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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Oct 01. 2021

요린이와 편식러의 만남


"언제쯤 요릴 잘하게 되는 거야?"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물었다. 그건 빈정거림이 아니라 순수한 물음이었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한 음식이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난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 원체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뭐든지 맛있게 먹는 편이긴 하지만.... 남편은 호불호가 강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아예 거들떠보질 않는다. 요리책 한 권에 50개의 레시피가 있다면 그중 2/3는 '이런 걸 왜 먹냐'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2/3에 속하는 음식 대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거다.


남편과 나는 입맛도 다르다. 남편은 피자, 치킨, 족발, 콜라 같은 음식을 좋아하고, 나는 청국장찌개나 순댓국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 남편이 초딩 입맛이라면 나는 시골 입맛이다. 요린이와 편식러인 데다 입맛까지 다르니 상극도 이런 상극이 없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요리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남편 입장에서는 먹는 게 곤욕이었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 한 번은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한 저녁에 김밥을 싼 적이 있다. 불꽃놀이를 보며 김밥을 먹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하며 임신한 무거운 몸으로 낑낑대며 김밥을 쌌었다. 그 김밥은 (나는 맛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맛있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김밥이 터지지 않고 나름의 꼴을 갖추고 있다는 데 감사할 지경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난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랐고 당연히 그러리라 기대했다.


현실은 상상과 많이 달랐다. 남편은 김밥 한두 개를 집어먹더니 곧 배가 부르다며 안 먹겠다고 했다. 먹으라는 나와 안 먹겠다는 남편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곧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날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쌀쌀한 한강 둔치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집에 돌아왔다.


그 후에도 소풍을 갈 때마다 내가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싸겠다고 하면 남편은

"그냥 사 먹으면 안 돼? 나 맛있는 거 먹고 싶어."

라는 돌직구를 날렸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된 후로는 나들이를 갈 때 (절대로) 뭔가를 만들지 않는다. 집 앞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들고 갈 때가 많다. 아이스박스에 챙기는 건 과일이나 마실 것 정도가 전부다. 뭔가를 만들게 되더라도 나랑 호야 것만 만들지, (절대로) 남편 것은 만들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바나나 케이크를 만든 적이 있다. 우리는 키위 바나나 스무디를 자주 해 먹는 편인데 그날은 이미 전에 키위 바나나 스무디를 며칠 동안 먹어서 질려 있었던 탓에 뭔가 다른 걸 먹고 싶었다. '바나나 요리'를 검색하자 유튜브에 '해외에서 유명한 어쩌구 프라이팬으로 만드는 바나나 케이크' 레시피가 있어서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바나나를 잘라서 프라이팬에 올리고, 계란, 우유, 식물성 오일,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식초 등을 섞은 반죽을 끼얹은 다음 뚜껑을 덮고 구우면 끝, 이런 요리였다.


간단해 보이는 요리인데 왜 내가 하면 맛도 모양도 이상해지는지 나도 모르겠다. 프라이팬 뚜껑이 없어서 에어프라이기에 하고, 베이킹파우더가 없어서 빼고 한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게 뭔지 알 수 없다) 내가 주방에서 꼼지락거리자, 남편은 '또 뭔가를 하고 있군' 하는 눈으로 슥 보더니 곧 거실로 가서 호야랑 놀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요리가 성공하길 바랐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도 차마 먹어보기 두려운 모양의 무언가가 나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걸 본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호들갑스럽게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서 무슨 소릴 듣고 왔는지 아내가 요리를 하면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부터 찍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이번만은 제발 참아달라고 남편을 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남편은 한두 번 맛을 보더니 "잘 먹었어"라며 바로 선을 그었다.

첫 입에는 "이게 무슨 맛이지"라고 했고, 두 번째에는 "우리 평범한 거 먹으면 안 돼?"라며, 이번에도 비아냥 없는 순수한 물음을 던졌다. 나도 1/3 정도를 남기고 버렸으니 할 말은 없다.


끼니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요즘엔 '그래도 까다롭게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쪽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복직을 한 후로는 요리는커녕 밥도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지금은 '남편이 내 요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 우리는 치킨 한 마리로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서로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어쨌든 우리는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아마도). 하지만 서로 원하는 게 달라 앞으로의 여정도 순탄하진 않을 듯 보인다. 내 로망은 내가 만든 요리를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서 맛있게 먹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남편의 로망은 자신이 좋아하는 피자를 매일 먹는 것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최대한 예쁘게 찍은 문제의 바나나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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