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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보이지 않아

다섯 번째 그림책 안 에르보의 "바람은 보이지 않아(2015)"

by 지은이 지은
바람은 보이지 않아
De Quelle Couleur Est Le Vent?


어쩌면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그리고 단언컨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느끼며 존재한다고 믿는가? 느낀다는 것은 마음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마치 삶을 살아내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의 하루가 보이지는 않아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처럼.


두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두 귀로 듣는다고 해서, 입술을 움직여 말한다고 해서 내가 과연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삶을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결국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고, 듣고, 말하며 느끼는가다.


여기,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의 색을 찾아 떠나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만나는 모든 것들에 똑같은 질문을 한다.


바람은 무슨 색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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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에르보 작가는 벨기에인이다. 그녀의 다른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와 <파란 시간을 아세요?>를 읽었었는데, 오늘은 그녀의 <바람은 보이지 않아>를 함께 나누고 싶다. 원제는 De Quelle Couleur Est Le Vent?, 불어로 바람의 색은 무엇인가?다.


처음 이 책을 발견하고 가장 신기했던 건 점자 책이라는 것과, 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질감을 직접 손으로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소년이 바람의 색을 찾기 위해 만난 많은 존재를 우리도 책을 읽으며 함께 경험하며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가. 표지의 소년은 눈을 감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바람의 색을 찾기 위해선 어쩌면 두 눈을 꼭 감고 바람을 느껴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어렴풋이 알려주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소년은 어느새 바람과 하나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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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무슨 색일까?' 소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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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바람의 색을 찾으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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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가득 핀 꽃의 향기로 물든 색, 그리고 빛바랜 자신의 털 색이 바람의 색이라 말하는 늙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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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엿듣던 늑대는 숲 속에 깔린 젖은 흙이 품고 있는 어둠의 색이 바람의 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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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들이 나부끼는 골목의 색, 이야기를 간직한 지붕의 색이 바람의 색이라 말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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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풀이 자라고, 계절이 지나는 시간의 색이라는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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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무슨 색인지 모른다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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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태양처럼 뜨거운 색이라는 꿀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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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빠진 하늘의 색이라는 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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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처럼 달콤한 색이라는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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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이기도 하고, 동시에 저 색이기도 한 바람은, 모든 색이라는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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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색을 알기보단 바람을 느끼기 시작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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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찾아 나선 바람의 색은, 결국 우리 각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색이다. 어떤 색을 입힐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에게 바람의 색은 무슨 색인가?


*번외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예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소년이 영화 포카혼타스의 주제곡 "바람의 빛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이 노래에 흠뻑 빠져 매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노랫말이 너무 아름답고, 이 노래를 부른 아이의 목소리는 정말 천사 같다. 그 아이는 이제 너무 유명해졌는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부르고, 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노래를 불렀던 바로, 오연준 어린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아> 속 주인공 소년의 모습과 외적으로도 많이 닮아 보인다. 나는 이 책을 덮고 바로 이 노래가 떠올랐다. 책 속 주인공 소년이 내게 바람의 색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난 오연준 어린이가 부른 "바람의 빛깔"을 들려줄 것이다.

사람들만이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 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 ost)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있다면,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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