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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은 확인되어야 한다

상실과 애도의 심리학적 진실

by 차준택 Spirit Care

시신은 확인되어야 한다


상실과 애도의 심리학적 진실

사람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그 과정의 시작점은 언제나 명확한 ‘확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시신’을 봐야 한다. 그것이 비록 눈을 뜰 수 없는 모습일지라도, 그 현실을 눈으로 확인할 때 비로소 마음은 “이제 그가 떠났구나”라는 인식을 받아들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현실 확인(reality testing)’이라 부른다. 상실을 경험한 유가족이 시신을 직접 보고, 만지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행위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부정(denial) 단계를 통과하게 하는 상징적 의식이다. 그 절차가 생략될 때, 남은 자들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긴 시간 동안 ‘부재의 고통(ambiguous loss)’ 속에 갇히게 된다.


“혹시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요…”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가족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이성으로는 ‘죽었을 것’이라 알고 있지만, 감정은 그 사실을 거부한다.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기에, 아직도 어딘가에서 돌아올 것 같은 ‘희망의 잔상’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상실의 이중 구조다. 사람은 사랑할수록 죽음을 믿지 못한다. 믿지 못하니 애도하지 못하고, 애도하지 못하니 떠나보내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잠시 멈춘 채, 죽은 이의 부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살게 된다.


실종 사건이 남긴 상처,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죽음’


우리 사회는 여러 차례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죽음’을 경험했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 2009년의 산사태와 매몰 사고, 그리고 국경 밖에서는 말레이시아항공 MH370 실종 사건이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많은 가족이 끝내 시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슬픔은 단지 ‘죽음을 맞이한’ 슬픔이 아니라,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절망이었다. 누군가는 아직도 문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든다. 누군가는 밤마다 “그날 구했더라면…”이라는 문장을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확인되지 않은 죽음이 남긴 끝나지 않는 이야기다.


‘보는 것’은 잔인하지만, ‘못 보는 것’은 잔혹하다


시신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보지 못한 고통은 더 길고, 더 깊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슬픔은 ‘현실’을 만날 때 비로소 흘러가기 시작한다.” 유가족이 시신을 확인한다는 것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여는 의식이다. 그것은 부정을 거쳐 수용으로 나아가는 인간적 과정이며, 결국 그 순간부터 애도는 시작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변한다.


죽음의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


시신을 확인하는 일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은 이를 위한 통과의례다.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기에, 그 의식 없이는 진정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웰다잉(Well-dying)이란 단지 아름답게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작별을 나누고, 그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 시작점은 언제나 같다.


시신은 확인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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