마 속 캐릭터들 같았다.

드라마였다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그 곳은 최악이었고, 아마 내가 사기 당해서 들어가지 않았다면 내가 살면서 영영 만나보지도 못했을 부류의 사람들만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모르지, 그들은 반대로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더는 긴 말하지 않겠다.


사회초년생들은 함부로 아무 회사에나 가지 않길 바란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도 안된다(과대평가하는 것도 안되겠지만, 만약 과대평가한다면 그 회사에서 알아서 거를 것이다). 


'경험 삼아 가볼 만한가?'라는 생각, 버리자.

당신의 시간과 체력은 소중하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마주치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잔뜩 만났었고 그 기분은 꽤나 별로였기 때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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