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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내 귀와 청력은?

<정재호 원장의 수술 일기>




드디어 오늘(2019년 4월 10일) 밤, 인류는 블랙홀의 사진을 보게 될 수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무엇이든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먹보 괴물에 비유된다.


세계 13개 천문학 연구기관이 참여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는 그린란드, 칠레, 하와이 등 지구 전역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총동원해 지구 크기와 맞먹는 거대 망원경과 같은 효율로 블랙홀을 관측했다. 그 결과를 오늘 세계 7개국 동시 생중계로 발표한다는 것이다. 오늘 모습을 드러낼 블랙홀이 숨어 있는 M87 은하는 지구에서 거의 5500만 광년 거리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약 600만 배, 크기는 170억 km 정도로 추정된다.
1970년대 소년 중앙이나 새소년과 같은 만화 잡지에서 보고 아주 먼 세계처럼 느꼈던 이야기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를 정밀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지구, 동물, 식물을 포함한 내가 우주로부터 기원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는 쌩텍쥐페리의 소설처럼 다시 우주의 일부분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겨우 한 평이나 될까 말까 한 좁은 내 진료실에서 ‘우주 최초의 3분’이란 책을 보다가, 젊고 건장한데 한쪽 귀가 없는 청년의 귀를 만들러 들어간다. 수술실에는 또 한 건의 귓바퀴·청력 동시 재건술이 기다리고 있다. 이 우주가 미처 만들지 못한 청년의 한쪽 귀를 만든다는데 희열이 느껴진다. 나는 이 우주의 눈 뜬 수리공! 우주가 만들려 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오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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