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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Aug 12. 2024

예쁜 회사 동료의 허언증과 고백공격

사회초년생이 당한 취업사기 4화

20대 초반, 취업사기 당했던 그 회사에서 만났던 친구가 있다.


나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꽤나 멀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첫눈에 호감이 가는 외모 덕에, 같은 동성이지만 나 역시도 그 친구가 첫눈에 맘에 들었다. 서글서글한 웃음과 낯가림 없는 성격이 특히 좋았다.


그때의 나는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그녀가 먼저 다가와줘서 내심 기뻤다.


앞머리 없는 긴 생머리와 큰 키가 인상적이었던 그녀와 함께 2인 1조로 짝지어 영업을 나갈 때는 그나마 숨통이 좀 트였다.


그 친구와 나는 점심, 저녁 모두 웬만하면 함께 다녔다. 우리가 너무 친해지자, 부장은 일부러 우리를 외근조에서 떼어놓았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잘 맞았다. 당시 사귀었다가 헤어진 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애 이야기도 하며 고민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차츰 멀어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어김없이 밤 11시가 훌쩍 넘어 퇴근하게 된 날이었다. 친구와 버스 정류장을 가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유독 재미있었고, 우리집은 회사에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고, 마침 친구집은 단 2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었고.


결국 친구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같이 자고 출근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집에 발을 딛자마자 나는 후회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그 집을 가지 말걸, 그랬다면 그 친구와 좀더 오랜시간 잘 지냈으려나 싶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건 엄청난 큰 액자 속 특이한 문구와 어떤 아저씨의 이미지였다.


‘매일 5분의 명상이 50억을 불러온다!’ 라는 터무니없는 문구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그 문구의 주인공인듯한 안경쓴 아저씨의 웃는 모습 또한 여전히 생생하다. 그 아저씨는 정말, 겨우 명상만으로 50억을 벌었으려나? 나도 곧장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거 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저 아저씨의 명상 수업을 들었겠다ㅡ 싶었다.


벽 한켠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단체로부터 받은 상장(이라는 말 자체도 이상하다), 증명서, 단체사진 등이 즐비해있었다.


역시, 아무래도 다단계, 또는 사이비로 추정되는 단체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가 그간 했던 이야기와 입에 달고 살던 말들이 떠올랐다.


짝사랑하던 오빠가 자기와 걷던 중, 자동차로부터 보호하려다 대신 치여서 병원에 갔는데 정밀검사를 한 후 위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고, 그 오빠의 여자친구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이별을 고했다는 것. 헤어진 오빠 곁에서 결국 자신이 정성을 다해 병수발을 들어줬다는 이야기. 여자친구가 있는 오빠를 짝사랑한 것도, 경미한 교통사고가 났는데 갑자기 위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러려니… 지구에서 한 명쯤은 진짜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겠지ㅡ 라는…


그런가 하면 이전에는 자신이 주말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 갔던 이야기를 해준 적 있다. 면접날 사정상 못 갈 것 같다고 전했으나 주인아저씨가 그녀의 이력서를 보고는 제발 면접에 와달라고 사정했다는 이야기. 그날 결국 30분을 늦어서 면접에 갔는데도 사장님이 그녀를 첫눈에 보고 너무 맘에 들어했고(밝은 성격 때문이라나 뭐나ㅡ), 마침 사장님 아들도 편의점에 와있었는데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아들내미는 엄청난 IT대기업 회사의 개발자였다고! 불과 몇 달 전까지 그와 사귀었고, 결혼도 하자고 했으나 아직 자신은 어려서 결혼 생각이 없어 이별하게 되었다는 결말이다.


이 모든 게 허풍 같고 허언 같간 했지만, 지구상에 한 묭 정도는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러려니ㅡ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이비나 다단계 종사자를 친구로 둘 수는 없었다. 물론 사이비나 다단계 종사자를 친구로 둬도 상관없는 분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세상에서, 나의 기준이니 그냥 넘어가주시라.


아무튼 ㅡ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어찌되었든 잠은 자야 하니 일단 씻고 나왔다.


하.지.만… 화룡점정으로 그녀와 인연을 끊게 된 계기는 바로,


“나랑 헌번 만나 볼래?“


라고 나에개 묻는 그녀의 질문이었다.


이럴수가.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자신은 그저 친구일 뿐이니 편하게 생각하라며 집까지 내어줘놓고, 정작 씻고 나오니 고백공격을 하다니!


이건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을 했어도 당황스럽고 당장 “나 그냥 집 가서 자야 될 것 같아”를 외치고 나올 판인데, 정말 편하게 생각한 동성친구에게서 받는 고백공격이라니!


우리는 그간 계속 이성친구, 즉 남자인 사람들에 대해서 고민상담도 해왔는데 어째서 여자인 나에게 고백을 한 걸까?

그녀가 양성애자인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즉 내 앞에선 완전한 이성애자로 지내오다, 갑자기 집에 들어서니 양성애자로 돌변한 것이다.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혹시 이것도 그녀의 허언과 허풍 중 하나이려나? 였다.


그간 그녀가 해온 이야기들은, 알게 된 지 얼마 안된 나로서는 진위 여부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정말 그녀의 첫사랑 남자가 위암에 걸렸었는지, 편의점 사장님 가족의 이야기가 진짜인지도 나는 모른다. 그외에도 여러 자잘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집에는 희한한 액자와 문구, 증명서들이 즐비해있고..


이런 생각이 스치자, 그녀의 고백공격은 그냥 내 반응을 살피기 위한 떠보기용 말일 수도 있다는 결로에 도달했고 그 고백에 대한 나의 대답은,


“우리 지금도 맨날 회사에서 출근하면 만나잖아.”


였다.


그러자 그녀는 다행히(? 나와 같은 뜻이었다는 듯이


“그치?”


한 마디를 내뱉곤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잠들었다.


그녀의 질문에 ‘사귀자’는 워딩이 정확하게 언급되어있진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정말로 아무 샹각 없이, 잠꼬대로 내뱉은 말일 수 있다. 그냥 내가 거실에서 50억 아저씨의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지레 겁먹고 잘못 해석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해줬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진위 여부는 이제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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