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일생
지난 6년간 대출을 받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은행을 방문하지 않고도 앱을 이용해 몇 분만에 뚝딱하고 대출한 돈이 통장에 꽂혔다. 은행들이 너도 나도 '내 돈 좀 빌려가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수금의 시간이 왔다. 나한테 더 이상 뽑아먹을 것이 없다는 걸 은행들이 알아차린 듯했다.
중국 영화 '인생'의 초반부, 도박장에서 룽얼이 부유한 망나니 푸궤이를 상대로 '도련님'이라 부르며 비위를 맞춰주다가 푸궤이의 집까지 자신에게 넘어오자 돌변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4천만 원이 넘는 마이너스 통장 만기가 2개월도 남지 않았다. 갚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고, 1년 새 신용은 더 안 좋아져 연장될 가능성도 낮다고 판단되었다. 최선의 방법은 분할상환으로 전환해 10년 정도 장기간으로 나눠 갚는 것이었다.
그래도 잘 해결될 것이라 낙관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께 빌린 돈으로 2 금융권 대출을 정리하여 신용등급을 700점대에서 900점 초반으로 상승시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출비교 플랫폼, 은행 앱을 통해 여러 은행에서 대출 갈아타기를 조회했을 때, 1 금융권 대부분에서 상세한 설명 없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만 얻게 되었다. 그나마 2 금융권에서는 대출 갈아타기가 가능했지만 10%~15%에 육박해서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했다.
초조함과 답답함이 극에 달했을 때 주거래 은행으로 찾아갔다. 앱으로 조회했을 때 이미 불가능으로 떴지만 영업점으로 가면 10년 이상 월급 통장으로 거래한 혜택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업점에서 대출 상담을 받게 되었다. 경력이 꽤 되시는 직원이 연신 키보드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가능여부를 확인했다.
이 금액만큼은 대출이 힘드실 것 같으세요. 그래도 조회해 드릴까요?
혹시나 하는 기대는 재직 기간 부족과 신용등급 상승 후 유지기간의 부족으로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슬펐다. 초점 없는 눈으로 터덜터덜 은행문을 나섰다. '돈'에 이어 '신용'까지 부족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영업점 방문이 별 성과가 없자 내 마음속을 지탱하던 마지막 남은 기둥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정처 없이 걸었다. 블루 스크린이 떠버린 컴퓨터 모니터처럼 머리가 정지해 버렸다. 걷다 보니 앞에 우리은행이 보였다. 내가 유일하게 한 번도 입출금통장마저도 거래하지 않은 은행이다. 주거래은행도 대출해주지 않는데 한 번도 거래하지 않는 우리은행이 대출이 되겠냐는 생각에 지나치려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생애 두 번째 대출 상담이 진행됐다.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직원에게 쭈뼛쭈뼛한 자세로 상황을 이야기했다. 순간 '괜히 들어왔나, 다시 나갈까'라고 생각이 들며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 데, 의외로 지금보다 1% 더 낮은 금리로 마이너스 통장을 갈아탈 수 있게 되었다. 이로인해 1년동안 대출을 추가적으로 더 갚고 재직 기간을 더 늘린 상태에서 갈아타기를 다시 시도할 수 있게 숨통을 틔게 되었다.
여러 날 고민으로 피곤했던 나는 이틀을 연거푸 10시간 이상씩 잠들고 말았다. 모처럼 편하게 잠을 이뤘던 것 같다. 이제 노동을 통해 빚을 갚는 실천만 남은 것 같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벼랑 끝에서 동아줄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