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입문(1)

철학사(History of Philosophy)란 무엇인가?

by plastic love



들어가며

철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이라도 철학사를 다룬 책을 읽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어로 출판된 저명한 철학사서 중에는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프레데릭 코플스톤,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사 등이 있습니다. 이런 철학사서들은 기본적으로 쪽수가 1000페이지를 가볍게 넘기는 아주 두꺼운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철학 입문자들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지만 완독하기 위해서는 수십시간을 투자해야 하죠. 물론 완독하고 나면 철학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말한 이유 때문에 전공자가 아닌 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교양인들은 철학사서를 완독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철학사에 관심이 있으신 입문자 분들에게 비교적 쉽고 가볍게 철학사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철학사란 무엇인가?

우선 철학사의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철학사(History of Philosophy)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졌을 때 제가 이 글과 앞으로 다루게 될 논의들에서 다룰 주제는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뒤에 이어갈 내용을 위해 지금은 편의상 철학사라고 부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철학사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가요? 단순하게 철학의 역사라고 생각하셨다면 대략적이긴 하지만 올바른 이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호한 지점이 남습니다. 철학은 무엇이고, 역사란 무엇이란 말인가요? 철학과 역사의 뜻을 각각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철학(Philosophia)에 대한 정의를 Encyclopedia Britannica에서 찾아보면 "지혜에 대한 사랑love of wisdom"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철학이 이상과 같이 정의되는 이유는 단어 자체가 사랑을 뜻하는 어근 'philo'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등에서 지혜(sophia)를 최상의 앎의 단계로서 가장 보편적인 앎이요 나아가 신적인 학문[1]이라고 정의합니다.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앎으로서 지혜를 실천적 지혜인 phronesis와 구별합니다. 실천적 지혜는 특수적이고 가변적인 것에 관계하는 앎이지만, sophia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에 대해서만 관계하는 앎입니다.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 그것은 진리입니다. 따라서 철학은 진리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역사(historia)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동명의 사전에서 "역사"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history, discipline that studies the chronological record of events, usually attempting, on the basis of a critical examination of source materials, to explain events."
"역사, 사건의 연대기적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일반적으로 출처 자료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바탕으로 사건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위의 정의를 따른다면 역사는 무엇 보다 일어난 '사건(events)'을 '기록'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어원적으로 이 단어(historia)는 일차적으로 눈으로 보는 것,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분석론 전서』, 『동물지』 등에서 역사를 경험적 탐구와 연결 짓습니다. 역사란 대상에 대해서 목격한 것, 그렇게 함으로써 일어났던 일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으로서 역사는 이론적 탐구의 토대를 이루게 됩니다.[2] 이때 이론적 탐구란 순수한 앎의 학문인 이론(theoria)의 내용을 구명하는 것입니다. theoria는 그 본래적 의미에서 '봄으로서 아는 것'을 지시하기 때문에 관조(觀照)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 개념은 가치, 목적 등 인간적인 관점에 의해 나타나는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순수한 학문적 관심에서 객관적 진리를 관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theoria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제일 철학으로서 진리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철학과 역사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역사는 철학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근거 삼아 철학사를 정의해 본다면, 철학사란 '진리 추구에 대한 (일련의)사실들을 기록하는 것(혹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사뭇 모순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하나의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반면 역사는 다수의 진리를 내재적으로 기술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진리 탐구로서 철학을 공부한다면, 그는 플라톤과 고르기아스를 양립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진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고르기아스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관계이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리 탐구로서 철학은 둘 중 하나가 진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이, 고르기아스주의자들은 고르기아스가 각각 옳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반면 역사는 플라톤과 고르기아스의 사상을 진리에 관한 양립 불가능한 담론으로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기적으로 일어난 일로서 기술적(記述的)으로 다룹니다. 요컨대 철학적 진리가 역사적 맥락에 내재적인 것, 사건으로 기술되는 것이죠. 역사로서 철학사의 장점은 서로 대립하는 사상 중 한 쪽을 단적으로 부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사상 자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렇게 살펴본 내용들을 토대로 보면, 앞서 말씀드린 철학사의 정의는 수정 및 보충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수정 및 보충에 앞서서 철학과 역사가 서로 지향하는 목적이 양립 가능한 것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철학과 역사가 서로 대립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어서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라면 철학사를 그 두 가지 개념으로부터 정의하려는 작업은 이미 실패가 예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술한 내용을 참조한다면 철학의 목적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 즉 객관적이며,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한편 역사의 목적은 '일어난 일(사건)을 기록하는 것'이기에, 사건으로서 기록되는 진리는 내재적이고, 상대적이며, 우연적인 것으로 역사의 지평에 기재됩니다. 이러한 점을 미뤄 보았을 때 철학과 역사는 표면적으로 양립 가능한 개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철학이 발견한 참된 진리는 역사로 기록될 때 사건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공식화한다면 아마 다음과 같이, 즉 "철학사는 역사의 내재적 맥락에서 진리를 철학적 진리로서 기록해야 하는 난점을 가진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공식화된 문제에 답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철학적 진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역사의 지평 속에 기재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철학자 이정우는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이 문제에 관해 좋은 통찰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유도 역사적 지평을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 사유가 역사적 지평에 대해 가지는 거리는 모두 다르다."[3] 요컨대 그는 각각의 사유들을 그것이 가지는 높이, 즉 "역사적 지평에 대해 가지는 거리"로 차이화 시킵니다. 이런 차이를 통해 비로소 진리에 더 근접한 사유와 그렇지 못한 사유를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죠. 이것은 철학이 역사적 지평에 내재적으로 기재되더라도 진리를 향해 더 높이 고양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철학사가가 철학사를 서술할 때 특정 사상을 폄하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그 사상이 이룩한 공로를 온전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상의 공로가 온전하게 평가된다는 것은 사상들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지반이 마련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철학적 사상들은 이런 지반에 근거하여 역사의 내재적 지평 위에서 자신의 고유한 높이를 가집니다.

결론적으로 앞선 논의를 위시하였을 때 기존의 철학사에 대한 정의는 '사상들의 진리를 향한 고양을 역사의 지평 위에 기록하는 것(혹은 학문)' 정도로 수정 및 보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철학사를 개념화하는 것은 우리가 이 글을 통해 그리고 앞으로 다룰 대상을 잠정적으로 특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철학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사란 사유를 다루는 학문이고 사상가들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유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 "철학사란 무엇인가?"라는 이 글은 앞으로 다루게 될 철학적 사상들 이해하기 위해 사유를 추동시키는 예비적 글인 셈입니다.



각주

[1]『형이상학』, 982b28

[2]『분석론 전서』, 46b22

[3] 이정우, (2015),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 9p.

참고자료

이정우. (2015).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 도서출판 길

philosophy. (2023, may 27). Encyclope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topic/philosophy

histori. (2023, may 9). Encyclopedia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topic/history